'다저스의 목소리'로 MLB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빈 스컬리.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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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MLB) LA 다저스의 경기를 67년간 전담 중계한 '다저스의 목소리' 빈 스컬리가 세상을 떠났다. MLB닷컴 등 미국 언론은 3일(한국시간) 다저스 구단의 발표를 인용해 "스컬리가 자택에서 94세를 일기로 타계했다"고 보도했다.
다저스 구단은 추모 성명을 내고 "스컬리는 '다저스의 목소리'라는 수식어 그 이상이었다. 다저스의 양심이자 계관 시인으로 팀의 아름다움을 포착했다"며 "재키 로빈슨부터 샌디 쿠팩스, 커크 깁슨을 거쳐 클레이턴 커쇼에 이르기까지 다저스 영광의 연대기를 기록해 왔다. 여러 면에서 다저스와 LA 공동체의 심장과도 같은 존재였다"고 애도했다.
2002년 7월 2일(한국시간)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전에 앞서 중계 리허설을 하고 있는 빈 스컬리.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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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닷컴도 "80여 년간 TV와 라디오 중계를 해온 스컬리는 뛰어난 재능과 시대를 초월하는 감각을 자랑했다. 단순히 경기의 결정적 장면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소름 끼치는 순간을 숱하게 선물했다"며 "그를 직접 못한 수백 만명의 스포츠팬들도 그를 친구이자 진정한 동료로 여겼다"고 추모했다.
1927년 미국 뉴욕 브롱크스에서 태어난 스컬리는 포덤대학교를 졸업하고 방송에 입문한 뒤 1950년 브루클린 다저스의 경기 중계로 다저스와의 인연을 시작했다. 다저스가 1958년 연고지를 동부 브루클린에서 서부 LA로 옮기자 스컬리도 다저스를 따라 삶의 터전을 바꿨다. "이제 다저스 야구를 볼 시간(It's time for Dodger baseball)"이라는 경기 개시 코멘트는 스컬리의 상징과도 같았다.
빈 스컬리가 영면한 3일(한국시간) LA 다저스의 원정 경기가 열린 샌프란시스코 오라클파크 전광판에 그를 추모하는 메시지가 떴다.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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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2016년 10월 2일 다저스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라이벌전을 끝으로 마이크를 놓을 때까지 67시즌 동안 다저스의 흥망성쇠를 지켜보고, 전달했다. 1965년 9월 쿠팩스의 퍼펙트게임, 1974년 베이브 루스의 통산 최다 홈런 기록을 깬 행크 에런의 715호 홈런, 1988년 깁슨의 월드시리즈 끝내기 홈런 등 역사적인 순간마다 그가 있었다.
스컬리는 야구 중계 캐스터로는 역대 6번째로 1982년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입회했다. 2016년에는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이 수여하는 대통령 자유의 메달을 받았다.이 메달은 국가 안보와 세계 평화, 문화·스포츠 분야에 뚜렷한 공헌을 남긴 미국인에게 주는 최고 권위의 시민상이다.
2016년 11월 21일(한국시간)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뒤)이 직접 수여하는 자유의 메달을 목에 걸고 있는 빈 스컬리.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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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저스 구단은 다저스타디움 기자실을 '빈 스컬리 프레스박스', 다저스타디움 바로 앞길을 '빈 스컬리 애비뉴'로 이름 지으면서 평생을 다저스와 함께한 스컬리의 공을 기렸다. MLB 최고 명문구단으로 자리 잡은 다저스는 스컬리의 영면과 함께 긴 역사의 한 페이지를 닫았다.
배영은 기자 bae.young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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