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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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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정부에 10번 말했는데"…저물가에 전기요금 올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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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세종=민동훈 기자, 세종=조규희 기자] [편집자주] 돈을 많이 번다는 이유로 세금을 더 물리고, 가격이 너무 높다는 이유로 가격에 상한선을 정하고.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 한달여 사이 국회와 정부에서 나온 정책들이다. '자유'를 표방한 정권이 출범한 뒤 반(反)시장적 포퓰리즘 정책들이 쏟아지는 역설적 상황이다. 에너지 인플레이션 시대를 헤쳐갈 다른 해법은 없을까.

[MT리포트]反시장 에너지 포퓰리즘(下)


"文정부에 10번 얘기했는데"...정치에 휘둘리는 전기요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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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 정승일 한국전력 대표이사 사장이 18일 오전 서울 서초구 한국전력 아트센터에서 열린 '전력그룹사 비상대책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이날 회의는 글로벌 연료가격 급등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등으로 촉발된 엄중한 경영위기 상황을 공유하고, 이에 대한 공동대응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개최됐다. (한국전력 제공) 2022.5.18/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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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이달부터 적용되는 3분기 전기요금 조정단가를 kWh(킬로와트시)당 5.0원 인상했다. 국제유가가 급등락할때 마다 같이 널뛰던 한전의 실적을 보정하기 위해 문재인정부 시절 연료비 연동제에 따라 분기당 3.0원의 인상만 가능했지만, 한전의 천문학적인 영업손실이 현실화되자 임시방편으로 연간 상한액 한도(±5.0원)를 끌어다 쓴 것이다. 이 때문에 하반기 추가적인 원가 상승요인이 발생하더라도 추가적인 전기요금 조정단가 인상은 불가능해졌다. 결국 총괄원가를 기초로 책정된 전기요금 기본료를 건드리지 않고서는 최대 30조원대로 추정되는 한전의 천문학적인 적자를 막을 방법이 없는 만큼 원가주의에 기반한 합리적인 전력요금 부과체계 개편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3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전에 따르면 전기요금은 기본요금에 기준요금과 전력량요금, 연료비 조정단가, 기후환경요금 등을 더해 산출된다. 연료비 조정단가는 직전 1년간 평균 연료비인 기준연료비에서 직전 3개월 평균 연료비인 실적연료비간의 차이를 요금에 반영한다. 정부는 원칙적으로 직전 분기 대비 kwh(킬로와트시)당 최대 ±3원, 연간으로는 최대 ±5원까지만 조정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전기요금의 급격한 인상을 막는 장치로 설계했다. 하지만 이러한 원칙으로 인해 최근과 같은 국제유가 단기급등기엔 한전이 부담해야 할 연료비가 천문학적으로 늘어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지난해에 이어 올 1분기까지 한전이 막대한 적자를 기록한 이유다.

이에 정부는 지난달 27일 3분기 적용 연료비 조정단가를 5.0원으로 책정했다. 이는 분기한도(±3.0원)을 넘어 연간 한도까지 꽉 채운 금액이다. 한전의 적자 상황이 심각해지자 정부가 전기위원회를 열어 급하게 연료비연동제의 원칙을 훼손해 가며 내놓은 '땜질 처방'이다. 이로 인해 추가적인 전기요금 부과체계 개편이 없다면 올해 연료비 조정단가를 추가로 올릴 방법이 사라졌다.

당초 3분기 연료비 조정단가를 결정에 앞서 한전이 정부에 제출한 요금의 필요 인상분은 kWh당 33.6원이었다. 지금까지 발생한 적자와 추후 발생할 적자에 대한 대응 차원이 아니라 단순히 국제 연료비 가격 상승에 따라 계산한 순수 연료비 조정단가다. 즉 인상된 조정단가 5.0원을 빼면 28.6원을 오롯이 한전이 부담해야 한다. 사실상 한전의 실적 악화를 막을 수 없다는 얘기다.

상황을 이 지경으로 몰고온 건 사실 정부다. 한전은 연료비 연동제 도입 이후 수차례 정부에 요금인상을 요구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비공개로 열린 국민의힘 정책의총에 참석한 정승일 한전 사장은 "문재인정부 5년 동안 10번 (전기요금 인상을)요구했는데 단 한 번만 인상됐다"고 말했다. 권 원내대표는 "2~3% 저물가 시대에 전기요금을 인상했다면 한전 적자 폭도 축소됐을 텐데, 문재인 정부가 무조건 물가를 낮추겠다는 목표 하에 전기요금 인상을 안 한 부분이 지금 와서는 굉장히 큰 한전 적자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었다"며 정 사장의 발언을 소개했다.

따라서 이 기회에 정치적 판단에 좌우되는 현행 전기요금 부과 체계 자체를 손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연료비 연동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정부가 임의로 전기요금 인상을 유보할 수 있는 조항을 현행 전기요금약관에서 삭제하고 연료비 조정단가 조정폭도 분기 기준 ±5원, 연간 기준 ±10원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전기요금 결정을 담당하는 전기위원회의 위상과 독립성을 강화해 정치적 판단이 끼어들 여지를 없애는 제도적 보완도 필요하다.

이와 함께 탄소중립 시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전기요금의 '가격신호' 기능을 회복할 수 있도록 총괄원가제를 부활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물가안정에 관한 법률 시행령은 전기요금을 포함한 모든 공공요금에 대해 적정 원가에 적정 투자보수까지 포함한 총괄원가를 보상하는 수준에서 결정하도록 명시하고 있고, 전기사업법 시행령과 기획재정부 훈령, 산업부 고시 등에도 전기요금 결정과정에서 총괄원가를 반영토록 하고 있다. 하지만 2013년 이후 총괄원가에 기반해 전기요금을 결정한 바 없어 사실상 사문화된 상태다.

김이수 홍익대 교수는 "전력요금을 정부가 과도하게 통제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전력시장에서의 시장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면서 "원료비 상승에 따른 전력가격 상승은 소비자들에게 전기를 절약해야 한다는 시그널을 줄 수 있고 특히 석유, 가스, 석탄 등 에너지수입 급등으로 무역수지가 적자인 상황에서는 적절한 가격 시그널을 제공해 에너지 절약을 유도할 수 있도록 전력요금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신들 조치, 도움 안 돼"…대통령에 항의편지 보낸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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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스미스=AP/뉴시스] 9일(현지시간) 미 텍사스주 골드스미스 외곽에서 작동 중인 원유시추기, 펌프잭 뒤로 해가 지고 있다. 2022.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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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유가 급등에 각국 정부들이 에너지 기업들을 상대로 잇따라 '횡재세'(Windfall Profit Tax) 부과에 나서고 있다. 평상시와 다른 비정상적 '초과이익'에 대한 환수 조치다. 정유·석유화학 기업을 대상으로 '양심 있는' 생산량 증가와 투자 확대를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에너지 기업들은 정부의 이같은 반시장적 행보가 투자를 위축시킨다며 실제로 투자 계획을 철회하는 등 강경 대응에 나서고 있다.

3일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유럽연합(EU) 회원국 가운데 에너지 기업에 대해 초과이익 환수 조치를 시행한 나라는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 5개국이다.

스페인은 지난해 9월, 불가리아·루마니아는 10월, 이탈리아와 영국이 각각 올해 1월과 5월부터 초과이윤 과세를 시작했다. 슬로베니아는 올해 1월 논의가 시작됐으나 아직 의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구체적으로 영국은 석유 및 가스 업체에 25%의 초과이윤세를 부과하고 이로 인한 예상 세수 150억파운드(23조8000억원)를 가계에 지원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탈리아는 태양광, 풍력, 수력, 지열 등 재생 에너지 발전사업자들로부터 17억유로(2조3065억원) 초과이익을 환수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해당 국가들에선 초과이윤세가 중소 에너지 기업들의 생태계를 파괴하고 기업의 투자 의지를 꺾는다는 비판적 목소리가 나온다. 윤원철 전력산업연구회 연구위원은 "지금의 위기 상황에서 정부의 통제 아래 민간기업에 부담 떠넘기기, 정부 주도 재정보조 등은 결코 해답이 될 수 없다"며 "정부 의도와는 달리 투자 축소 등 여러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영국 정부의 25% 초과이윤세 부과 조치에 대해 에너지 기업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은 2030년까지 180억파운드(28조6551억원)를 투자하겠다던 계획을 철회했다. 공식적으론 초과이윤세와 부과와 무관한 결정이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실제론 영국 정부가 세금 부과 방침을 발표하자 계획을 번복했다는 점에서 이를 곧이 곧대로 믿는 이는 없다.

BP는 이메일 성명에서 "정부가 발표한 조치는 일회성 세금이 아니라 수년간 부과를 목적으로 한 것"이라며 "새로운 세금과 세금 감면 혜택이 북해 투자 계획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 집권 보수당 내에서도 투자를 저해할 수 있다며 초과이윤세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보리스 존슨 총리가 초과이윤세에 반대 입장을 밝히면서 리시 수낙 재무장관과 갈등을 빚은 바 있다. 수낙 재무장관은 초고이윤세 부과가 반기업적 조치라는 비판을 잠재우려는 듯 에너지 기업의 신규 자본지출에 80% 세금 공제 혜택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에서도 비슷한 취지의 횡재세를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다. 집권 민주당 일각에서는 이윤율 10%가 넘는 정유사에 연방세 21%를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10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항구에서 진행한 인플레이션·공급망 관련 연설에서 "엑손모빌은 올해 신보다 더 많이 돈을 벌었다"라고 비꼬았다. 이어 "석유 회사들이 시추를 하지 않는다"며 "왜 시추를 하지 않는가. 그들은 더 많은 석유를 생산하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돈을 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후 엑손모빌·셸·BP·셰브런·필립스66·마라톤페트롤리엄·발레로 등 7개 석유 기업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 "휘발유 가격이 1갤런(약 3.8리터) 당 1.7달러 이상 오르며 정유사들이 기록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보이고 있다"며 "기업들은 휘발유와 경유, 기타 정제 제품 공급을 늘리기 위한 즉각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유·석유화학 등 에너지 기업들은 강력 반발했다. 셰브런의 마이크 워스 CEO는 21일 바이든 대통령에 보낸 공개서한에서 "당신의 정부는 우리 산업(정유산업)을 대체로 비판하고, 비난하고 있다. 이런 조치들은 우리가 직면한 도전들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워스 CEO는 "지난해 쉐브론은 창사 이래 최고의 생산량을 기록했으며 올 1분기에는 일평균 생산량이 작년보다 10만9000배럴 많은 120만 배럴을 생산했다"고 바이든 대통령에 반박했다. 최근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 나라에서 정유공장이 다시 건설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투자 중단을 시사하는 방식으로 정부를 압박했다.

한 에너지 전문가는 "각국 정부가 세금 등으로 에너지 가격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데 전세계 에너지 기업들은 탄소중립, 친환경 경제 전환 기조로 피해를 봐왔다"며 "일방적 과세가 아니라 이번 위기를 계기로 에너지 기업이 신재생에너지에 투자를 확대토록 유도하는 등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민동훈 기자 mdh5246@mt.co.kr, 세종=조규희 기자 playingj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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