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채·녹사청·사당으로 구성…"조선시대 상류주택 생활문화 남아"
상주 수암 종택 |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서애 류성룡 셋째아들인 수암 류진(1582∼1635)의 제사를 지내온 '상주 수암 종택'이 국가지정문화재가 된다.
문화재청은 경북 상주 중동면 우물리에 있는 조선시대 가옥 '상주 수암 종택'을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 예고했다고 29일 밝혔다.
수암 종택은 류진을 불천위(不遷位) 제사로 모셨다. 불천위는 나라가 큰 공을 세운 인물에 한해 영원히 사당에 모시기를 허락한 신위(神位·신주를 두는 자리)를 뜻한다.
수암 종택은 속리산, 팔공산, 일월산 지맥이 모이고 낙동강과 위천이 합류하는 이른바 '삼산이수'(三山二水) 명당자리에 들어섰다. 일설에는 류성룡 수제자였던 우복 정경세가 집터를 정했다고 한다. 우복 종택은 약 32㎞ 떨어진 곳에 있다.
상주 수암 종택 본채 |
안채와 사랑채가 하나로 연결된 'ㅁ'자형 본채와 'ㄱ'자형 별채인 녹사청, 사당으로 구성됐다.
경북 북부 지방 건축 양식이 반영된 본채는 안채의 대청 오른쪽 마루방을 높게 해 누마루처럼 꾸민 점이 특징이다. 대청 상량 묵서(墨書·먹물로 쓴 글씨)에는 1858년에 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본채 앞에 있는 녹사청은 류진 7대손인 류후조(1798∼1876)가 1872년 '봉조하'라는 벼슬을 받은 뒤 녹봉을 가져오는 관리를 맞거나 묵게 한 건물로 추정된다. 봉조하는 70세 내외의 2품 이상 퇴직 관료에게 특별히 준 벼슬이다.
평소 검소한 생활을 했던 류씨 집안 특성을 반영해 별다른 장식이 없지만, 민가에 이러한 용도의 건물이 드물다는 점에서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상주 수암 종택 녹사청 |
수암 종택에서는 여전히 류진의 불천위 제사를 비롯한 다양한 제사가 전승되고 있다. 또 녹봉 증서인 '녹패', 편지, 문집 같은 옛 문헌과 어딘가에 달거나 들고 다닐 수 있는 등인 등롱, 가마, 관복 같은 유물이 남아 있어 조선시대 상류주택 생활문화가 잘 남아 있는 편이다.
류진이 쓴 '임진록'과 '임자록', 흥선대원군과 류후조가 주고받은 글인 '운현간첩' 등도 보존됐다. 이러한 자료들은 대학과 박물관 등이 관리하고 있다.
수암 종택에는 여러 흥미로운 일화들도 전한다.
흥선대원군은 한때 이곳에 머물며 영남 지역 인물을 파악했다고 한다. 종택의 대나무 병풍이 흥선대원군 작품이라는 설도 있다. 고종이 왕위에 오른 뒤 류후조는 이조참판, 우의정, 좌의정에 임명됐다.
청렴했던 류후조는 녹봉이 떨어졌을 때 손님이 오면 아무것도 넣지 않고 끓인 물인 '백비탕'(白沸湯)을 놋그릇에 담아 대접했다고 한다.
류진 11대손 류우국(1895∼1928)은 상하이 임시정부 활동에 참여했고, 조선의열단에서 김지섭 등과 함께 활동했다. 베이징에서 '혁명도보', '혈조'와 같은 매체를 발행하기도 했다. 정부는 1990년 그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문화재청은 예고 기간 30일 동안 각계 의견을 수렴한 뒤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상주 수암 종택'의 국가민속문화재 지정 여부를 정한다.
불천위 제사 |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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