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법원장 ‘영장 발부’ 여부에 주목
북한군에게 피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의 유족들이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변호사회관에서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관련 향후 법적 대응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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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0년 9월 북한에 의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씨의 피격 사망 사건과 관련, 유족이 22일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 등 당시 청와대 관계자들을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소할 방침을 밝히면서 피격 당시 정보의 공개 여부가 주목을 받고 있다. 유족은 “당시 청와대 관계자들이 군과 해경 수사에 개입해 고인을 월북자로 몰았다”는 입장이어서 ‘자진 월북’ 여부가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이다.
앞서 유족은 2020년 10월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국방부, 해양경찰청에 사건이 일어난 그해 9월 22일 당시 이들 기관들의 보고 및 지시내역 등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가 거부당하자 소송을 냈다. 유족이 요구한 정보는 청와대가 국방부, 해양경찰청, 해양수산부로부터 받은 보고 및 지시에 관한 서류, 북한군의 대화를 감청한 녹음 파일, 그해 9월 22일~28일 청와대가 국방부, 해경 등으로부터 보고받은 내용 중 일부 등이었다.
작년 11월 서울행정법원 행정 11부(재판장 강우찬)는 북한군의 대화를 감청한 녹음파일 및 북한과 국방부 산하기관의 통신내용을 제외한 상당 부분에 대해 공개를 판결했다. 하지만 정부가 항소해 2심이 진행돼 공개가 미뤄졌다. 새 정부 출범 후 대통령실과 국가안보실 등이 지난 16일 서울고등법원에 항소취하서를 제출하면서 ‘일부 공개’ 판결이 확정됐지만 문재인 전 대통령 임기 만료 후 청와대가 보유한 핵심 자료 상당수가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되면서 사실상 15년간 봉인된 상태다.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된 경우 15년의 보호기간 이내에 이들 정보를 열람하려면 ①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나 ②관할 고등법원장이 발부한 압수수색 영장이 있어야 한다. 민주당 168석, 국민의힘 109석인 현재 의석 비율상 ①은 실현가능성이 거의 없어 결국 ‘고등법원장 영장’이 가장 유력한 방법으로 꼽힌다.
◇피해자가 있는 사건, “영장발부 고민될 것”
통상 압수·수색 영장이나 구속영장 등은 지방법원의 영장전담 판사가 발부한다. 법원 최고위급인 고등법원장의 영장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를 대체하는 만큼 발부 여부에도 무게가 실린다.
법조계에서는 대통령기록물지정이 ‘통치행위’에 해당해 법원이 이를 뒤집기 쉽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변호사는 “특정 기록물에 대해 15년동안 봉인하는 행위 자체를 사법심사가 미치지 않는 일종의 정치적 결단으로 보고 영장을 기각해 사법심사를 회피할 수도 있다”고 했다.
법 자체에도 ‘관할 고등법원장은 국가안전보장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하거나 외교관계 및 국민경제 안정을 심대하게 저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 영장을 발부해서는 안 된다’는 제한이 있다. 현재까지 고등법원장 영장이 발부돼 열람이 허용된 사례는 2008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가기록물 유출 의혹 사건, 2013년 남북정상회의록 사건 등으로 손에 꼽힌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이 사건은 ‘피해자’가 있어 다른 정보공개와 결이 다르다는 견해도 유력하다. 이대준씨의 유족은 “2년간 월북자의 가족이라는 억울한 오명을 뒤집어 썼다”며 월북자 낙인 때문에 아들이 육사 지원을 포기했다”고 했다.
게다가 ‘월북’ 으로 결론날 경우 이씨 유족은 순직 유족에게 지급되는 연금과 보상금을 받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공무원재해보상법 5조에 따르면 어업감독 공무원인 이씨가 불법어업 지도·단속을 하다 입은 재해는 위험순직 공무원의 요건에 해당하지만 같은 법 4조에 따르면 ‘공무원의 자해행위가 원인이 돼 사망한 경우는 공무상 재해로 볼 수 없다’고 돼 있다. ‘월북’을 자해행위의 한 형태로 보고 지급을 거절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 고위 법관은 “다른 정보공개 청구 사건과 달리 유족이 ‘월북’으로 몰려 피해를 받고 있는 사건”이라며 “법원으로서도 국가안보 등 일반적인 사유를 들어 비공개 처분을 유지하기 쉽지 않은 사안”이라고 했다.
법조계에서는 “소송이 제기되면 월북 의도는 정부가 입증해야 할 사안”이란 견해가 우세하다. 문재인 정부 당시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발표했다면 그에 맞는 근거도 정부가 뒷받침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현직 부장판사는 “소송에서 적용되는 입증책임 분배 원칙상 유족이 순직 인정을 요구할 경우 이를 거부하려면 보훈 당국이 ‘월북’을 입증해야 한다”며 “이런 입증이 안 된 상태에서 당시 정부당국이 ‘월북’ 판단을 내리고 공표했다면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양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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