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국제부 기자 시절, BTS의 해외 활약상을 외신에서 접하며 보도한 적이 있다. 미국 CNN이 ‘제2의 비틀스’라는 별명을 처음 뉴스 제목에 썼을 때다. 그때까지도 세계적 BTS 현상을 피부로 느낄 기회는 없었는데, 라스베이거스 취재 기간 팬들을 만날 기회가 생겼다.
김예진 문화체육부 기자 |
공연장 주변에서 만난 미국 팬들의 말과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동행자와 활달하게 대화 중이던 한 백인 소녀에게 다가가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그는 자세를 바꿨다. 두 손을 앞으로 모으더니 상체를 살짝 숙여 질문에 귀 기울였다. 우리나라 식 공손한 자세로 자신을 다잡기에 놀랐다. 한국 문화와 예절에 대한 지식을 쌓으려 노력해왔고, 학습한 대로 행동하려는 듯했다.
또 다른 미국 여성의 “BTS 덕에 팬데믹을 버텼다”는 경험담도 잊히지 않는다. 29세인 그는 “코로나19로 모든 게 셧다운되기 직전 BTS를 알았다. 내 친구, 친구의 친구까지, 온통 BTS였다. 팬데믹 기간 우리는 문자메시지로 매일 BTS 얘길 했고 BTS 뉴스를 공유했다. 그 과정에서 엄청나게 긍정적인 에너지가 우릴 감쌌다. (팬데믹 기간 태어난) 내 아이가 평생 가장 많이 들은 노래가 ‘버터’일 정도로 들었다”고 했다.
이들이 한국어 가사에 언어장벽을 느끼지 않는다는 외신 보도 내용도 직접 확인했다. “모든 단어를 이해하는 게 아니어도 날 이렇게 감동시키는 걸 보면, 그들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특별한 뭔가 있다. 설명하기 어렵다. 그냥 그들은 경이로운 현상이고 대세다.”
이매진이 떠오른 건 그녀 때문이었다.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 셧다운이 덮친 2020년대 초반, 이 시대의 상징곡이 이들에겐 ‘버터’였다. 전문가들은 새로운 바이러스가 또 올 수 있고, 전염병의 시대는 더 짧은 주기로 덮칠 것이라고 경고한다. 평화를 생각할 때마다 이매진을 부르듯, 도처에 퍼진 바이러스에 맞서야 할 때마다 ‘버터’를 부르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이번 경험담을 나눈 한 대중문화평론가는 이렇게 말했다. “대중문화의 본질은 한 세대가 그 시대의 기억을 공유하고 그 시대의 정서가 마음에 새겨지는 것이다. BTS는 이미 미국 10대들이나 전 세계 사람들, 2020년대 초반을 통과하는 사람들에겐 팬데믹을 떠올리는 상징이 됐다. BTS는 특정 시상식의 상이나 인정이 필요한 위치를 넘어섰다.”
취재 후기를 나눈 또 다른 문화기획자는 이런 말을 들려줬다. “아미인 딸에게 자주 하는 얘기가 있다. 엄마는 네 나이 때 팝송을 듣고 그들을 선망하며 살았는데 너흰 BTS를 듣고 세계의 다른 아미들이 K-아미를 우대할 정도이니 얼마나 행복한 건지 아느냐고. 서구 중심 세계 질서나 문화를 전복하고 새로운 문화 현상을 만드는 슈퍼스타가 있는 시기를 함께 살고 있는 게 얼마나 신나는 일인지 아느냐고.”
김예진 문화체육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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