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이 4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제64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히트곡 '버터'를 열창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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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간으로 지난 4일 개최된 제64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방탄소년단은 정교하고 어려운 퍼포먼스와 흔들리지 않는 라이브를 선사했고, 관중들의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하지만 곧 그들이 2년 연속 후보로 지명된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부문의 결과에 많은 이들은 크게 실망했고 그래미는 다시 논란에 휘말렸다.
벌써 4년째 방탄소년단을 초청한 그래미 시상식은 작년에 상을 주지 않으면서 방탄소년단 무대를 거의 맨 뒤에 배치해서 몇 시간 내내 시청자들을 인질로 잡았다고 비판받았다. 올해엔 그와 반대로 무대는 앞 순서에 배치하면서, 원래 본 시상식 전 레드카펫에서 시상하는 부문을 본 시상식의 거의 맨 뒤에 배치해서 또 시청자들을 인질로 잡았다. 가장 권위 있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그래미가 이렇게 방탄소년단의 인기를 2년 연속 노골적으로 이용하니 비판은 더욱 거세질 수밖에.
그래미상의 권위는 음반 판매량이나 인기보다 가수, 프로듀서, 엔지니어 등 그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레코딩 아카데미 회원들의 투표라는 질적 평가에 기반을 두었다. 오랫동안 후보 선정과 투표 과정의 불투명성, 특정 음악 장르에 대한 무시, 인종차별 등으로 그래미가 수없이 논란을 야기한 것도 사실이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전문가들의 식견과 평가를 존중한다. 하지만 그 '전문가' 집단의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는 백인 중년 남성 전문가의 취향만이 다른 전문가 집단에 비해 절대적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아시안 아티스트라는 것만으로도 방탄소년단은 정말 수많은 편견과 장애물에 부딪혀야 했다. 게다가 '여자애들이나 좋아하는 보이밴드'라니! 그래미의 보이밴드 홀대의 오랜 역사가 보여주는 여성 혐오에도 불구하고, 방탄소년단을 4년 연속 초대하고 2년 연속 후보에 지명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내적 갈등에 나는 가슴이 아플 지경이다. 기존의 권위와 더불어 시청률마저 떨어져 가던 상황에서 시청률을 급등하게 해 준 방탄소년단을 이용하기는 해야겠는데, 도저히 상을 줄 수는 없었던 그들. 사실 좀 안쓰럽다.
전 세계 음악 산업의 중심이 미국이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미국의 히트곡이 다른 나라에서 당연히 흥행하는 시대가 아니다. 드레이크가 미국 차트를 장악해도 멜론 차트 상위권에서 그의 이름을 볼 수는 없다. 이것이 한국만의 상황도 아니다. 그러니 팝 음악의 힘이 예전 같지 않은 지금 그래미는 '로컬 시상식'이라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난 언젠가 방탄소년단이 그래미상을 받길 원한다.
로컬 시상식의 특정 기득권 전문가 집단에 인정받고 싶어서가 아니다. 방탄소년단이 증명할 게 뭐가 더 있겠나. 하지만 방탄소년단이 그래미를 거머쥐는 그 순간은 그들이 '아시아에서 온 보이밴드'라는 이유로 차별과 편견을 겪게 했던 미국 음악시장조차도 그들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 사회를 보여주는 것 아닐까?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그래미에서 상을 받는 것은 레코딩 아카데미가 백색 구태를 버리고 시대의 흐름과 변화를 그제야 함께 호흡하게 되었거나, 적어도 그런 척이라도 해야 하는 시대가 왔음을 의미할 테다. 부디 그래미가 전문가답게 처신하길 바란다. 투명하고 공정한 시상식은 아티스트들과 대중문화 전반에 얼마나 빛나는 존재가 될까. 과거의 영광에 취해 비틀거리지 말고, 숙취 해소제나 잘 챙겨 드시길.
이지영 한국외국어대 세미오시스 연구센터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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