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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이슈 세계와 손잡는 K팝

[서태지 30주년] ① 세계 속 K팝 초석 놓은 '문화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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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마다 혁신 또 혁신…사전심의 폐지·사전녹화 등 현재까지 영향력

가요계 "창작하는 아이돌의 우상"…BTS에 "이젠 너희들 시대" 선언

연합뉴스

서태지와 아이들 3집 콘서트
(서울=연합뉴스) 지난 1994년 잠실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서태지와 아이들 3집 발매 기념 콘서트.왼쪽부터 양현석, 서태지, 이주노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김예나 기자 = '문화 대통령' 가수 서태지가 이달로 데뷔 30주년을 맞는다.

밴드 시나위 베이시스트 출신인 서태지는 1992년 3월 23일 양현석·이주노와 함께 결성한 서태지와아이들 1집으로 데뷔했다. 타이틀곡 '난 알아요'는 한국 가요계 판도를 바꿔버렸다.

이후 그룹과 솔로를 통해 발표하는 곡마다 큰 반향을 일으키며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K팝의 초석'을 닦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 내는 음반마다 전국 '들썩'…가요계 '게임 체인저'

7일 가요계에 따르면 서태지가 30년 전 내놓은 '난 알아요'는 발라드와 트로트 위주였던 가요계를 단숨에 댄스 음악 중심으로 바꿔놓은 역사적인 히트곡으로 꼽힌다.

'회오리춤'이라는 독특한 안무에 당시에는 생소했던 랩과 전자음악이 어우러진 이 노래는 10대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를 계기로 청소년은 우리나라 대중문화의 주 소비자로 급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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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서태지
[연합뉴스 자료 사진]


더욱이 한국어는 랩에 적합하지 않다는 당시 통념을 깨고 작사, 작곡, 편곡까지 홀로 해낸 20세 청년의 혜성 같은 등장은 엄청난 파장을 낳았다.

서태지는 같은 해 노래 전체가 랩으로 이뤄진, 당시로는 파격적인 구성의 '환상 속의 그대'까지 연달아 히트시키며 데뷔 첫해 주요 연말 시상식 대상을 휩쓸었다.

그는 이후 30년간 자기복제를 거부하고, 발표하는 음반마다 새로운 음악을 들고나와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헤비메탈과 국악을 절묘하게 접목한 '하여가'(1993), 후일 '응답하라 1994' 삽입곡으로 성시경이 리메이크한 '너에게'(1993), 통일을 노래해 교과서에 수록되고 남북정상회담 환송식에서도 울려 퍼진 '발해를 꿈꾸며'(1994), 주입식 교육을 정면으로 비판한 강렬한 록 넘버 '교실이데아'(1994), 갱스터랩으로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컴백홈'(1995), 3인조 얼터너티브 록 밴드로 변신해 활동한 '필승'(1995)에 이르기까지 서태지와아이들로 4년 남짓 활동하면서 많은 히트곡을 남겼다.

1996년 1월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그는 1998년 첫 솔로 음반으로 '테이크 파이브'(Take Five) 등 본격적인 얼터너티브 록 음악을 들려줬고, 2000년 국내 복귀를 선언한 뒤 내놓은 '울트라맨이야'·'인터넷 전쟁' 등 비주류 하드코어 록 음악으로 100만장 이상의 음반 판매고를 올리는 기록을 썼다.

서태지의 등장 이후 가요계의 중심은 댄스 음악으로 옮겨갔고, 이는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K팝의 밑거름이 됐다. 데뷔 음반부터 마지막 음반까지 모든 음반을 직접 작사, 작곡, 편곡한 전무후무한 이력은 후일 작사·작곡에 직접 참여해 아티스트 역량을 뽐내는 '셀프 프로듀싱 아이돌'의 탄생에도 영향을 줬다.

서태지는 이 밖에도 2000년 광고 출연료 15억원으로 당대 최고 기록을 쓰는가 하면 2011년 뒤늦게 드러난 결혼과 이혼 사실이 전국을 강타하는 등 행보 하나하나가 뜨거운 이슈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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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와 아이들 1집 음반
[촬영 이충원]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 "새로운 세대 함성…강력한 대중문화 위상 만들어"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는 "서태지와아이들은 음악적으로 랩 음악을 대중에게 친숙하게 한 공이 있다"며 "그는 모든 K팝 댄스 그룹의 효시로, 창작하는 아이돌의 우상 같은 존재"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서태지 데뷔는 오늘날 K팝을 만든 결정적인 순간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며 "그가 정해진 길을 따르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하면서 주관대로 밀고 나간 점이 중요하다"고 짚었다.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는 "대중가요는 과거에는 '오락' 정도였는데 노래를 통해서 사회적 유명 인사가 된 사람은 사실상 서태지가 최초"라며 "'교실이데아' 같은 노래를 통해 주류 음악으로 새로운 세대의 함성을 들려줬다는 점에서 그의 '저항'은 세대를 초월했다"고 떠올렸다.

이어 "그는 사회적 저항의 의미를 새롭게 되새겨준 인물로, '문화 대통령'이라는 단어로 압축할 수 있다"며 "대중문화가 갖는 위상을 강력하게 한 인물"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임 평론가는 "서태지는 (서태지와아이들이라는) 팀을 만들어 자기가 원하는 구상을 표현해냄으로써 댄스의 힘을 완벽하게 보여줬다"며 "이는 K팝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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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와아이들
[연합뉴스 자료 사진]


◇ 사전심의제 폐지·'컴백 패턴'…서태지 영향은 현재진행형

서태지는 음악 외에도 가요계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우선 음반을 발표하고 TV·라디오·콘서트 등으로 활발하게 활동한 뒤 다음 음반 준비를 위해 종적을 감추는 이른바 '컴백 패턴'도 서태지와아이들에서 비롯됐다. 이전까지 365일 대중에게 얼굴을 비추는 것이 자연스럽던 가요계에 다음 음반을 위한 재충전 시간을 도입한 것이다.

1995년 서태지와아이들 4집 수록곡 '시대유감'의 사회 비판적인 가사가 한국공연윤리위원회의 사전 심의에 걸리자 항의 표시로 아예 가사를 빼고 음반에 실어버린 사건은 그의 영향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이후 많은 팬이 서명 운동 등을 펼치며 사전 심의제의 문제점을 지적했고, 이를 도화선으로 이듬해인 1996년 음반 사전심의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 사건은 서태지의 음악이 단단한 지지층을 기반으로 의미 있는 변화를 일으키는 힘이 있음을 만천하에 보여줬고, 그가 '문화 대통령'이라는 별명을 얻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서태지는 국내 복귀를 선언한 2000년에는 연주의 완성도 등을 이유로 TV 음악 프로그램 생방송 무대에 서는 대신 별도의 스테이지를 꾸려 녹화해 본방송에 내보내는 '사전녹화'를 고집했다.

당시 가요계에서는 이를 두고 서태지만을 위한 '특혜'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지만, 결국은 현재 음악 프로그램에서 무대의 완성도를 높이는 하나의 포맷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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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5주년 기념 콘서트에서 한 무대에 선 서태지와 방탄소년단
[서태지컴퍼니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태지와아이들의 등장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 두각을 드러낸 이른바 'X세대'가 여전히 우리 대중음악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공교롭게도 서태지를 비롯해 하이브와 JYP를 각각 이끄는 방시혁과 박진영 모두 1972년생이다.

여기에 서태지가 2017년 자신의 음악 여정을 집대성한 25주년 콘서트에서 함께 무대에 오른 방탄소년단을 향해 "이제는 너희의 시대"라고 말한 대목은 묘한 여운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방탄소년단을 발굴한 이가 바로 동갑내기 X세대 방시혁이기 때문이다.

강문 대중문화평론가는 "한 슈퍼스타가 탄생하면 이를 촉매로 삼아 10년, 20년 그 흐름대로 가는 경우가 많은데 서태지라는 충격의 여파는 30년간 지속되고 있다"며 "서태지가 직접 던진 메시지 외에도 이를 향유한 X세대 소비자가 또 다른 생산자가 되면서 그 유산을 전승하고 있다"고 말했다.

ts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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