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밀라 발리예바(16·러시아)가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2관왕을 눈앞에 두고 있다. 체재 우위 과시를 위해 소련·동독 등 공산권 국가에서 조직적인 도핑에 나선 1970~80년대의 스포츠 무대를 다시 보는 것 같다.
겉모습만 봐도 충분히 의심이 가는 선수일지라도 무죄 추정은 지키되 금지약물 복용이 밝혀지면 즉시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는 것이 지금까지 일반적인 조처였다. 발리예바가 도핑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것이 드러난 단체전 우승 후에도 개인전에 참가하는 것은 40년 전에도 없던 일이다.
카밀라 발리예바가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여자피겨스케이팅 싱글 쇼트프로그램 1위 연기를 펼치고 있다. 발리예바는 단체전 우승 후 금지약물 복용이 드러났음에도 개인전에 참가하는 중이다. 사진=AFPBBNews=News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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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 서울대회 남자육상 100m는 올림픽 역사에서 가장 큰 금지약물 스캔들로 손꼽힌다. 벤 존슨(61·캐나다)은 우승 3일 만에 도핑테스트 양성반응이 밝혀졌다. 금메달은 당장 박탈됐다.
존슨은 세계적인 비난 여론을 이기지 못하고 서울올림픽 남은 종목 출전을 포기하고 한국을 도망치듯 떠났다. 국제육상경기연맹이 내린 선수자격 2년 정지 징계가 나오기도 전이었다. 베이징동계올림픽은 34년 전 서울하계올림픽보다 못한 운영을 보여주고 있다.
IOC는 2005년 셜리 바바쇼프(65·미국)에게 올림픽 훈장을 줬다. 1972·1976 올림픽 여자수영 혼·계영 금메달리스트 바바쇼프는 동독의 집단적인 금지약물 의혹을 제기했다가 ‘개인전 우승이 없는 패배자의 근거 없는 비방’으로 몰려 국제수영계로부터 따돌림을 당했다.
바바쇼프는 수영 강국 미국에서조차 외면당하여 지도자가 아닌 우편집배원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그러나 1992년 12월 소련 해체로 공산주의 진영이 무너지고 이듬해부터 기밀문서가 대대적으로 공개되자 동독 국가대표팀 경기력 향상 물질 투여 사실이 모두 드러났다. 국제올림픽위원회가 자체 최고 등급 훈장으로 바바쇼프 명예를 회복시켜준 이유다.
서울올림픽 이후 국제육상계에 따르면 존슨은 최소한 1987년부터 도핑 의혹이 암암리에 제기됐다. 존슨과 바바쇼프의 사례는 ‘무죄 추정 및 적발자에 대한 무관용’으로 대표되는 금지약물 정책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발리예바는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2021년 12월 러시아선수권 이후 제출한 샘플에서 양성반응을 보였다. 금지약물 복용은 ‘의혹’이 아닌 ‘사실’이 됐다. 도핑은 일정 기간의 경기력 향상뿐 아니라 훈련 강도를 높일 수 있게 해준다. 2022년 2월 베이징올림픽 성적도 인정하기 어려운 이유다.
벤 존슨은 1988 서울하계올림픽 남자육상 100m 우승 3일 만에 도핑테스트 양성반응이 나와 금메달을 박탈당했다. 세계적인 비난 여론을 못 이겨 자격정지 징계가 나오기도 전에 한국을 도망치듯 떠났다. 사진=AFPBBNews=News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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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슨은 서울올림픽 이후 조사를 통해 1년 전 금지약물 복용도 사실로 드러나 월드챔피언십 우승 및 당시 수립한 세계신기록도 무효가 됐다. 발리예바가 베이징올림픽 단체전 금메달에 이어 개인전 정상에도 등극할 기세인 것과 대조적이다.
29년 전 일도 잊지 않고 바바쇼프를 챙겨준 올림픽 정신은 베이징에선 찾기 어렵다. IOC는 “이의를 제기했지만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로부터 기각당했다”고 변명하겠지만 땅에 떨어진 공정성은 다시 주워 담기 어렵다.
세계반도핑기구(WADA)는 ‘지적장애인과 만 16세 이하 선수는 복잡한 금지 규정을 다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조항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발리예바를 통해 이를 악용할 수 있음이 드러났다.
공산권이나 독재 국가를 중심으로 유소년 때부터 사회에서 격리시켜 호르몬을 투입하며 키운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경쟁한 과거는 엘리트 체육의 비극이다. 경기력·훈련 향상 물질로 무장한 제2, 제3의 발리예바가 금메달을 노리고 등장할 수도 있는 미래를 막아야 한다.
[박찬형 MK스포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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