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 규정 위반에도 출전 승인, 공정해야 할 스포츠 정신 훼손
다른 러시아 선수까지 의심받는 상황…금메달 따도 시상식 안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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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선수에게 금지 약물은 매력적인 금단의 열매다. 개인의 선의와 도덕성에 기대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도핑과 반도핑 진영의 싸움은 진화하고 있다. 불법 약물 검사법이 개발되면 회피하는 방법을 알아내거나 아예 검사에 걸리지 않는 새로운 약물의 복용이 시작된다.
약물의 힘을 통해서라도 기량 향상을 원하는 운동선수 심리를 고려하면 도핑 대책은 언제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가 될 수밖에 없다.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일어난 카밀라 발리예바(러시아) 사건은 이마저도 어렵게 만들 듯하다. 스포츠중재재판소(CAS)가 도핑 규정을 위반한 발리예바의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출전을 승인하면서 상황이 꼬여버렸다.
발리예바는 지난해 12월 러시아선수권대회에서 남자 선수들도 버거워하는 쿼드러플(4회전) 점프를 하며 여자 싱글 비공인 세계 기록을 작성했다. 당시 제출한 소변 샘플에서 금지 약물인 협심증 치료제 트리메타지딘이 검출됐다. 혈류량을 늘려 지구력을 증진하는 흥분제로 사용될 수 있어 세계반도핑기구(WADA)에서 2014년 금지 약물로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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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반도핑기구(RUSADA)는 잠정 출전 정지 징계를 내렸다가 철회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WADA, 국제빙상경기연맹(ISU)은 CAS에 이의 신청을 제기했다. CAS는 발리예바의 올림픽 출전 길을 열어줬다. 올림픽 출전 제한은 만 15세 미성년자인 발리예바에게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 발리예바가 올림픽 기간에는 도핑에 걸리지 않았다는 점 등도 이유로 들었다.
발리예바가 이번 대회에서 메달을 딴다고 해도 피겨계에서 인정받을 가능성은 없다. 공정과 투명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스포츠 가치를 훼손했기 때문이다. ‘불공정 경쟁’을 벌여야 하는 선수들은 경기를 앞두고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김연아는 "도핑을 위반한 선수는 경기에 출전할 수 없다. 이 원칙은 예외 없이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지 약물 복용 의혹은 발리예바와 함께 올림픽 출전권을 따낸 안나 셰르바코바와 알렉산드라 트루소바(이상 러시아)도 피해 갈 수 없다. 피겨계는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아델리나 소트니코바)과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알리나 자기토바)에서 따낸 금메달까지 의심하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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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금지 약물 복용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은 나라다.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샘플을 바꿔치기하는 등 국가 차원의 도핑 조작을 일삼아 IOC의 제재를 받고 있다. 올해 12월까지 올림픽에서 국호나 국기를 사용할 수 없다. 이번 올림픽도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 소속 개인 자격으로 참가하고 있다. 딕 파운드 IOC 최고참 위원은 "러시아는 반성하지 않았다. 앞으로 올림픽에 2~3회 더 결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발리예바가 어떤 경로로 금지 약물을 복용했으며 누가 이를 권했는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의심의 눈초리는 혹독한 훈련으로 악명이 높은 예테리 투트베리제 감독에게 향한다. 그는 2차 성장이 시작되지 않은 작고 날렵한 아이들을 선별해 고난도 점프를 요구한다. 예브게니아 메드베데바, 율리야 리프니츠카야, 자기토바 등 가르침을 받은 선수 대부분은 거식증에 시달리다 피겨를 일찍 중단하거나 포기했다. CAS의 설명과 달리 회복할 수 없는 피해는 계속되는 셈이다.
금메달을 따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IOC는 발리예바가 여자 싱글 메달권에 입상하면 꽃다발을 주는 간이 시상식은 물론 메달을 주는 공식 시상식도 열지 않을 방침이다. 발리예바가 지난 7일 동료들과 합작한 러시아 피겨 단체전 금메달도 규정 위반이 최종 확인되면 박탈할 계획이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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