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에 동결된 아프간 자산 8조원, 절반은 9·11 테러 유족위해 사용

나머지는 아프간 원조기금 조성

9·11 테러 희생자 유족들이 미국 내에 동결된 아프가니스탄 자산 70억달러(약 8조4000억원)의 절반을 배상금으로 받게 될 전망이다. 나머지 절반으론 아프간 주민을 직접 원조하는 기금을 조성한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지난 11일(현지 시각) 이 같은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아프간을 점령한 테러 집단 탈레반을 합법적 집권 세력으로 인정하지 않고 제재를 공식화하되, 아프간의 인도주의적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동결 자금의 절반을 풀어준 ‘묘수’라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2001년 뉴욕 9·11 테러 직후 희생자 유족들은 테러를 주도한 알 카에다와 수장 오사마 빈 라덴을 숨겨준 탈레반 등 관련 집단을 상대로 배상금 청구 소송을 냈다. 2012년 미 법원은 유족의 손을 들어줬지만, 현실적으로 돈을 받아낼 방법은 없었다.

그런데 20년 만인 지난해 8월 탈레반이 아프간을 다시 장악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아프간 민주 정부가 그간 미국 등 각국에서 받은 재건 지원금 등 70억달러가 뉴욕 연방준비은행에 예치돼 있기 때문이다. 9·11 테러 유족 150여 명은 “이 예치금이 사실상 탈레반의 돈이 된 만큼 전액 압류해달라”고 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반면 일부 유족은 “그 돈을 우리가 받으면 죄 없는 아프간 주민들의 고통이 심해질 것”이라며 반대했다고 한다.

백악관은 미 법무부와 국무부, 재무부와 함께 이 문제를 논의한 끝에 자산을 절반씩 나눠 9·11 테러 유족과 아프간 주민에게 지원하기로 했다. 미국이 국내에 동결된 외국 정부 자산을 자국민을 위해 전용(轉用)하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바이든 정부는 원조 액수를 늘리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NYT는 전했다. 탈레반 대변인은 이날 “미국이 아프간 국민의 돈을 훔친 것은 최악의 도덕적 부패”라고 비난했다.

[뉴욕=정시행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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