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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지난해 아메리칸리그 최우수선수(MVP)는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였다. 2020년 사이영상 투표에서는 두 명의 일본인 투수(다르빗슈 유·마에다 겐타)가 투표 최종 순위 3위 내에 들었다. 21세기 들어 일본 선수들, 특히 투수들의 활약상은 대단했고 지금도 많은 일본인 선수들이 MLB 무대를 타진하고 있다. MLB의 구단의 반응도 호의적이다.
MLB.com이 조명한 선수는,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모든 일본인 선수 앞에 있었던” 노모 히데오(54)다. 노모는 1995년 2월 14일 LA 다저스와 공식 계약을 발표했다. 아마추어 시절부터 모든 구단들의 관심을 받았고, 또 일본프로야구를 일찌감치 평정한 노모는 미국 진출의 꿈을 품은 끝에 다저스 유니폼을 입었다. 미국 진출 과정에서 여러 잡음이 있기는 했지만 노모는 많은 것을 포기하고 태평양을 건넜다.
MLB.com은 “노모 이전까지 29시즌 동안 메이저리그에서 뛴 일본인 선수는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노모가 1995년 내셔널리그 신인상을 수상한 이후 26번의 시즌에서 60명이 넘는 일본인 선수들이 그의 뒤를 따랐다”며 이 역사적인 변화의 기점에 노모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지금은 웬만한 일본인 선수들은 ‘기본’을 한다는 평가를 받는 시대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보장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고 덧붙이며 노모의 도전을 높게 샀다.
실제 노모는 입단 당시 많은 연봉을 받지도 못했고, 자리가 보장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미일 올스타전 당시부터 MLB의 꿈을 꿨던 노모는 개의치 않았다. 곧장 실력으로 증명했다. 1995년 28경기에서 13승6패 평균자책점 2.54를 기록하며 신인상을 수상했다.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투표에서도 4위에 올랐다. ‘토네이도’라는 별칭이 붙은 독특한 폼은 신드롬을 일으키며 그를 올스타로 인도했다.
노모는 2008년까지 MLB 통산 323경기(선발 318경기)에 나가 123승109패 평균자책점 4.24를 기록했다. 123승은 박찬호(124승)에 이어 동양인 선수로는 역대 2위 기록이다. 노모 이후 수많은 일본 대표 투수들이 MLB에 왔지만, 아직 100승을 넘긴 투수도 없다. 노모 또한 만 27세의 나이에 MLB에 왔음을 고려하면 여전한 위대함을 실감할 수 있다.
노모는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단 1.1% 득표를 얻는 데 그쳐 첫해 탈락했지만, MLB.com은 “만약 명예의 전당이 스포츠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선구자들을 위한 투표라면 노모는 분명한 선택이 될 것”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일본을 비롯한 동양 선수들의 메이저리그 진출의 초석을 놓은 건 대단한 업적이라는 의미다.
MLB.com은 “너무나 많은 다른 선수들이 그의 뒤를 따랐고, 또 번창했다. 그리고 현재는 ‘쇼타임’(오타니 쇼헤이)의 시대로 이어졌다”면서 “스즈키 이치로는 새로운 포스팅시스템을 통해 메이저리그에 왔고, (약간의 편법 논란이 있었던 임의탈퇴 신분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노모가 이 길을 닦았다고 볼 수 있다. 훗날 메이저리그에서 6년을 뛴 노리치카 아오키와 같은 일본 선수들은 어린 시절 노모가 메이저리그에서 던지는 모습을 TV를 통해 보고 자랐다”며 노모가 일본야구역사에 남긴 업적을 조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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