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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섭의 MLB스코프] '세 번의 시련' 케빈 가우스먼, 로이 할러데이를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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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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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이창섭 칼럼니스트] 케빈 가우스먼(31)은 잘 알려지지 않은 투수였다.

출발은 화려했다. 2012년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4순위였다(볼티모어). 가우스먼보다 먼저 이름이 불린 카를로스 코레아(휴스턴) 바이런 벅스턴(미네소타) 마이크 주니노(시애틀)는 모두 타자였다. 투수 중에서는 가우스먼이 가장 먼저 뽑혔다.

볼티모어는 당연히 가우스먼에 대한 기대가 남달랐다. 드래프트 이듬해 곧바로 메이저리그에 올려 조기 교육에 들어갔다. 가우스먼은 급속도로 좋아지지는 않았지만, 천천히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데뷔 후 처음 규정이닝에 진입한 2016시즌, 9승12패 평균자책점 3.61(179.2이닝)을 기록했다. 2017시즌에는 개막전 선발투수였다.

가우스먼은 승승장구하는 듯 했다. 그러나 가우스먼의 시간과 볼티모어의 시간이 엇갈렸다. 가우스먼이 힘차게 솟아오를 무렵, 볼티모어는 서서히 동력을 잃어갔다. 백지 상태로 돌아가 도면을 다시 그려야 하는 시기였다. 결국 볼티모어는 2018시즌 중반 주축 선수들을 대거 넘기면서 전면 리빌딩에 돌입했다. 매니 마차도와 잭 브리튼, 조너선 스콥이 팀을 떠난 가운데 가우스먼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로 이적했다. 첫 번째 시련이었다.

애틀랜타에서 가우스먼은 극과 극이었다. 2018시즌 이적 직후 10경기 성적은 5승3패 평균자책점 2.87로 뛰어났다. 하지만 다음 시즌 부상과 부진을 면치 못했다. 첫 16경기 성적이 3승7패 평균자책점 6.19였다. 애틀랜타는 가우스먼에게 큰 미련이 없었다. 그래서 8월초 사실상 방출을 의미하는 웨이버 공시를 했다. 두 번째 시련이었다.

가우스먼에게 관심을 보인 팀은 신시내티 레즈였다. 신시내티는 가우스먼을 불펜으로 활용했다. 선발 부담에서 벗어난 가우스먼은 성적을 회복했다(15경기 평균자책점 4.03). 그러나 신시내티는 마지막 연봉조정을 앞둔 가우스먼의 몸값을 감당하고 싶지 않았다. 가우스먼은 시즌이 끝나고 신시내티에서 논텐더 방출을 당했다. 세 번째 시련이었다.

현실에 부딪친 가우스먼은 자신의 미래를 확신하지 못했다. 특히 선발 커리어는 끝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가우스먼에게 접근한 거의 모든 팀들이 불펜 계약을 제안했다. 그런데 오직 한 팀만이 가우스먼이 선발로 뛰길 원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였다.

가우스먼은 유일하게 선발 기회를 보장해 준 샌프란시스코 유니폼을 입었다. 그리고 커리어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코로나19로 인한 단축 시즌에서 3승3패 평균자책점 3.62(12경기)로 반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9이닝 당 탈삼진 11.92개는 개인 최고 기록이었다. 가우스먼은 포심 패스트볼 최고 구속이 99마일에 달하는 등 자신감을 완전히 되찾았다.

샌프란시스코는 FA 자격을 얻은 가우스먼에게 퀄리파잉 오퍼를 날렸다. 퀄리파잉 오퍼는 연봉 상위 125명의 평균 연봉을 책정한 1년 연장 계약이다. 당시 금액은 1890만 달러로, 결코 적지 않았다. 샌프란시스코가 가우스먼의 실력을 인정한 것이다. 가우스먼은 시장에 나가지 않고 자신을 믿어준 샌프란시스코와 1년 더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가우스먼은 2020시즌을 포기한 버스터 포지와 꼭 함께 호흡을 맞춰보고 싶다고 말했었다).

몸과 마음이 안정된 2021시즌, 가우스먼은 최고의 활약을 선보였다. 첫 12경기 동안 단 한 번도 패전을 당하지 않고 7연승을 질주했다(평균자책점 1.27). 전반기 9승3패 평균자책점 1.73(18경기)의 성적은 제이콥 디그롬(34)의 성적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눈부신 피칭을 이어간 가우스먼은 생애 첫 올스타 투수로 선정됐다. 전반기 마지막 경기에 등판하면서 올스타전 출장은 무산됐다. 그러나 고향 콜로라도에서 열린 올스타전에 나가는 것만으로도 감회가 새로웠다. 가우스먼은 후반기 들어 기복이 심해졌지만, 시즌 다승(14) 평균자책점(2.81) 이닝(192) 탈삼진(227) 등 개인 기록을 모두 갈아치웠다.

가우스먼이 이토록 달라진 비결은 무엇일까. 일단 스플리터를 빼놓을 수 없다. 스플리터는 샌프란시스코를 매료시킨 구종이었다. 샌프란시스코는 가우스먼이 스플리터를 충분히 던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비중을 높이는 차원이 아니었다. 앤드류 베일리 투수코치는 가우스먼에게 스플리터를 보다 다양한 카운트에 던질 것을 주문했다.

스플리터는 수세에 몰린 타자가 헛스윙하기 딱 좋은 공이다. 이에 일반적으로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 쓰여진다. 하지만 베일리는 가우스먼의 스플리터는 반드시 탈삼진을 위한 공이 아니라고 여겼다. 낮게 떨어질뿐만 아니라 우타자 몸쪽을 파고드는 움직임도 날카로웠기 때문에 헛스윙과 빗맞은 타구 유도가 모두 가능했다. 실제로 6월24일 맞대결에서 삼진만 두 차례를 당한 오타니 쇼헤이(28)는 가우스먼의 스플리터를 두고 "전혀 본 적이 없는 움직임"이라고 말했다. 오타니도 마운드에서는 스플리터에 일가견이 있는 투수다.

<스탯캐스트>는 구종별 득점 가치(Run Value)를 제공한다. 상황과 카운트에 따라 차별화된 점수를 매김으로써 구종이 득실점에 얼마나 관여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투수는 음수일수록 실점 방지 역할을 한 것으로 본다). 이 수치에서 가우스먼의 스플리터는 마이너스 23을 축적했다. 이는 선발투수 특정 구종 득점 가치에서 두 번째로 좋았다(카를로스 로돈 포심 마이너스 26).

2021 스플리터 득점 가치 순위 (피안타율)

-23 : 케빈 가우스먼 (0.133)
-12 : 오타니 쇼헤이 (0.087)
-10 : 프랭키 몬타스 (0.126)


스플리터의 쓰임새만 달라진 건 아니다. 사실 가우스먼의 스플리터는 원래도 위력적이었다. 결정적인 변화는 역시 커맨드에 있었다.

가우스먼은 신시내티 시절 데릭 존슨 투수코치에게 "던지는 지점의 목표 설정이 너무 늦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 단점을 고치기 위해 참고한 종목이 양궁이었다. 각종 글과 영상으로 양궁을 독학한 가우스먼은 양궁 선수들의 자세를 인상적으로 받아들였다. '작은 곳을 노려야 놓치는 것도 작다(aim small, miss small)'는 격언은 가우스먼에게도 필요한 조언이었다. 이 한 마디를 마음에 새긴 가우스먼은 더 섬세한 피칭을 하려고 노력했다.

가우스먼은 좌절하지 않았다. 고개를 숙이는 대신 고개를 들었다. 그 결과 샌프란시스코에서 진면목을 드러냈고, 이번 겨울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5년 1억1000만 달러 계약에 성공했다. 방출 투수에서 1억 달러 투수가 되는 인생 역전을 이뤄냈다.

토론토는 가우스먼에게 특별한 팀이다. 가우스먼은 과거 토론토의 에이스였던 로이 할러데이를 보면서 꿈을 키웠다. 할러데이의 고향이 콜로라도라는 것을 알게 된 후 더 열렬히 응원했다. 가우스먼은 인터뷰를 통해 "나이가 들면서 콜로라도에서 야구선수가 된다는 게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 콜로라도 출신의 메이저리그 선수는 100명도 채 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만의 유대감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2017년 11월, 할러데이는 비행기 추락 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비보를 접한 가우스먼은 황망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가우스먼은 할러데이를 기리기 위해 샌프란시스코에서 등번호 34번을 달았다. 34번은 할러데이가 필라델피아에서 달던 등번호였다. 가우스먼은 토론토에서도 등번호 34번을 그대로 달고 뛴다.

가우스먼은 할러데이처럼 시련을 딛고 일어선 투수다. 그리고 할러데이처럼 토론토 에이스로 올라서길 기대한다. 할러데이를 동경했던 선수가 할러데이의 영혼이 깃든 곳에서, 또 다른 할러데이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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