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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김창금의 무회전 킥] 학생선수의 ‘운동권’이라는 용어 낳은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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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정책 관련 현장서 ‘운동권’ 목소리

2000년대 초 등장 수업권 담론과 대립

용어는 시대 반영하지만 ‘상호이해’ 필요


한겨레

2016년 열렸던 학교체육 진흥포럼. 대한체육회 제공


한겨레

처음 기자가 됐을 때 이해하기 힘든 말이 선수권이었다. ‘선수권대회’ ‘종별선수권’ ‘학생선수권’ 등 다양하게 쓰이지만, 선수권(選手權) 자체에는 의미를 풀 단서가 거의 없었다. 이게 영어 챔피언십의 번역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지만, ‘챔피언다움’ ‘챔피언되기’라는 영어 원뜻과는 여전히 거리가 있다.

스포츠 용어는 언론에서 쓰기 시작하면 정해지고, 한번 고정되면 쉽게 바뀌지 않는다. 또 새로운 용어는 특정한 가치나 인식을 대중에게 심어준다.

포털 뉴스라이브러리에서 ‘선수권’을 검색하면 1920년대 신문에서 이미 선수권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런 말이 ‘건강한 신체’ 담론이 팽배했던 당시 대중에게 운동이나 우승, 선수 등을 긍정적인 기호로 받아들이게끔 하였을 것이다.

최근 학교체육 정책과 관련해 등장한 용어 가운데 ‘운동권’이 있다. 학교 운동부에 적을 둔 학생 선수들한테도 ‘운동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뜻인데, 주로 학생 선수나 학부모, 지도자, 체육회를 중심으로 터져 나오는 말이다.

도대체 학생 선수가 왜 운동할 권리를 얘기하는 것일까. 거기엔 이해 당사자 간의 복잡한 문제가 있다.

먼저 운동권이라는 말은 ‘수업권’의 대립항으로 나왔다. ‘수업 받을 권리’라는 수업권은 2000년 시드니올림픽을 앞둔 수영 대표선수 장희진이 중학교 수업을 받으면서 운동하고 싶다며 태릉훈련원에서 나오면서 비롯됐다. 당시 정치권과 시민단체 등이 ‘선수는 오로지 운동만 해야 한다’는 관념을 깨기 위해 나섰고, 메달을 따기 위한 엘리트 스포츠의 반쪽교육을 비판하는 용어로 사용됐다.

2019년에는 스포츠혁신위원회의 권고로 학생선수의 수업권 확보 장치가 더욱 강화됐고, 교육부와 문체부의 정책도 선수들의 수업권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다만 방향과 이념이 옳더라도, 그것의 논리와 정당성은 따져볼 일이다. 가령 정부는 학생선수들의 대회 출전을 결석으로 취급하지 않는 일수를 올해 초등학교 10일, 중학교 15일, 고등학교 30일로 줄였다. 내년에는 이를 더 줄이고, 장래에는 모두 없앨 방침이다. 대신 일반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체험학습’ 제도를 이용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선수들이나 학부모, 지도자들은 대회 출전을 학교장이 체험학습으로 인정할지에 대해 불신하고 있다. 일선 학교의 한 교감과 통화를 했는데, 그는 “대회 출전을 명목으로 체험학습을 낸다면 허가하지 않겠다”는 뜻을 보였다. 이런 상황이라면 선수나 학부모, 지도자들이 얘기하는 “정부가 현장을 너무 모른다”라는 비판이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니다.

주말에만 리그나 대회에 참가해 출결 문제를 해결하라고 하지만, 생활체육이 활성화되는 추세에서 체육관이나 운동장 등 시설을 확보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16강이든, 8강이든 전국대회 성적이 반영되는 대학 입시의 현실이 존재하지만, 이런 문제를 선제적으로 해소하지 못하면서 신뢰감을 주는 정책 대안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교육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합의나 전제 없이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것도 한계다. 수업권을 강조하는 쪽에서는 운동을 공부와 대립적인 위치에 놓는 경향이 있는데, “신체를 통한 교육”이나 운동을 통한 ‘역량’의 강화는 가능하다.

체육특기자라는 말은 학교를 국위선양을 위한 엘리트 선수 확충의 전진기지로 만들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제 그 효력은 다했고, 학생의 정신과 신체의 조화로운 발전을 위한 학교체육의 제자리 찾기가 시작됐다.

해방 이후 70여년간 체육을 특별한 위치로 둔 특기자 문화를 하루아침에 제로 포인트로 돌릴 수 없다. 그것이 현실적이지 못한 이유는, 정치적으로 결정되는 것의 조급성 때문이다. 운동권이라는 신조어가 왜 나왔는지, 정책 당국자들은 살펴야 한다.

김창금 선임기자·스포츠 사회학 박사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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