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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프리즘] '껌값 보상' 디지코 KT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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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성연광 에디터]
머니투데이

광화문 KT본사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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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쌈장(Ssamgjang), 코넷으로 접속한다." 1999년 스타크래프트 1세대 프로 게이머 이기석을 모델로 기용해 화제가 됐던 KT 인터넷 '코넷(KORNET)' CF . 전화 기반 PC 통신이 대세였던 그 당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최초의 인터넷 서비스가 '코넷'이다. "1초가 승패를 결정하는 인터넷 게임, 이제 두번 거치는 PC통신은 거부한다"는 광고 카피처럼 당시만 해도 인터넷은 남보다 더 빠르고 끊김 없는 게임을 즐기기 위한 오락 상품이었다.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그다지 불편하지도 않은.

그로부터 20여년이 흐른 지금은 어떨까. 인터넷은 우리 일상생활은 물론 경제 활동 전반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재가 됐다. 지난달 25일 터진 KT 통신 장애사고는 네트워크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제대로 보여줬다. 초중고 원격 수업과 기업 업무 시스템이 끊겨 사용자들은 일대 혼란을 겪여야 했다. 자영업자들은 사실상 배달앱 미비와 카드결제 오류로 '점심 장사'를 망쳤고, 병원 업무와 119 긴급 호출 업무까지 차질을 빚었다. 모바일 뱅킹 이용자들은 그 시간 거래가 안돼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불과 89분의 네트워크 정전이 가져온 피해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코로나19(COVID-19) 비대면화로 급진전된 초연결 시대 길목에서 맞닥뜨린 통신 재난은 우리 모두를 공포의 도가니에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만약 5G(5세대 이동통신) 기반 자율주행이 상용화된 시점이었다면 어땠을까. '89분'이 아닌 단 '8초'만 끊겼어도 끔찍한 인명 사고를 초래할 수 있다. 네트워크(인터넷)의 가치와 중요도가 20여년 전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달라졌다는 얘기다.

# 그래서 이번 KT 통신 장애 사고는 한심하고 어이없다. 정부 조사결과에 따르면 통상 심야 시간대 진행해야 할 장비 교체 작업을 한낮에 진행했고, 그것도 테스트나 시뮬레이션 없이 장비를 꽂았다. 이마저 현장에 본사 관리자는 없었다고 한다. 사고 발생 직후도 문제다. '디지코'(디지털플랫폼기업)를 표방하며 AI(인공지능)로 네트워크 장애를 사전 진단하는 서비스까지 외부에 팔겠다는 회사가 정작 자사 전국망 먹통사고에 1시간 30여분 가까이 원인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망 관리의 기본 원칙과 상식도 없었고, 사고 대응 메뉴얼도 작동하지 않았다. 3년 전 서울 서북부 지역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던 아현국사 화재사고의 악몽을 KT만 까맣게 잊은 듯 하다. 이러고도 KT가 국가기간통신사업자 자격이 있는 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사고 조사에 나섰던 정부 관계자조차 "기본만 지켰어도 발생할 수 없는 사고"라며 혀를 내둘렀다.

# 근원적으로는 성급한 탈(脫)통신 정책이 불러온 참사다. 통신사들이 탈통신을 외치는 건 충분히 이해할만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단골메뉴처럼 가계 통신비 인하 정책을 쏟아낸다. 통신 사업으로 수익을 내면 악덕기업으로 비난받는 사회적 분위기에 통신 사업의 성장 가치를 잃은 지 한참이다. 외부에선 공공성을 요구받지만 통신사들은 엄연히 민영기업이다. 미래 성장가치가 있어야 기업으로 존속 가능하다. 이들이 탈통신 신사업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한때 공기업이었던 KT라고 다를까. 2002년 민영화 이후 이석채·황창규 회장 등 역대 외부 CEO는 물론 정통 KT맨인 구현모 사장마저 '탈통신' 대열에 앞장섰다. 구 사장도 취임 후 '디지코 KT' 전략에 사활을 걸었다. 다른 경쟁사들에 비해 여전히 조직과 인력구조가 비대한 KT 입장에선 사업구조 전환이 보다 절실 했는 지도 모른다. 당연히 CEO 연임과도 맞물려 있다. 그렇다 해도 기본과 원칙은 고수했어야 했다. 통신사 미래 신사업은 탄탄한 통신 인프라 경쟁력이 뒷받침돼야 하는 건 당연한데 현실은 달랐다. 돈 되는 신사업에 투자 우선순위가 집중되다 보니 기존 통신망 관리·유지 보수는 뒷전이다. KT 내부에서조차 "예고된 참사"라고 쑥덕인다. 뜬금없이 AI(인공지능) 기업으로 포장하는데 급급한 나머지 통신망 운영의 기본을 소홀히 한데서 필연적으로 발생한 휴먼 에러라는 비판이다.

# 비단 KT만의 문제만일까. 전문가들은 제2, 제3의 통신 대란을 막을 순 없어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현재의 통신망 관리 체계를 재점검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인터넷·통신 서비스는 이미 전기, 수도와 같은 공공재나 다름 없다. 예고 없이 한번 끊기면 국민 경제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안보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실제 사이버 공격의 주된 표적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정부가 통신사들의 망 관리 실태를 관리·감독할 법적 규정이 미흡하다. 통신사의 양심과 재량에 맡길 수 밖에 없단 얘기다.

# 우선적으론 현실과 괴리가 큰 장애 보상 기준부터 손을 봐야 한다. KT가 어제 발표한 보상대책을 봐도 그렇다. 유무선 서비스 가입자들에게 최대 15시간치분 요금(소상공인 10일치분)을 12월 청구요금에 감면해주겠다는 것이 골자다. 대략 개인은 1000원, 소상공인은 8000원 정도를 보상받게된다. KT는 "이용약관에 명시된 대상이 아니지만, 장애 시간(85분) 10배 수준의 보상액"이라고 생색냈지만, 불통 당시 배달앱, 카드결제기가 먹통이 돼 점심 장사를 망친 자영업자나 콜을 받지 못한 택시기사 등 실제 현장의 체감 피해를 감안하면 '새발의 피'다. 오히려 2018년 아현국사 화재사고 때보다도 보상액이 형편없다. 정부가 나서서 통신사들의 서비스 장애 보상기준을 현실에 맞게 뜯어고쳐야 한다. 통신망 장애가 잦을 경우 타사 통신사로 쉽게 갈아탈 수 있도록 번호이동·결합상품 위약 규정도 바꿔야 한다. 경쟁력을 상실한 통신사는 시장에서 도태될 수 있도록 말이다.

# 이 참에 통신망 국유화 방안을 논의해 볼 필요도 있다. 핵심 통신 설비를 국가가 매입·운영하고, 기존 통신사들이 이를 임대해 서비스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으로, 통신사마다 처한 경영 여건이 달라 논의 자체가 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통신이 상시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장치 산업인데다 공공·안보가 갈수록 강조되는 산업인 만큼 오히려 국가가 직접 관리하는 게 더 효율적일 수 있다. 우리나라처럼 협소한 지리적 환경에서 5G 기지국은 물론 유선망 중복 투자 문제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대안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공론화 과정에서 달라진 네트워크 가치와 실제 서비스 가격간의 격차 문제, '공공성'과 '이윤 극대화'라는 통신업의 가치 충돌 등 '민영화 20년' 통신업계 딜레마를 풀 접점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성연광 에디터 saint@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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