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채권 펀드매니저도 에너지 투자…물가 더 올리는 '악순환'
글로벌 에너지 위기 |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투자자들이 인플레이션에서 자산을 보호하기 위해 원유 선물 등 에너지 자산 투자에 몰려들면서 유가 상승을 부채질하고 이 때문에 물가가 더 오르는 순환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스위스 소재 프라이빗뱅크 SYZ의 루크 필립 투자책임자는 최근 원유 선물에 투자하고 있다.
그가 원유 선물에 투자하는 것은 자신이 운용하는 285억 달러(약 33조5천억원)에 이르는 고객 자산이 인플레이션에 의해 갉아 먹히는 것을 두려워해서다.
WSJ은 국제유가가 2014년 이후 최고 수준으로 뛰어오른 상승세를 필립과 같은 펀드매니저들이 부추기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간 에너지 선물 시장은 에너지 생산업체와 원자재 시장에 주력하는 헤지펀드들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유가 상승세가 둔화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전통적으로 주식이나 채권을 운용하던 펀드매니저들도 원유 시장으로 뛰어들고 있다.
원자재 가격은 물가 상승과 동행해서 오르는 경향이 있어 원자재에 투자하면 인플레이션으로 투자 자산이 침식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필립 책임자는 에너지가 구리나 금과 같은 다른 원자재와 결합했을 때 "꽤 괜찮은 헤지(위험회피) 수단"이라고 말했다. 그는 예상보다 오랫동안 인플레이션이 이어지면 가격이 내려가는 장기채는 팔고 대신 에너지 선물을 사들이고 있다.
물론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유가 급등의 핵심 요인은 아니다.
현재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원유 증산 계획을 내놓지 못하고 있으며, 천연가스 부족 현상으로 디젤 수요가 늘면서 유가를 끌어올리고 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원유 공급과 관련해 새로운 뉴스가 없는 날에도 유가가 오르는 등 최근 유가 상승세의 일부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로 에너지 시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커졌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이에 따라 에너지 선물과 에너지 관련 주식에 투자하는 펀드로 계속해서 자금이 유입되는 상황이다.
이머징마켓포트폴리오리서치(EPFR) 집계에 따르면 지난주 이 펀드들에는 5개월 만에 최대인 7억5천300만달러(약 8천859억원)가 유입됐다.
실제로 일부 투자자들은 올해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에 이르고 내년에는 200달러까지 오를 것이라 베팅하는 경우도 있다.
이 같은 투자에 대해 WSJ은 '자기충족적 예언' 투자라고 설명했다. 인플레이션을 헤지하기 위해 투자자들이 에너지 자산에 투자하면서 에너지 가격을 끌어올리고, 이 때문에 물가가 더 오른다는 것이다.
UBS자산운용의 에번 브라운 자산분배 책임자는 사람들이 원유를 사면서 인플레이션 기대감을 끌어올리며, 이는 다시 유가를 올리는 순환이 스스로 이뤄진다고 밝혔다.
주유 중인 트럭 |
laecor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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