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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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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야구, MLB 따라하다 색깔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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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도쿄올림픽 동메달결정전에서 도미니카공화국에게 패한 뒤 좌절하는 야구대표팀 포수 양의지. 국제경쟁력을 잃은 한국 야구의 재도약을 위해 큰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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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고의 인기 스포츠인 프로야구가 1982년 출범 후 최대 위기를 맞았다. 경기력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큰 시점에 도쿄올림픽 ‘노메달’로 결정타를 맞았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우승 신화를 이뤘던 한국 야구는 왜 이렇게 추락했을까. 미국 메이저리그(MLB)에서 뛰었던 봉중근(41), 일본프로야구(NPB) 경험이 있는 김태균(39·이상 KBS 해설위원)을 만나 그 이유와 해법을 물었다. 2009 WBC 투·타의 기둥이었던 둘은 “한국 야구가 MLB 유행을 좇고 있다. 우리만의 색깔을 되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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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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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도쿄올림픽 부진의 충격이 크다.

봉중근 위원(이하 봉)=베이징올림픽 이후 많은 이들이 ‘야구는 금메달’이라고 생각했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주축이었던 선수들이 대부분 은퇴했다. 지금은 20대 초반 선수들이 많다. 한국 야구는 성장통을 앓고 있다. (전망이) 어두울 수밖에 없다. 앞으로는 밝을 것이다.

김태균 위원(이하 김)=시간이 필요하다. 최근 최준용(20·롯데)이 던지는 걸 봤는데, 공이 정말 예술이었다. 이런 선수들을 그동안 몰랐던 거다.

Q : 대표팀 부진 이유로 스트라이크존을 지적하는 이들이 있다.

=KBO리그 존보다 국제대회 존이 확실히 넓더라. 올림픽에서 우리 타자들이 넓은 존에 당황하는 게 느껴졌다.

=국제대회 심판들은 타자 몸쪽 스트라이크를 잘 잡아주지 않는다. 대신 높은 쪽 코스를 후하게 본다. 도쿄올림픽에서도 그랬는데, 투수들이 전혀 적응하지 못했다.

Q : 한국 스트라이크존이 좁은 건가.

=투수가 자신 있게 던진 공이 볼 판정을 받으면, 다음에는 (가운데에 넣다가) 맞는다. 타자도 헛갈린다. 국가대표 수준의 타자라면 자신만의 존을 설정하는 능력이 있다. 존을 벗어났다고 판단한 공이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으면 타자가 흔들린다. 마음이 급해지고 타격 밸런스가 흐트러질 수 있다.

=한국 스트라이크존이 좌·우·상·하 모두 좁아졌다.

좁은 스트라이크존 탓 국제경쟁력 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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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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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 출신 김 위원은 국제대회 존이 넓다고 말했고, 투수 출신 봉 위원은 한국 존이 좁다고 했다. 표현은 다르지만, KBO리그 스트라이크존이 국제대회보다 더 좁다고 정리할 수 있다. 야구 전문가들은 한국 심판들이 존을 지나치게 원칙적으로 적용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TV 중계할 때 화면에 표시하는 가상의 존이 KBO리그 존의 표준이 됐다. 전통적으로 선수들이 인식하는 존은 규칙보다 약간 넓은데, 한국 심판들은 중계 화면에 설정되는 존을 기준으로 판정한다는 것이다. 이 좁은 존에 익숙해진 투수와 타자들이 국제대회의 넓은 존에 대응하지 못했다.

Q : 대회 준비는 어떻게 평가하나.

=도쿄올림픽은 세대교체 시기여서 준비과정이 더 중요했다. 예비 엔트리 발표 시점부터 스트라이크존 등을 미리 파악해야 했다. 2009년 WBC 때 일본은 내가 선발로 나갈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나에 대한 분석이 부족했다고 한다.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일본은 한국의 신인 이의리(19·KIA)까지 분석할 만큼 열심이었다.

=봉중근 선배가 일본을 상대로 한 번만 잘 던진 게 아니다. 본선에서 또 만나도 잘 던진 이유는 상대의 분석을 역이용하며 투구에 변화를 준 덕분이었다. 현재 선수들의 능력이 떨어진 건 부인할 수 없다. 또 심판의 특성을 파악해 대응하는 것도 야구의 일부분이다.

도쿄올림픽에서 한국 투수들은 스피드 경쟁에서 밀렸다. 야구통계전문업체 스포츠투아이에 따르면 올해 KBO리그 투수들의 직구(포심 패스트볼) 스피드는 시속 141.6㎞다. MLB(평균 150.9㎞)는 물론이고 NPB(평균 145㎞)와도 격차가 커지고 있다.

=일본·미국과 비교하면 안 된다. 우린 선수층과 인프라가 부족하다. 아마추어 때 성적을 내기 위해 투수들은 변화구를 많이 던진다. (2004년까지 알루미늄 방망이를 썼던) 아마추어 타자들이 나무 배트를 사용한 뒤 나타난 현상이다. 변화구를 던지면 (반발력이 낮은) 나무 배트로는 안타를 때리기 어렵다. 그래서 변화구 구사율이 높아졌다.

=학생 야구가 주말 리그를 치르다 보니 훈련 시간이 줄었다. 체력훈련을 많이 해야 한다. 진학 문제가 걸린 3학년뿐만 아니라 저학년들도 실력이 좋으면 경기에서 뛰도록 해야 한다.

=시대가 바뀌어도 프로선수라면 무조건 해야 하는 훈련 프로그램이 있다. 구속을 늘리는데 (요즘 프로에서 유행하는) 트래킹 시스템이 큰 도움이 될까. 그건 투구 회전수 등 분석에는 도움이 되지만 결국 트레이닝을 통해 몸을 만들어야 한다. 운동 방식 자체가 미흡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말 하면 ‘올드스쿨’이라고 하겠지만.

=트래킹 시스템이나 데이터 분석은 현상을 이해하는 도구다. 그게 정답일 수 없다. ‘발사각이 몇 도가 돼야 홈런이 나온다’ 이런 얘기는 다 한다. 결국 훈련해야 한다. 자기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몸이 준비되지 않았는데 분석이 무슨 소용인가.

=투수도 마찬가지다. 하체를 이용할 줄 알아야 공이 빨라진다. 이걸 ‘옛날이야기’라고 얘기한다. 상체만 잘 쓰는 투수들이 빠른 공을 던질 수 있겠지만, 오래 못 간다. 상체 힘에 의존했던 MLB 투수들도 이젠 하체를 잘 활용한다.

Q : 봉 위원은 MLB 시절보다 KBO리그로 와서 구위가 더 좋아졌다.

A : =2009년 WBC 일본전에서 잘 던지니 예전에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구단에 함께 있었던 관계자가 ‘너 왜 이렇게 달라졌나. 한국은 무슨 훈련을 하는가’라고 물어봤다. 2~3년 뒤 MLB가 한국 프로그램을 일부 받아들여 트레이닝하더라. 지금 MLB도 많이 바뀌었다.

타자들은 획일화한 어퍼컷 스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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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야구 성장통


타자 발사각에 대한 지적도 많다. MLB에서 땅볼보다 뜬공 가치를 높게 평가하기 시작한 2016년을 기점으로 한국 타자들도 발사각을 높이기 시작했다. 2019년 KBO리그 평균 발사각이 처음으로 17도(인플레이 타구 기준)를 넘겼고, 지난해에는 18.5도까지 올랐다.

Q : 최근 타자들이 3할 타율 이상을 기록하는 존은 한가운데 스트라이크뿐이다.

김=숫자로 야구를 하니까 스윙이 다 똑같아졌다. 발사각 얘기를 많이 하니 가운데로 오는 공만 멀리 보낼 수 있게 된 거다. 타격 훈련 때부터 어퍼컷 스윙으로 공을 띄우려 한다. 훈련 때 치면 다 넘어간다. 그러나 실전은 다르다. 타자는 9개 코스를 공략하는 9가지의 스윙이 있어야 한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투수는 여러 코스로 공을 던진다. 그런데 타자들의 스윙은 다 똑같다.

=그런다고 홈런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나. 홈런 2~3개 더 치려다가 타율과 출루율이 떨어진다. 이게 효율적일까.

Q : MLB 흐름을 따라가는 것 같다.

A :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지난해 스프링캠프에서 최지만(30·탬파베이 레이스)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MLB라고 해서 모두가 어퍼컷 스윙을 하진 않는다고 하더라. 미국 타자들도 강한 타구를 만드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다음 타구를 띄우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이다.

Q : 하물며 체격이 작은 한국 타자들이 발사각에 집착하는 건 난센스 같다.

A : =MLB 타자들이 100개의 타구를 띄워서 40개를 담장 밖으로 넘긴다면 우린 10개 정도다. 파워에서 밀리는 우린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투구에 맞는 스윙 궤적을 만들어야 한다. 과정(강한 타구를 만드는 노력)보다 결과(발사각)만 보고 따라 하려다 보니 혼돈이 있는 것 같다.

Q : 10년 전엔 한국 야구의 특성이 있었다.

=미국은 소위 장타를 생산하는 ‘롱볼’, 일본은 작전 위주의 ‘스몰볼’이었다. 우리는 그 사이에 있었다. 선수마다 특성이 있었고, 그게 국제 경쟁력이었다. 상대방이 당황했다.

=미국만 따라가면 안 된다. 학생들을 위한 훈련 프로그램을 만들어 발전시켜야 한다.

=아마추어는 프로만 바라본다. 지금은 아마추어 타자들도 발사각을 얘기한다. 그래서 프로부터 변해야 한다. 한국 야구에 맞는 시스템과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 한국 야구만의 프로그램이 없다. 프로야구 초창기에는 일본 스타일을 따랐다. 10~15년 전엔 미국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KBO리그가 이 정도 역사를 가졌는데 한국 프로그램은 왜 없는가. 한·미·일 선수들의 체격과 특성이 다르다. 야구에서 세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데도 한국의 스타일이 없다. 이것도 선배들 잘못이다. 선수들에게 우리의 야구를 가르쳐줘야 한다. 길을 함께 찾아가야 한다.

Q : 한편으로는 젊은 선수들이 눈에 띈다. 이들에게서 어떤 희망을 보나.

=얼마 전 2020 신인 드래프트에서 한화에 2차 1라운드 지명된 박준영(세광고)이 ‘팀을 우승시키겠다’고 했다더라. 당차다. 예전에는 이런 말을 하는 게 엄두도 안 났다.

=우리 땐 ‘팀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하는 게 최선이었다. 요즘 신인들은 MZ세대(밀레니얼+Z세대)답다. 기대된다. 도쿄올림픽 대표팀은 사실상 새로 구성한 팀이었다. 좋은 결과를 기대했지만, 일단 실패로 돌아갔다. 이제 시작이라고 본다. 내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선 우승할 것이라 확신한다. 올림픽을 경험한 이의리, 김진욱(19·롯데), 박세웅(26·롯데) 등에게서 여유가 느껴진다. KBO리그에 돌아와서 잘하고 있지 않은가. 정말 값진 경험이었다고 본다.

배중현 기자 bae.junghy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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