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올림픽 야구 대표팀 김경문 감독이 18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2일차 훈련에 앞서 언론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화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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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대표팀 훈련 현장에 다녀왔는데 분위기가 다운되어 있어 걱정입니다. 베이징올림픽 때와는 너무 다르네요.” 야구해설가 허구연씨의 우려였다. 허씨는 “고마워요, 사토” 등 많은 어록을 남긴 2008 베이징올림픽에 이어 다시 2020 도쿄올림픽 방송중계에 나선다.
사실 걱정이 된다. 한국야구는 올림픽이라는 대사를 앞두고 너무 큰 데미지를 입었다. 외우내환이 겹쳤다. 늦은 시간이지만 김경문 대표팀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상 밖으로 밝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선수들이 준비를 잘 해 가지고 왔어요. 바깥 분위기 때문에 밝은 티를 내진 못하겠지만 다들 각오는 단단히 하고 있을 겁니다. (오)승환이가 합류한 후 더 안정감이 생겼습니다. 잘 해낼 겁니다.”
문득 베이징 올림픽 직전 암울한 분위기가 떠올랐다. 당시에도 한국야구는 위기에 처해있었다. 2006년 도하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서 한국 야구는 큰 홍역을 치렀다. 이른바 ‘도하 참사’로 불리는 수난이었다.
한국은 사회인·대학생으로 구성된 일본에 패했다. 일본야구 2.5군에게 진 셈이었다. 늘 한 수 아래로 여겨온 대만에 마저 참패하고 동메달에 그쳤다. 말이 동메달이지 실상 꼴찌였다.
김경문 감독은 베이징 올림픽 예선을 겸한 2007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서 지휘봉을 잡았다. 출발부터 순조롭지 않았다. 대만전서 류현진을 선발로 내세워 5-2로 승리했다. 그러나 올림픽 본선 진출권이 결린 한일전서 패했다. 결국 최종 예선전을 거쳐서야 가까스로 본선 무대를 밟을 수 있었다.
모두 8개국이 참가한 올림픽 예선 풀리그서도 초반엔 어려움을 겪었다. 첫 경기 미국전부터 난관이었다. 8회까지 한 점을 뒤졌으나 9회 말 간신히 역전승했다. 2차전 상대는 만만한 중국. 쉽게 이길 것으로 예상됐으나 5회까지 0-0. 갑작스런 비로 경기는 중단됐다. 3일 후 재개된 경기서 승부치기 끝에 1-0으로 이겼다.
캐나다와의 3차전도 1-0의 어려운 경기를 치렀다. 다음 경기인 한일전 승리로 분위기를 타기 시작했다. 0-2로 뒤진 7회 초 이대호가 동점 홈런을 터트렸다. 9회 일본은 특급 마무리 좌완 이와세 히토키를 마운드에 올렸다.
2사 1,2루서 김경문 감독은 상대의 의표를 찌르는 대타를 기용했다. 좌타자 김현수였다. 일본 벤치에선 뜨악한 표정이었다. 좌투수를 상대로 좌타자를 기피하는 것은 일본에선 상식. 역발상이었다. 김현수는 적시타로 결승타점을 올렸다.
일본은 준결승서 쿠바를 피하기 위해 미국과의 예선리그서 고의로 져주기를 선택했다. 이번 도쿄올림픽서도 자국의 올림픽 첫 금메달을 위해 더블 일리미네이션이라는 이중, 삼중의 안전장치를 해 두고 있다.
대한체육회는 ‘신에게는 아직 5천 만 국민들의 응원과 지지가 남아있사옵니다’는 현수막을 내걸었다가 철거했다. 일본이 욱일기를 사용하지 않는 다는 약속을 받아내고서다. 하지만 도쿄올림픽 조직위는 금세 “욱일기는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지 않다”며 태도를 싹 바꾸었다.
한국야구는 위기에 강하다. 쿠바 대신 한국을 택한 일본과의 준결승서 ‘위기의 남자’ 이승엽(그때까지 26타수 3안타)이 역전 결승홈런을 터트렸다. 한국야구에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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