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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연재] 파이낸셜뉴스 '성일만의 핀치히터'

정훈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성일만의 핀치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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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34살의 나이에 전성기를 맞고 있는 롯데 정훈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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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34·롯데)에게는 야구선수를 그만둘 위기가 여러 번 있었다. 2006년 신고 선수로 현대에 입단했지만 흔한 유망주 소리 한 번 듣지 못한 채 현역병으로 입대했다. 9사단에서 보병으로 근무하며 현대 2군 연습장 근처에서 훈련을 한 적도 있었다. 배트의 타구음을 들으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만기제대를 했으나 정훈을 기다려준 야구단은 없었다. 이번엔 신고 선수로 롯데의 문을 두들겼다. 그는 모든 것이 어중간했다. 타격도 수비도 모두 뛰어나지 못했다. 그렇다고 서툰 것도 아니었다. 그럼 아예 포기할 텐데.

그래도 첫해 1군에서 29경기를 뛰었다. 타율은 0.156. 홈런 한 방이 그에게는 유일한 위안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야구인생 2막은 늘 위태위태했다. 포지션도 유격수-2루수-외야수-1루수로 변동이 심했다.

‘2루 수비 빼고 다 잘 하는 2루수’라는 조롱까지 들어야 했다. 2019년 겨울 롯데에 칼바람이 몰아쳤다. 그해 정훈은 타율 0.226, 홈런 2개를 기록했다. 한때 천재 소리를 듣던 김문호가 보따리를 쌌다. 정훈과는 입단 동기다.

정훈은 부지런히 아마추어 코치 자리를 알아봤다. 제대 후 한때 초등학교서 코치를 해 본 경험도 있었다. 그러나 뜻밖으로 정훈은 팀에 남게 됐다. 주전은 아니지만 내·외야 어디든 빈자리가 생기면 메울 선수가 필요해서다.

그렇게 시작한 2020시즌. 정훈은 7월 28일 선두 NC와의 홈경기서 9회말 마무리 원종현을 상대로 끝내기 홈런을 터트렸다. 지난 시즌 두 개 홈런에 그친 선수가 가장 극적이라는 ‘굿바이 홈런’의 주인공이 됐다.

10월 18일엔 고향이나 다름없는 창원에서 NC 외국인 투수 마이크 라이트를 상대로 5회 솔로 홈런을 뽑아냈다. 이 한 방으로 그는 난생 처음 시즌 두 자리 수 홈런을 채웠다. 9월 15일 키움전 이후 한 달여 만에 맛본 손맛이었다. 이대로 시즌을 끝내나 하는 순간 터져 나온 대형 아치였다.

정훈은 지난해 타율 0.295, 홈런 11개를 기록했다. 은퇴하라는 말은 아무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프로 입단 15년 만에 이룬 자랑스러운 성적이었다. 정훈은 지난달 24일 야구 인생 처음으로 개인상을 수상했다.

모 스포츠지에서 주는 주간 최우수 선수상이었다. 6월 둘째주 정훈은 타율 0.591, 안타 13개, 11타점으로 종횡무진 활약했다. 만34살에 맞이한 첫번째 전성기. 정훈은 프로야구 6월 MVP에도 이름을 올렸다.

정훈은 지난달 타율 4할, 홈런 4개, 28타점을 올렸다. 늦게 찾아온 태풍의 위력이 더 무서웠다. 그의 경쟁 상대로는 소형준(KT), 백정현(삼성), 에릭 요키시(키움) 등 투수들과 양의지(NC), 홍창기(LG), 손아섭(롯데) 등 타자들이 있다. 모두가 쟁쟁한 후보들이다. 양의지는 6월 홈런 8개를 터트리며 이 부문 단독 1위로 올라 있다.

정훈은 5일 현재 타율 0.337, 홈런 9개로 절정의 타격감을 보이고 있다. 7월 타율은 0.438. 정훈은 올시즌을 끝내면 처음으로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는다. 계약금조차 받지 못했던 그에게 큰 기회가 찾아오고 있다. 34살 정훈에겐 모든 것이 처음이다. 그의 시계는 거꾸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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