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m80 뛰어 결선 직행, 5m90 넘어 시상대까지"
한국 육상 도약 종목의 간판 진민섭 |
(서울=연합뉴스) 하남직 기자 = "한 걸음 물러나면 절벽 아래로 떨어지고,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습니다."
한국 남자 장대높이뛰기 일인자 진민섭(29·충주시청)이 진단하는 '자신의 현재 위치'다.
그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도쿄올림픽에 기록이 비슷한 선수가 많이 참가한다"며 "그 경쟁을 뚫고 상위권에 진출하면, 다이아몬드리그 출전권을 확보하는 등 올림픽 후에도 세계적인 선수와 뛸 수 있다"고 희망을 품었다.
동시에 "결선 통과에 실패하면, 다시 절벽 아래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위기감도 드러냈다.
일단 진민섭은 예선에서 자신이 보유한 한국 기록(5m80)과 타이를 이루며 결선에 진출하고, 5m90을 넘어 동메달까지 바라보는 짜릿한 꿈을 꾼다.
진민섭은 "부담감이 없지 않지만, 그 부담감마저도 즐기고자 한다"며 "큰 꿈을 품고, 높은 곳에 도전하겠다"고 도약을 약속했다.
현 상황을 보면, 진민섭의 꿈은 무모하지 않다.
현재 세계 육상 남자 장대높이뛰기는 '뒤플랑티스 시대'다.
'젊은 황제' 아르망 뒤플랑티스(23·스웨덴)는 도쿄올림픽 육상 종목에서 가장 확실한 금메달 후보로 꼽힌다.
뒤플랑티스는 2020년 9월 18일(한국시간) 이탈리아 로마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세계육상연맹 다이아몬드리그 남자 장대높이뛰기 결선에서 6m15를 넘어, '인간새' 세르게이 붑카(우크라이나)가 1994년에 작성한 종전 기록 6m14를 1㎝ 뛰어넘은 세계 신기록 작성했다.
2021년에도 뒤플랑티스는 6m10의 시즌 세계 1위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뒤플랑티스 외 주요 선수들의 최근 기록은 5m80∼5m90에 몰려 있다.
22일 열린 미국 대표 선발전에서도 5m90을 넘은 크리스 닐슨이 우승했고, 5m85를 뛴 샘 켄드릭스가 2위를 차지했다.
켄드릭스는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5m85를 뛰어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남자 장대높이뛰기 세계 기록 보유자 뒤플랑티스 |
도쿄올림픽 육상 남자 장대높이뛰기는 7월 31일 예선 라운드를 치르고, 8월 3일에 결선을 연다.
아직 공식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결선 직행 기준은 5m80으로 정해질 전망이다.
진민섭은 29명이 출전할 예선 라운드에서 5m80을 넘어서거나, 예선 성적 상위 12명 안에 들면 결선에 나선다.
그는 "예선 라운드에서 5m80을 뛰어서 결선에 직행하고, 결선에서 5m90을 넘어서 시상대에 오르고 싶다"며 "어려운 목표이지만, 도전해볼 만한 기록이기도 하다"고 했다.
진민섭은 2020년 3월 1일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에서 열린 뱅크타운 장대높이뛰기대회에서 '빌린 장대'로 5m80을 날아올랐다.
호주 전지 훈련을 위해 출국할 때 시드니 공항 수하물 처리 규정문제로 5m20 짜리 장대를 비행기에 실을 수 없었고, 호주에 도착한 뒤 김도균 코치의 인맥과 노력으로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스티브 후커(호주)의 장대를 빌렸다.
손에 잘 익지도 않은 오래된 장대로 5m80을 뛴 진민섭은 '손에 익은 장대'로 치를 도쿄올림픽에서 더 좋은 기록을 기대한다.
장대높이뛰기 진민섭, 도쿄올림픽 출전권 획득 |
초등학교 시절 멀리뛰기 선수였던 진민섭은 중학교에 진학하며 장대높이뛰기에 전념했다.
그는 "멀리뛰기에서는 소년체전 예선탈락을 하던 선수"라고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진민섭의 선택은 한국 육상의 역사를 바꿨다.
부산사대부고 재학 중이던 2009년 이탈리아 쥐티롤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육상경기선수권대회에서 5m15를 넘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선수가 세계육상연맹이 주최한 종합 육상대회에서 따낸 첫 금메달이었다.
2013년 5월 28일 대만오픈국제육상경기선수권대회에서 5m64로 개인 첫 한국 기록을 세운 진민섭은 2020년 3월까지 총 8차례 한국 기록을 경신했다.
이제 남은 목표는 올림픽 결선 진출과 메달 획득이다.
[그래픽] 도쿄올림픽 유망주 - 진민섭 |
마침 뒤플랑티스가 세계 육상의 스타 플레이어로 떠오르면서, 장대높이뛰기도 주목받고 있다.
진민섭은 "뒤플랑티스 덕에 우리 종목의 인기가 올라갔다. 내가 올림픽에서 선전하면 한국에서도 장대높이뛰기에 관한 관심이 조금이나마 생기지 않을까"라고 바랐다.
도쿄올림픽에서 상위권에 진입하면, 진민섭도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다.
올림픽 결선에 진출한 선수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세계육상연맹 다이아몬드리그 출전 자격을 얻는다. 다이아몬드리그에 자주 출전하면 세계선수권, 올림픽 등 주요 국제대회 출전에 영향을 미치는 랭킹 포인트 획득도 한결 수월해진다.
진민섭은 "2019년에 독일 베를린 ISTAF 대회에서 뒤플랑티스, 켄드릭스 등 세계적인 선수들과 함께 경기한 적이 있다. 그런 선수들과 함께 경기하는 게 정말 행복했다"며 "그때 성적도 괜찮았다. 5m60을 뛰어 4위를 했다"고 떠올렸다.
진민섭은 도쿄올림픽을 장대로 삼아, 더 높은 곳에 오르고자 한다. 그의 바람이 현실이 되면, 한국 육상도 세계적인 선수를 얻을 수 있다.
jiks79@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