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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이창섭의 MLB와이드] 투수 이물질 검사…야수의 역습은 이뤄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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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 택 등 접착성 이물질

공에 발라 회전수·움직임 늘려

전보다 성능↑ 올 투고타저 극심

사무국 뒤늦게 긴급 검사 나서


한겨레

필라델피아 필리스 선발 투수 잭 휠러(왼쪽)가 23일(한국시각) 필라델피아 시티즌뱅크파크에서 열린 2021 메이저리그 워싱턴 내셔널스와 경기에서 1회 투구를 마친 뒤 알폰조 마르퀴스 주심에게 모자와 글러브를 검사받고 있다. 숨겨둔 이물질이 없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필라델피아/유에스에이투데이 스포츠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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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올해 메이저리그는 극심한 투고타저의 해다. 시즌 초반부터 노히터가 쏟아졌으며(총 6차례) 리그 평균 타율(0.239)은 1968년(0.236)년 이후 가장 낮다.

이내 투수들의 은밀한 비밀이 드러났다. 투수들은 공에 더 큰 변화를 주기 위해 이물질을 사용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공에 묻히는 장면들이 연이어 포착됐다. 쏟아지는 증거에 의심은 곧 확신이 됐고, 이 사태는 일파만파로 퍼졌다.

사실 투수들의 이물질 사용이 수면 위로 떠오른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과거에도 투수들은 보이지 않는 방법으로 공에 이물질을 묻혀왔다. 일명 스핏볼(spit ball)이다. 가장 유명한 스핏볼 투수인 게일로드 페리는 통산 314승을 거두고 명예의 전당에도 올랐다. 페리 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투수가 공공연히 해왔던 방식이기 때문에 쉬쉬하는 분위기였다. 혹시나 경기 중 적발이 된다고 해도 퇴장을 당했을 뿐 추가 징계는 없었다.

하지만 점점 수위가 지나쳤다. 과거와 달리 공에 묻히는 이물질도 다양해졌다. 선크림, 바셀린, 파인타르(송진) 등을 넘어 차원이 다른 접착력을 가진 스파이더 택도 등장했다. 모 구단은 성능이 더 좋은 이물질을 만들기 위해 연구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행이라는 명목하에 눈을 감아주기가 더는 힘든 상황이다.

투수들이 남몰래 이물질을 사용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공을 보다 확실하게 쥐면서 제구도 좋아지고 더 큰 움직임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1980년대 중반 뉴욕 메츠의 에이스였던 드와이트 구든은 파인타르 효과에 대해 “브레이킹 볼은 2인치 정도 더 날카롭게 휘고, 싱커는 4인치 정도 더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파인타르는 명백하게 “경기력을 향상시키는 요인이 맞다”고 주장했다. 2000년대 초반 메이저리그를 강타했던 금지약물 스테로이드와 다를 바가 없다.

포심 패스트볼(빠른 공) 역시 회전수의 영향을 받는다. 회전수가 늘어난 빠른공은 중력의 저항에 대응하는 시간이 늘어난다. 그만큼 덜 떨어진 공은 타자 입장에서 솟아오르는 라이징 패스트볼처럼 느껴진다. 이는 헛스윙과 빗맞은 타구를 유도하는 데 탁월하다. 때마침 메이저리그가 홈런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타자들이 어퍼 스윙을 선보이자 하이 패스트볼은 더 위력을 발휘했다. 최근 투수들의 탈삼진이 증가한 배경이다.

무게 중심이 한쪽으로 급격하게 치우치면서 사무국은 강경책을 내놓았다. 투수들의 이물질 검사를 강화한다는 규정을 추가한 것이다. 규정을 위반하면 10경기 출장 정지 징계가 주어진다는 내용도 포함했다. 투수 커리어에 주홍글씨다.

사무국이 단속에 나서자 투수들은 달라졌다. 게릿 콜(뉴욕 양키스)과 트레버 바우어(LA 다저스), 셰인 비버(클리블랜드 인디언스) 같은 투수들의 회전수가 급감했다. 팔꿈치 인대가 파열된 타일러 글래스나우(탬파베이 레이스)는 “이물질 사용을 금지하면서 부상을 당했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공에 이물질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은 애초에 존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래스나우는 공개적으로 이물질 사용 금지 규정을 비난했다. 이물질 사용이 잘못된 행동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물질 사용은 기본적으로 인식부터 달라져야 한다.

사무국 또한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당초 사무국은 더 빨리 진압에 나설 수 있었다. 이미 여러 매체에서 회전수에 기인한 투수들의 이물질 사용이 심각하다고 경고했다. 당시에는 늘 그래 왔던 것처럼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하지만 이번 시즌 문제가 불거지자 긴급히 대책을 마련했다. 일각에서는 투수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규정인 만큼 시즌 중에 도입하는 건 무리였다고 지적했다. 사무국의 늑장 대응이 일을 키운 것이다.

메이저리그는 이번 주부터 새 규정이 본격적으로 적용된다. 이번 시즌 눈부신 성적을 기록 중인 제이콥 디그롬(뉴욕 메츠)이 이물질 검사를 받은 첫 번째 투수가 됐다. 또 한 번 민낯이 드러난 메이저리그는 이물질 사용과 관련된 오명을 깨끗하게 씻어낼 수 있을까. 동시에 타자들의 역습이 이루어질지도 지켜볼 부분이다.

이창섭 메이저리그 전문가 pbbl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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