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19 (목)

이슈 [연재] OSEN '홍윤표의 휘뚜루 마뚜루'

[홍윤표의 휘뚜루 마뚜루] ‘야구선수 출신’ 박기정 화백, 한국 최초 마라톤 만화 『동창생』 52년 만에 복각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OSEN

“박기정 선생님, 찬 바람 부는데 건강하신지요. 선생님의 만화 『도전자』를 받고 기뻤습니다. 귀한 선물 너무 고맙습니다. 저는 어려서 선생님의 만화에 푹 빠져 살았습니다. 만화를 보면서 훈이처럼 되고 싶었습니다. 훈이는 제 롤 모델이었습니다. 가난하고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변방의 어린 저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신 선생님께 늘 감사드립니다. 꼭 한번 뵙게 되길 바랍니다. 선생님 몸 건강하시고 마음 정한하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이 편지는 도종환 시인(국회의원)이 지난해 11월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박기정(86) 화백의 대표작인 『도전자』를 저자 사인을 받아 전달해주자 고마움의 표시로 자신의 시화집인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와 함께 보낸 것이다. ‘훈이’는 박기정 화백의 여러 만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주인공의 이름이다.

우리나라 야구 만화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황금의 팔』(1964년)을 지은 박기정 화백은 『도전자』(1965년), 『폭탄아』(1966년), 『레슬러』(1967년) 같은 감명 깊은 창작만화로 1960~1970년대 청소년들의 심금을 울렸던 원로만화가다. 그 만화에 나오는 남녀 주인공 ‘훈이와 미미’는 당시 강렬한 캐릭터를 발산하며 민족의식과 도전 정신을 심어주었다. 도종환 시인이 ‘훈이’를 언급한 것은 그 때문일 터이다.

OSEN

박기정 화백이 최근 1969년에 단행본으로 출판했던 『동창생』을 52년 만에 복각, 발간했다. 박 화백의 만화 애호가의 도움을 받아 한정판(150부)으로 펴낸 『동창생』 원본은 이미 반백 년의 세월이 흘러 찾아보기 어려운 대단히 귀한 만화다.

게다가 이 『동창생』은 박기정 화백이 한국만화가협회장 시절 영세만화출판업자를 도와주기 위해 김종래, 손희성, 이근철 등 인기 만화인과 더불어 전작 단행본으로 펴냈던, 각별한 뜻이 숨어 있는 만화이기도 하다.

마라톤을 소재로 한 한국 최초의 만화로 추정되는 『동창생』은 특히 박기정 화백이 아프리카 에디오피아의 ‘맨발의 마라토너’ 아베베 비킬라(1932~1973)를 롤 모델 삼아 그려낸 전작 만화이다. 아베베는 1960년 로마와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 사상 최초로 마라톤 종목에서 거푸 우승했던 전설적인 마라토너다.

이 만화의 개략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어려서 부모를 잃은 주인공 훈이가 고교 진학도 하지 못하고 여동생 미미와 둘이 살게 되자 생계를 위해 검은 세계에 빠져들었다가 신문 배달을 하면서 마라톤 선수로 새 출발, 올림픽 선발대회에 나가 세계최고기록에 육박하는 기록으로 우승한다. 그 과정에서 동창생들의 진한 우정으로 온갖 어려움을 극복해낸다.’

동창생들의 훈이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와 주인공의 자기 극복의 의지가 만화의 뼈대를 이룬다.

복각본 책 앞머리에 ‘동창생은 1969년도에 간행됐습니다. 따라서 일부 대사와 내용, 그리고 그림 등 진부한 곳을 과감히 현실에 맞게 수정 보완했습니다. 양해 바랍니다’는 안내 글을 실었다. 『동창생』에는 박기정 화백 특유의 개성적인 단골 인물들이 모두 등장.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장상용 만화연구가는 “『동창생』은 최초의 마라톤 만화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으나 그 당시로는 아주 굉장히 드문 마라톤 만화이다. 작가가 맨발의 마라토너 아베베를 롤 모델 삼아 창작했다는 점도 흥미롭다. 한국 만화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만화”라고 평가했다.

박기정 화백은 “청소년들이 좌절하지 않고 끈기를 갖고 어려움을 헤쳐가는 의식을 심어주고 우정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해 이 작품을 만들게 됐다”고 집필 배경을 설명했다.

OSEN

박 화백은 경복고 시절 야구선수로 뛰었다. 고 김동엽 해태 타이거즈 초대 감독의 2년 선배이기도 한 그는 1978년에 중앙일보에 입사한 뒤 사내 야구팀 ‘중앙 조스 (JAWS)’를 만들어 감독 겸 주장으로 출판국팀이나 경향신문 팀 등과 경기를 했던 일화를 들려주기도 했다.

만화가야구팀의 투수로도 활동했던 박 화백은 33년 동안 중앙일보에 재직하면서 시사만평과 독특한 필치로 그려낸 사회 각계각층 인물들의 캐리커쳐로도 유명했다.

글/홍윤표 OSEN 고문

『동창생』 표지와 야구 사진=박기정 화백 제공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