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배 한국과학영재학교장의 ‘인재 실험’
부산=조승한 동아사이언스 기자 shinjsh@donga.com |
“서울대나 의약학 계열 대학 진학만을 목표로 삼은 학생은 필요 없습니다. 선행학습으로 ‘만들어진’ 학생보다는 과학의 한 분야에 ‘미친’ 학생을 뽑아야죠.”
지난달 6일 KAIST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 10대 교장으로 부임한 최종배 교장은 같은 달 23일 부산 부산진구 한국과학영재학교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학교의 인재상에 대해 이렇게 강조했다. 한국과학영재학교의 전신은 부산과학고다. 2003년 국내 첫 영재학교로 전환했으며 2009년 KAIST 부설로 거듭났다.
국내 8개 영재학교와 20개의 과학고는 이공계 우수인재 양성을 목표로 설립됐다. 하지만 졸업생 중 상당수가 비이공계로 진출하거나 의약학 계열 대학에 진학해 학교 설립 취지와 맞지 않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최근 한 방송 프로그램에 영재학교 출신 의대생이 등장하며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한국과학영재학교만 해도 설립 당시에는 졸업생 대부분이 KAIST로 진학해 이공계 인재로 성장했지만 최근 들어 KAIST 진학 비중은 60%에 그친다. 나머지는 서울대 등 종합대학으로 진학해 ‘KAIST 부설 영재학교’라는 타이틀이 무색한 실정이다. 일부 학교는 경쟁적으로 인재를 확보해야 하는 터라 의대 진학률을 은근히 활용하기도 한다.
이 같은 문제에 공감한 전국 8개 영재학교는 지난달 29일 신입생 모집 요강에 의약학 계열 진학 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을 담기로 하고 5월 발표한 요강에서 이를 반영했다. 장학금 환수, 일반고 전출 권고, 정규수업 외 기숙사 독서실 이용 제한 등이다.
최 교장은 “의약학 계열에 진출하려는 우수한 학생이라면 일반고에서도 충분하다”며 “영재학교는 이공계 분야에 필요한 영재를 뽑는 본연의 원칙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한국과학영재학교는 입학 시 의약학 계열로 진학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영재학교와 과학고는 5월 1일부터 각기 전형 요강을 발표하고 6월 초까지 신입생을 모집한다. 최 교장은 4월 부임하자마자 과학 한 분야에 ‘미친’ 영재를 뽑겠다는 파격적인 계획이 담긴 신입생 전형 요강을 내놨다. 서류전형과 시험, 캠프를 통한 다면평가로 구성된 1·2·3단계를 모두 거치지 않고 1단계나 2단계에서 특별한 학생으로 판단되면 바로 선발할 수 있는 조항을 추가했다. 최 교장은 “모든 단계에서 결과가 우수한 학생들만 뽑는다면 선행학습으로 잘 준비한 학생들에게만 유리할 수밖에 없다”며 “특정 분야에 ‘미친’ 학생을 뽑는 새로운 룰을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평가 방식도 바꿨다. 답이 정해진 과학 분야 문제를 풀게 하고 성적을 매기는 대신 답이 없는 문제를 내 어떤 지식으로 접근하는지를 보는 방식이다. 최 교장은 “정답을 찾아내는 선행학습에 익숙한 지원자를 걸러내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우수한 학생을 가려낼 수 있을까 하는 우려를 해결하기 위해 외부 전문가 평가단도 도입할 계획이다.
최 교장은 “연구 현장에서는 영재고나 과학고 출신보다 일반고가 더 낫다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현재 영재고나 과학고의 교육이 틀에 박혀 있다는 증거”라며 “어떤 교육시스템과 평가가 필요한지 정책연구를 거쳐 올해 안으로 새로운 교육 틀을 짤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종배 한국과학영재학교 교장은광운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KAIST에서 핵공학 석사, 미국 아이오와주립대에서 전기 및 컴퓨터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5년 과학기술처 사무관으로 공직을 시작해 청와대 대통령실 과학기술비서관, 국립중앙과학관장, 미래창조과학부 과학기술전략본부장, 원자력안전위원회 사무처장, 기초과학연구원(IBS) 상임감사 등을 역임했다.
부산=조승한 동아사이언스 기자 shinj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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