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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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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이 몰려온다…LPGA 침공에 나선 ‘타이거 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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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혼다클래식 1~3위 싹쓸이

우즈의 모친 쿨티다는 태국 출신

운동 환경 좋고 목표의식도 분명

한국 기업들 후원도 눈길 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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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야 주타누간.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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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2월 태국 방콕 인근 방그나에서 열린 아시안 투어 혼다 클래식. 타이거 우즈가 2위와 10타 차로 우승했다. 태국은 우즈의 어머니인 쿨티다 우즈의 고향이다. 그래서 더욱 난리였다. 당시 2위였던 한국의 모중경은 “우즈 때문에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나는 2등이었는데도 많은 사람이 길을 막고 사인을 요청했다. 그 바람에 스코어 카드를 내러 50m 가는 데 한 시간이 걸렸다. 선수들이 방콕에서 경기장까지 교통체증을 겪으며 버스로 오갔는데, 우즈만 헬리콥터를 탔던 것도 기억난다”고 말했다.

태국 사람들은 물에 빠진 슬라이스 티샷까지, 우즈의 모든 샷에 환호했다. 우즈는 시간을 쪼개 태국 총리, 현지 기업 사주들을 만났다. 우즈가 받은 우승 상금은 4만8000달러였는데, 초청료는 그 10배인 48만 달러였다.

그로부터 24년이 흘렀다. 지난 주말 방콕 인근 촌부리에서 열린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혼다 타일랜드는 태국 선수들 경연장이었다. 9일 최종라운드 초반에는 패티 타바타나킷(21)과 아타야 티티쿨(18)이 1, 2위를 다퉜고, 후반에는 아리야 주타누간(26)과 티티쿨이 우승 경쟁을 펼쳤다. 결국 주타누간이 우승했고, 티티쿨이 2위, 타바타나킷이 공동 3위에 올랐다.

LPGA 투어 팬이라면 생소한 태국 이름에 앞으로 익숙해져야 할 것 같다. 태국 여자 골프가 약진하고 있다. 올해 LPGA 투어 대회에 출전하는 태국 선수는 평균 10명 정도다. 선수 숫자에서는 미국(50명)이나 한국(30명 안팎)에 이어 확고한 3위다. 2000년대 초반 LPGA 투어에 ‘한국 침공’이라는 말이 돌았다. 선수 면면을 보면 이제는 ‘태국 침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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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금 랭킹 3위 타바타나킷.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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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의 영향인지, 태국 엘리트 선수는 클럽을 시원시원하게 휘두른다. 세계 1위를 역임한 주타누간은 여자 선수 중 최장타라는 평가다. 타바타나킷은 메이저 대회인 ANA 인스퍼레이션에서 평균 드라이브샷 거리 323야드를 기록하며 우승했다. 18세의 티티쿨은 14세 때 유럽여자투어에서 우승하는 등 어릴 때부터 주목받았다. 타바타나킷과 엇비슷한 장타를 친다.

비너스와 세리나 윌리엄스(이상 미국)의 아버지는 우연히 테니스 경기를 보다가 여자 선수가 일주일 만에 웬만한 남자의 몇 년 치 연봉을 버는 데 놀랐다. 당시는 여성이 큰돈을 버는 게 사실상 불가능할 때였다. 윌리엄스 아버지는 ‘딸이 태어나면 테니스 선수로 키워야겠다’고 마음먹었고, 그렇게 해서 세계적인 테니스 스타가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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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의 티티쿨.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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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박세리는 US오픈 등에서 우승하며 광고 모델료 등으로 수십억 원을 벌었다. 이후 많은 한국 여성 골퍼가 등장했다. 주타누간이 태국에서 박세리 역할을 하고 있다. 주타누간을 소재로 한 영화도 만들어졌다. 스포츠음료 게토레이 태국 제품에는 주타누간의 얼굴이 인쇄돼 있다. 그는 태국 여성의 롤 모델이다.

태국 선수는 손 감각이 좋아 쇼트 게임 능력이 대체로 뛰어나다. 골프 환경도 좋다. 사계절 골프를 할 수 있고, 코스 컨디션도 비교적 좋다. 한국과 일본은 산악 지형이라 코스가 대개 좁고 OB도 많다. 태국은 코스 중간에 OB 말뚝을 꽂은 골프장이 많지 않다. 거기에 우즈 영향까지 더해져 선수들은 어릴 때부터 공을 힘껏 때린다.

재능과 의지가 있으면 돈이 많지 않아도 골프를 할 수 있다. 골프장이 붐비지 않아 주니어 선수도 큰돈 들이지 않고 연습할 수 있다. 맥주로 유명한 태국 싱하 그룹 등은 골프에 적극적이다. 주니어 선수와 대회를 후원하고, 비시즌에 대표급 선수들이 함께 모여 경쟁할 수 있는 훈련 캠프도 제공한다.

한국 기업들이 LPGA의 태국 선수를 후원하는 점도 눈길을 끈다. 한국 의류업체 JDX는 오랫동안 주타누간을 후원했다. 하나은행은 타바타나킷의 메인스폰서이자 티티쿨의 서브스폰서다.

성호준 골프전문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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