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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이슈 이건희 삼성 회장 별세

이건희 유산 26조원… 60%를 사회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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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세 12조원 세계 최고… 의료·예술에 2조원대 기부

삼성가(家)가 고(故) 이건희 회장의 유산 중 현금 1조원을 감염병 백신·치료제 개발과 소아암·희소 질환 어린이 환자를 위해 사회 환원한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등 국보 14건과 박수근·모네 등 국내외 근현대 미술사를 대표하는 화가들의 작품을 포함해 미술품 2만3000여점도 국가에 기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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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컬렉션… 국보 216호 정선의 '인왕제색도'와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 -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 제216호·왼쪽)와 김환기 그림 '여인들과 항아리'. 이건희 회장이 국가에 기증한 2만3000여점 중 으뜸으로 꼽힌다. 안개가 피어나는 인왕산 정경을 묘사한 '인왕제색도'는 이건희·홍라희 부부의 '1호 컬렉션'이고, '여인들과 항아리'는 한국에서 가장 비싼 화가 김환기의 그림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그림(281×568㎝)이다. /국립중앙박물관·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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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 홍라희 여사와 이재용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은 28일 삼성을 통해 고 이 회장 유산의 사회 환원과 상속세 납부 계획을 밝혔다. 이 회장의 유산은 삼성전자 등 계열사 지분 19조원과 부동산·미술품을 포함해 약 26조원이다. 12조원에 이르는 상속세는 5년에 걸쳐 분납하겠다고 밝혔다. 우리 정부의 3년치(2017~2019년) 상속세 수입(10조6000억원)보다 많은 액수다.

사회 환원하는 유산 1조원 중 7000억원은 국립중앙의료원에 출연해 국내 첫 감염병 전문병원인 ‘중앙감염병 전문병원’ 건립과 질병관리청 산하 국립감염병연구소의 최첨단 연구소 설립·운영에 투입될 예정이다. 3000억원은 소아암·희소 질환을 앓는 어린이 1만7000여명의 치료비 지원에 사용할 계획이다.

이 회장이 평생 수집한 미술 소장품도 미술관·박물관 기증을 통해 사회에 환원한다. 고려 불화 ‘고려 천수관음보살도’(보물 2015호), 단원 김홍도의 그림 ‘추성부도’(보물 제1393호) 등 문화재,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 등 한국 근대 미술품,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모’, 호안 미로의 ‘구성’ 등 해외 유명 작가 작품이 포함돼 있다. 이 소장품은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지역 미술관에 기증될 예정이다. 재계와 미술계에선 기증하는 미술품이 감정가 기준으로도 최소 1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삼성가는 “생전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상생 노력’을 거듭 강조한 이 회장의 뜻에 따라 다양한 사회 환원 사업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모네·고갱·피카소부터 이중섭·김환기·박수근 명작까지…

세기(世紀)의 컬렉션.

이건희(1942~2020) 삼성그룹 회장이 평생 모은, 이른바 ‘이건희 컬렉션’ 2만3000여점이 국민 품으로 온다. 삼성 측은 28일 이 회장 유산의 사회 환원 계획을 발표하며 “국보·보물 60건이 포함된 고미술품과 세계적 서양화 및 국내 유명 근대미술품 등 이 회장의 수집품 2만3000여점을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키로 했다”고 밝혔다. 기부 목록 대부분은 고미술품과 근대미술품이며, 자코메티·베이컨·로스코 등 서양 현대미술품 대부분은 공익 재단인 삼성문화재단(삼성미술관 리움·호암미술관)으로 가는 것으로 정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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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보살삼존입상(국보 13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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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같은 ‘1호 컬렉션’까지 내놨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명품 2만1600여점이 들어간다. 역대 최대 규모다. 특히 이건희·홍라희 부부가 30대에 미술품 수집을 시작하며 처음 구입한 ‘인왕제색도’(국보 216호)를 비롯, 국가지정문화재(국보 14건, 보물 46건) 60건이 포함됐다. 이건희 회장이 소유했던 국보 30점, 보물 82점의 절반 이상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청자·분청사기·백자 등 도자기, 서화, 전적, 불교미술, 금속공예, 석조물까지 한국 고고미술사를 망라하는 A급 명품”이라며 “박물관 개관 이래 최대의 경사”라고 했다. ‘이건희 컬렉션’ 감정평가 기관에서는 ‘인왕제색도’ 한 점만 최소 500억원 이상이라는 추산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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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김홍도의 마지막 그림 '추성부도'(秋聲賦圖·보물 제1393호). 1805년 61세의 단원이 중국 송나라 구양수가 지은 '추성부'를 그림으로 그렸다. 구양수가 전하고자 했던 노년의 비애이자 죽음을 앞둔 단원의 심리가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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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불교 경전인 '감지금니 대방광불화엄경보현행원품'(국보 235호)의 부분. 검푸른 종이에 금색으로 정성스럽게 옮겨 쓴 것으로 병풍처럼 펼칠 수 있는 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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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불교 경전인 ‘감지금니 대방광불화엄경보현행원품’(국보 235호), 삼국시대 불상인 ‘금동보살삼존입상’(국보 134호), 고려 불화 ‘고려 천수관음보살도’(보물 2015호), 단원 김홍도의 마지막 그림 ‘추성부도’(보물 1393호) 등이 기증 목록에 올랐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은 총 43만여점. 이 중 5만여 점이 기증품인데 이번 2만점 기증은 기증 문화재의 약 43%에 달한다. 고려 불화, 분청사기, 조선 시대 목가구 등 박물관의 ‘약한 고리’를 단번에 메울 수 있게된 것이다. 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아직 국보·보물로 지정되지 않은 작품 중에서도 ‘미래의 국보’가 다수 포함됐다”며 “A급 명품들을 적극적으로 국보·보물로 신청해 고인의 뜻을 이어가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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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분청사기 음각 수조문 편병'(보물 1069호). 납작한 몸통 양쪽에 꽃무늬를 그려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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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인석보' 권11(보물 935호). 한글 창제 직후인 1459년(세조 5년) 간행된 부처의 일대기로, 불교 서적을 한글로 번역한 최초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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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 없는 국립 미술관” 오명 벗다

국립현대미술관에는 고갱·모네·르누아르·피사로·달리·샤갈·미로·피카소 등 서양 근대 미술사(史)를 열어젖힌 사조별 대표 화가 8인, 한국 근현대 대표 거장의 그림 등 1400여점을 기증한다. 특히 피카소의 도자기 112점을 확보해 그간 “피카소 작품 하나 없는 국립 미술관”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소장품의 질을 급격히 끌어올리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증품 목록에는 김환기·이중섭·박수근·장욱진 등 한국 근대미술 대표작도 460여점 포함됐다. 지금껏 미술관 소장품 중 최고가는 13억원에 구입한 김환기 ‘새벽 #3’(1965)였지만, 이번에 김환기 그림 중 가장 큰 ‘여인들과 항아리’ 및 전면점화 ‘산울림’ 등을 얻게 돼 이 역시 도약했다. 각 100억원을 호가할 것으로 미술계는 내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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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진도 출신 동양화가 의재 허백련의 '산수화첩'은 전남도립미술관에 기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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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덕산 청동방울 일괄(국보 255호). 청동기 시대 후반 제사장들이 주술적 의미로 사용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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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공립 미술관까지 알뜰히 챙겼다. 전남도립미술관에는 허백련, 대구미술관에는 이인성, 광주시립미술관에는 오지호, 제주 이중섭미술관에는 이중섭, 강원도 박수근미술관에는 박수근의 그림을 보내는 식으로 각 지역 특성과 대표 작가를 세심히 선별한 것이다. 다만 급격히 수준이 올라간 소장품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미술계의 막중한 책무가 남아있다. 초일류 컬렉션을 어부지리로 얻은 각 미술관이 소장품에 대한 향후 전시·관리 계획과 보존·수복에 대한 전망도 함께 내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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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청자 상감 모란문 발우 및 접시'(보물 10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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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화가 이중섭을 대표하는 '황소'(195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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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컬렉션' 6월부터 일반에 공개

국립중앙박물관은 6월 중 대표 기증품을 선별한 ‘고(故) 이건희 회장 소장 문화재 특별공개전’을 시작으로 내년 10월 ‘이건희 회장 소장 문화재 명품전’을 잇따라 개최할 예정이다. 이후 전국 13개 지방 소속 박물관에도 순회전이 예정돼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서울관에서 ‘이건희 명품전’을 8월에 열고, 9월 과천관, 내년 청주관 특별전으로 이어간다. 해외 전시도 논의되고 있다. 두 기관은 이번 기증품을 디지털 자료화해 홈페이지에 모두 공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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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컬렉션’을 새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나온다. 문화체육관광부 측은 “삼성미술관 리움,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세 기관이 연대해 공동 해외 마케팅을 펼치는 방식도 가능하다”며 “해외 관광객이 와서 꼭 찾아가고 싶은 전시장이 국내에도 생긴다는 데 이번 기부의 큰 의미가 있다”고 했다.

[이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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