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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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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걸쳐 <바람의 나라> 그린 만화가 김진 “작품도 팔자가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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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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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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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불사조 같은 만화다.”, “중학교 때 보기 시작했다 마흔 넘긴 노총각이 되었네요.”

만화 <바람의 나라> 연재 페이지에 독자들이 남긴 댓글이다. 1992년 2월 연재를 시작한 <바람의 나라>는 올해로 30년차에 이르는 초장기 연재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연재 중인 만화 가운데서는 연재 시기가 가장 앞선 작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독자들이 ‘불사조’ 같은 만화라고 표현하는 이유도 있다. 연재처였던 만화잡지나 인터넷 만화 사이트가 문을 닫고, 단행본을 출판하던 출판사조차 사업을 접는 등 우여곡절을 유난히 많이 겪었기 때문이다. 연재가 중단되는 아픔에도 <바람의 나라>는 끝없이 되살아나며 시련을 극복해 연재 30주년인 내년으로 예정해둔 대단원의 막을 향하고 있다. 작품 스스로가 가진 생명력을 믿고 30년 가까이 뚝심의 저력을 발휘해온 김진 만화가(61)를 4월 6일 경기 부천시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만났다.

-<바람의 나라>가 연재 기간도 길지만 겪은 시련도 많았다.

“작품도 팔자가 있더라. 지나고 나서 보니 어떤 작품은 곱게 연재를 마치지만 어떤 작품은 파란을 많이 겪었다. 비록 운명이 정해진 건 아니지만 사람처럼 작품도 운명 같은 일들을 거치는데, 특히 <바람의 나라>는 평지풍파를 많이 만났다.”

-현재 연재 중인 <바람의 나라>를 볼 수 있던 이코믹스 출판사의 홈페이지도 며칠 전 서비스를 중단해 깜짝 놀랐다.

“연재는 카카오페이지에서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얼마 전 원고를 ‘펑크’내고 ‘세이브 원고(미리 그려둔 분량)’를 쓰게 돼 출판사에 미안하다. 연재 중단까지 갈 정도의 위기는 아니지만 연재 주기를 좀 조율해야겠다 싶은 생각도 있는데 그렇다고 연재 중에 바꾸기도 무리라서…. <바람의 나라> 완결 시점을 내년으로 보고 있는데 내년까지는 안 가고 싶어 심경이 산만하다. 그래서 이 시점에 잘못 단추를 끼우면 작품 전체가 위험할 것 같아 잠깐 브레이크를 걸었다.”

-그래도 1992년 연재 시작 이래 몇 번이나 연재처가 폐간되거나 문을 닫는 등의 일을 겪은 데 비하면 작은 사건 아닌가.

“만화잡지가 부침을 겪고 생겼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것은 매번 돌아오는 사이클 같은 일이다. 그러니 한 회사가 무너지는 건 노력을 안 해 그런 게 아니라 노력을 하다가, 작가들한테도 손을 뻗고 그랬음에도 어쩔 수 없이 닥치는 일이다. 나 같은 작가들로선 앞으로 다가올 비극이 안 보여 손을 잡는 게 아니라 여기까지만이라도 좀 더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잡는 것이고. 실패 확률이 높아도 안 할 순 없는 일이라고. 그러다 보니 익숙해져 ‘또 고료 안 들어왔구나’ 그런 일 자주 겪지만 이젠 그냥 참는 게 아니고 출판사 상황을 아니까 짠한 마음이 있는 거지.”

-만화시장만큼이나 각각의 작가와 작품에도 변화가 끊임없이 나타날 텐데.

“작품이나 작가 역시 각기 나름의 사이클을 갖고 있다. 그러니 작품에 대한 평가는 다 끝나고 나오는 것이라 생각한다. 연재 중에 작품 평가가 침몰할 수도, 다시 올라갈 수도 있지만 장편 연재는 틀이나 처음의 설계도를 바꾸면 안 된다고 고집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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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나라>도 처음 구상이 줄곧 유지됐나.

“처음엔 <바람의 나라> 완결까지 5년이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스토리는 고구려 대무신왕과 호동왕자의 역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니 처음부터 나와 있었고, 중간중간 디테일만 없었을 뿐이다. 그런데 첫 연재 후 연재 중단 기간까지 포함해 시간이 너무 흘러버려 그림도 텍스트도 분위기가 바뀌는 일이 생겼다. 그래서 한정판 단행본을 찍을 때 텍스트 중 맞춤법이 바뀌었거나 잘못 쓰인 단어 같은 건 다 고치고, 그림을 바꾸는 건 힘들어도 최대한 수정할 수 있는 부분은 손을 댔다. 물론 내버려 두고 갈 수도 있지만 내가 자기 성질을 못 이겨서.”

-특히 장편 작품은 일정한 그림체와 분위기를 유지하는 게 쉽지 않겠다.

“나는 내가 그릴 때 느끼는 감정이 그림에 잘 드러나는 편이다. 마음이 어두울 땐 특히 컬러가 암울하게 나와 밝게 그리려고 해도 독자들도 용케 알고 ‘무서워요’ 이런 반응을 보이더라. 글은 냉정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지만 그림은 감정이 널뛰며 들어가기 때문에 못 속이겠다. 시기별로 봐도 감정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볼 수 있고. 출판사나 독자는 안정적인 걸 원하지만 내가 뭐 AI(인공지능)도 아니고, 작가도 사람이니 그게 정상이라고 본다.”

-작품이 드라마나 뮤지컬, 게임 등 다른 장르로 재창작된 경우가 많다. 그럴 때 당초 작품의 기획 취지와 달라져 마음에 안 든 경우는 없었나.

“원작자라고 손을 대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모르는 분야니까. 예를 들어 게임이라고 치면 내가 한명의 유저로 게임에 들어가 볼 수는 있어도 원작자라며 간섭할 수는 없다. 다른 장르에서의 재창작도 원작의 기초만 가지고 가 그쪽 나름대로의 창작을 더하는 거니 인정해줘야지. 그렇다고 과하게 원작의 범위를 넘어 ‘선을 넘을’ 정도면 얘기해야겠지만.”

-전성기를 연 작품 중 하나인 <별의 초상>이 나올 땐 당시 소속사의 ‘4인방’으로 꼽힐 정도였고, 라이벌이라 할 만한 쟁쟁한 작가들도 적지 않았는데, 그중 지금까지 연재를 이어가는 작가는 드문 형편이다.

“프린스출판사에 4인방(김진, 신일숙, 김혜린, 권숙)이 있었고, 송천문화사엔 황미나라는 걸출한 작가가 인기를 끌던 시절이었다. 우리 세대를 만화잡지 이름을 따 ‘르네상스 세대’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지나고 나서 돌아보니 후배 작가들도 보면 한참 후에 1990년대 생들까지 한 뭉텅이로 묶어 부르는 일이 이어지더라. 한 세대가 지나면 또 다른 세대가 올라오고. 그런데 세대 간에 서로 소통되는 건 아니어서 후배 작가는 잘 모른다.”

-후배 작가들 작품은 많이 봤을 텐데 높은 평가를 할 만한 작가나 작품이 있나.

“몇년 동안 대학 교단에서 학생들에게 만화를 가르친 적이 있는데 그때 작품 분석을 할 적에도 외국 작품만 대상으로 했다. 그나마 멀리 있으니까. 나는 교수로서의 나보다 작가로서의 나를 더 생각해 그런지 작품을 분석하는 일이 의미가 있나 하고 생각한다. 물론 교수나 평론가는 분석을 해야겠지. 하지만 작가로서의 나는 가장 먼저 자기 작품부터 분석하려고 해봤는데 ‘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수학공식처럼 똑 떨어지는 게 어울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게 분석하고 계획하면 내겐 작품의 생명이 없어지는 걸 느꼈다. 그래서 남들 작품도 분석이나 평가를 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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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 만화가가 경기 부천시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구상 중인 신작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 김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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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보면 독특한 작가관·작품관이다. 독학으로 만화를 배워 데뷔한 배경의 영향도 있다고 보나.

“그때는 만화 연재되던 일간지 같은 걸 보면서 원고를 그린 뒤 한 출판사에 꾸준히 가면서 눈도장을 찍으려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내가 갔던 그 출판사는 나랑 맞지 않아 거절을 한 것이고, 그러니 두 번째부터는 가도 ‘또 왔네’ 이 정도의 반응만 나올 수밖에 없었지. 그래서 이러면 안 되는구나 싶어 다른 출판사를 갔더니, 그때는 또 만화를 베껴야 하는 시절인지라 원작 하나를 던져주면서 ‘이대로 그려오면 데뷔시켜 줄게’ 그러더라.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안 했다. 그리고선 마지막에 찾아간 곳이 만화가협회였다.”

-데뷔도 하기 전에 협회를 찾은 건 별로 흔치 않은 시도였던 것 같은데.

“난 그때 협회의 장점을 알게 됐는데, 기성 작가는 신인이나 지망생의 작품을 보면 어느 출판사가 어울리니까 어디로 보내야 하는지 안다. 반면에 출판사는 자기네랑 맞는지 아닌지만 따지지, 바빠서 어디로 가면 좋을지 말 안 해준다. 협회에 있던 작가한테 김형배 작가를 만나러 가보라는 얘기를 들었고, 그래서 가보니 김 작가님 말고도 작가 세 명이 더 앉아 같이 내 원고를 보더니 ‘여고시대’에 소개해주겠다고 하더라. 운 좋게 잘 만난 거지. 만협에 안 갔으면 계속 떠돌아다녔을 테니.”

-그렇게 시작한 만화인생이 40년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젠 없던 병이 생기고 눈도 잘 안 보이기 시작한다. 근성으로 싸우기보단 몸을 잘 아껴 오래 써먹어야겠다는 생각이다. 예전엔 선배 작가들이 나이 들면서 커다란 동양화 그리는 걸 이해 못 했는데, 눈이 나빠져 그런 것 같기도 하다(웃음).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작가가 나이를 먹으면 각자의 색깔과 개성이 더 뚜렷해진다. 일정하게 자기 작품세계를 구축하려면 캐릭터만 그리는 게 아니니 배경 같은 걸 그리게 도움 주는 사람들을 구해야 하는데, 나이 들수록 그 작가만이 구축해놓은 선을 어시스턴트들이 못 따라간다. 그래서 혼자 할 수 있는 그림으로 넘어가는 면도 있고. 나도 한 문하생이 다른 작품은 맡아도 <바람의 나라>는 못 들어간다고 그러더라. 작품마다 선이 달라.”

-작가인생 중 거의 4분의 3을 차지한 <바람의 나라>가 끝나면 차기작 준비하는 작품은 있나.

“사람마다 자기한테 맞는 자리가 있고 자기만의 인생이 있듯이 작품도 생이 있는데 장편이 그런 바람을 많이 타는 것 같다. 내게는 <바람의 나라>가 그랬고. 이후 할 작품의 계획은 있지만, 시간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니까 과감하게 쳐내기도 한다. 체력이 받쳐줘야 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이미 구상해놓은 이야기라도 남이 한 이야기와 비슷하다면 굳이 내가 또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과감히 포기하기도 하고. 현재로서는 1988년 ‘만화왕국’에서 처음 스타트를 끊은 SF만화 <푸른 포에닉스>를 마무리 짓는 쪽으로 마음이 가고 있다. 요즘 SF만화는 잘 안 나오니까 출판사가 원하는 것도 초기에 좀 넣어주면서 요구에 응해준 뒤, 내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가야지.”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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