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 참여 안 해도 위험…"밤에도 군인들이 집 찾아 협박"
"한국서 응원 알고 있다…앞으로도 함께해주길"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에서 4일 시위대가 색칠한 부활절 달걀을 쥐고 세 손가락 경례를 하며 군사 쿠데타에 대한 저항 의지를 표출하고 있다. 양곤/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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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년간의 나날은 오랜 기간 독재 아래서 자유를 몰랐던 미얀마 국민에겐 꿈만 같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올해 2월 1일 예상치 못했던 쿠데타가 발발했고, 상황은 급변했다. 군사정권의 재집권은 미얀마인에게서 민주주의는 물론, 안전과 미래조차 앗아갔다고 한다. 이투데이는 현지에 있는 20대 미얀마 청년 두 명과 이메일로 서면 인터뷰를 진행, 현지 상황을 직접 들어봤다. 신변 보호를 위해 이들의 이름은 A와 K로 대체하기로 했다.
23살 대학원생 K와 21살 대학생 A는 올해 초까지만 하더라도 이러한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K는 “1월까지만 하더라도 집에서 편하게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2월 1일부터 갑자기 인터넷과 전화가 끊기면서 점점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A 역시 “(쿠데타 발발 전까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이 나오고, 대학도 다시 다닐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밝혔다.
군사정권 재집권 이후 이들의 일상은 완전히 뒤틀렸다. 집 밖으로 외출도 마음대로 못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고 이들은 전했다. A는 “미얀마 사람들은 지금 시위에 참여하지 않았더라도 위험하다”며 “낮에도 마음 편히 다닐 수 없고, 밤에도 마음 놓고 잘 수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내가 사는 곳에서도 밤에 군인들이 와서 ‘누가 냄비를 치냐’면서 머리를 쏴버리겠다고 협박했다”고 덧붙였다. K도 “지금 밖에 나가기만 하면 (군경이) 총을 쏘고, 때리고, 잡아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K의 경우에는 현재 가족들과 함께 원래 살던 곳을 떠나 몸을 피신해야 했을 정도로 안전에 위협을 받는 상황이라고 한다. K는 “우리 가족은 원래 바고라는 곳에 살았는데, 2월 말 급히 그곳을 떠났다”고 전했다. 공무원인 부모가 쿠데타에 반대해 시민불복종(CDM) 운동에 참여했다가 신변에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다. K는 “(군경이) CDM에 참여한 공무원들을 집으로 찾아가 체포하기 시작했다”며 “그래서 어머니와 먼저 밤중에 급하게 바고를 떠났고, 아버지 역시 얼마 전에 우리가 있는 곳으로 왔다”고 말했다.
K는 지난 2월 말에는 시위에 나갔다가 근처에서 터진 최루탄에 맞기도 했다. 그는 “친구들이랑 모여서 시위대가 모이는 곳으로 가 시위에 참여했다. 그러다 최루탄이 근처에서 터지면서 (파편에) 맞았고, 이후에는 한두 번 정도만 나가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당연히 두렵고 무섭지만, 민주주의를 간절히 원하기 때문에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라며 “시위에 나가지 않더라도 트위터나 언론사 등을 통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두 사람은 한국에 대해 응원과 지지에 감사를 표하면서 지속적인 관심을 부탁했다. A는 “한국에서 지금 많이 응원해주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진심으로 감사하다”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미얀마에 대해 관심을 두고 국제적인 결정 등에 있어 우리 편이 돼 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K 역시 “시간이 조금 걸릴지라도 변함없이 미얀마가 민주주의를 되찾을 수 있도록 함께 해주길 부탁한다”고 호소했다.
한편 미얀마 인권단체인 정치범지원연합(AAPP)에 따르면 미얀마에서는 쿠데타 발발 이후 지난 5일까지 570명이 희생됐고, 2728명이 구금된 것으로 집계됐다.
[이투데이/변효선 기자(hsbyu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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