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인권운동가·학생 등 3명
첫 거리 시위 조직 ‘구심점’
SNS엔 헌정 그림 퍼져나가
임시정부는 헌법 무효 선언
미얀마 쿠데타 반대 시위를 이끄는 타자 산, 에이 띤자 마웅, 와이 모 나잉(왼쪽부터)의 모습을 그린 그림. 미얀마 시민들은 이들의 용기와 리더십을 칭찬하며 이 그림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하고 있다. 트위터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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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에서 쿠데타 반대 시위를 이끄는 Z세대(1990년대 중반 이후 출생자) 청년 지도자 3명이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지난 2월1일 군부 쿠데타 후 첫 거리 시위를 조직하면서 “봄의 혁명”이라고 불리는 민주화 시위의 구심점이 됐다.
5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미얀마의 유명한 청년 지도자들”이라는 소개와 함께 미얀마의 최대 도시 양곤, 제2도시 만달레이, 사가잉 지역의 몽유와에서 민주화 시위를 이끄는 3명을 그린 헌정 그림이 퍼지고 있다.
양곤에서 활동하는 에이 띤자 마웅(27)은 인권운동가이자 정치인이다. 지난해 11월 총선에서 ‘새로운 사회를 위한 민주당(DPNS)’이라는 정당 소속으로 출마한 최연소 국회의원 후보 중 한 명이다. 불교도이자 버마족인 그는 아웅산 수지가 이끄는 문민정부하에서 군부가 벌인 로힝야족 등 소수민족 학살에 반대하는 연대 활동을 벌여왔다.
띤자 마웅은 쿠데타 닷새 만인 지난 2월6일 양곤 서쪽의 흘라잉타야의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 수천명과 함께 첫 거리 시위를 이끌었다. “우리는 독재를 원하지 않는다”고 외치는 여성들의 모습은 전국에 큰 영감을 줬다고 미얀마나우가 전했다. 띤자 마웅은 “침묵 뒤에 가장 강력한 폭풍이 온다”면서 지속적인 저항을 강조했다. 인도, 태국, 인도네시아, 대만, 홍콩의 민주세력 연합체인 ‘밀크티 동맹’에 참여하며 군사정권을 규탄했다.
만달레이에서는 타자 산이 지난 2월4일 쿠데타 이후 첫 거리 시위를 주도했다. 당시 만달레이 의대 밖에서 학생들이 벌인 기습 시위에서 그가 미얀마 남성 전통치마(사롱) 차림으로 확성기를 들고 열정적으로 연설하는 사진과 동영상이 전 세계에 퍼졌다. 한 누리꾼은 “타자 산은 쿠데타의 충격으로 대중이 무력한 상태였을 때 가장 먼저 소규모 시위를 시작했다”면서 “우리가 많은 신세를 진 가장 용맹한 젊은 지도자 중 한 명”이라고 평가했다.
몽유와 지역에서는 학생인 와이 모 나잉이 노동자들의 파업을 주도하고 있다. 그는 시위 연설에서 “우리는 그들의 군사통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매일 행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세 사람의 종교는 각각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다. 불교 인구가 90%에 가깝고 소수종교, 소수민족 탄압의 역사가 있는 미얀마에서 청년들의 다양한 연대를 상징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미얀마 임시정부(CRPH)도 10개 소수민족 무장단체와 본격적으로 손잡고 2008년에 제정된 헌법 무효를 선언했다. 군부에 비상사태 선포권 등 막강한 권한을 부여한 2008년 헌법 폐지를 위해 주류 민족인 버마족과 소수민족이 손잡은 것이다. CRPH는 소수민족에게도 시민권과 자치권을 부여하는 연방연합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소수민족 청년들의 반군 입대도 속속 늘어나고 있다고 현지 매체 프런티어 미얀마는 전했다.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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