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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미얀마 민주화 시위

‘안 나서나, 못 나서나’ 미얀마 두고 계산 중인 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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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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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미얀마를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을 만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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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정치의 ‘비정함’은 그 끝이 어디인가. 지난 2월 1일 군부 쿠데타로 촉발된 미얀마 민주화 시위로 무고한 희생자가 생겨나고 있다. 군부가 난사한 총은 어른과 아이, 시위대와 일반 국민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목숨을 앗아갔다. 이에 미국을 비롯한 몇몇 국가는 미얀마 군부를 향한 개별 제재에 나섰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단결된 대응은 여전히 나오지 않고 있다. 참상 앞에서도 ‘국익’ 우선이라는 전략적 계산이 고려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얀마 내부에서 시작된 문제는 어느새 지정학, 미중 경쟁, 유엔 무용론 등의 국제정치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 미얀마는 어쩌다 이렇게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힌 공간이 됐을까.

■미얀마 무엇이 문제였나
미얀마는 오랜 기간 ‘은둔의 나라’였다. 1962년 쿠데타에 성공한 군부세력은 불교와 사회주의를 결합한 ‘버마식 사회주의’를 내세우며 독재를 시작했다. 안정적 독재를 위해 국제사회로 통하는 문을 걸어 잠갔다. 미얀마 국민은 1988년 8월 8일에 일어난 ‘8888항쟁’, 2007년에 일어난 ‘샤프론 항쟁’ 등을 통해 민주주의를 요구했다. 군부는 이때마다 친군부 정당의 이름만 바꿔가며 집권을 이어갔다.

이러한 독재체제에 변화가 생긴 것은 2015년이었다.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LD)이 2015년 11월 총선에서 승리하며 집권에 성공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선거에서 거듭 참패해온 군부는 이미 각종 안전판을 만들어놓고 있었다. 군부는 2008년 헌법 개정으로 국회 의석수의 25%를 지명할 수 있다. 또 국경지역 경찰권, 자원에 대한 지배권을 포함한 경제권 역시 장악했다. NLD의 집권은 민주화가 아닌 군부와의 ‘불편한 공존’ 시대로의 전환이었다.

하지만 정권을 넘겨준 군부에도 위기는 찾아왔다. ‘헌법개정 시도’와 ‘선거 참패’가 문제였다. NLD는 군부의 권한을 축소하기 위해 헌법 개정을 추진했다. 개정안의 핵심은 군부가 지명할 수 있는 국회 의석수를 2030년까지 전체 의석의 5%로 줄이는 것이었다. 2021년 3월로 예정된 연방의회에서 헌법 개정안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20년 11월 선거가 열렸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난 등으로 NLD의 압승은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총선 결과 NLD는 상·하원을 합쳐 총 396석을 차지하며 오히려 2015년보다 6석을 더 확보했다. 반면 친군부 정당인 연합연대개발당(USDP)은 33석을 차지해 2015년보다 8석이 줄었다. 군부는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정치권력의 상실은 경제권력의 반납으로 이어질 것이 분명했다. 결국 군부의 선택은 ‘선거부정’을 내세운 쿠데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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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아프리카에서 수출되는 원유는 벵골만에서 미얀마를 통과해 중국 윈난성으로 들어간다. 이 수송선이 끊기면 믈라카 해협에서 싱가포르, 베트남을 지나는 경로를 선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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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배후? 중국은 선택하지 않은 것
사실 쿠데타를 준비하는 군부의 움직임은 이미 여러 정황에서 발견됐다. 이중 주목할 만한 것은 지난 1월 12일 아시아 순방에 나선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미얀마 군부 수장인 민 아웅 흘라잉 사령관의 만남이다. 군부가 쿠데타 전 마지막으로 만난 외교사절이 중국이었다. 당시 흘라잉 사령관은 왕이 외교부장에게 “총선에 불만이 있다. 군부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서구 언론은 미얀마 사태의 배후로 중국을 지목했다. 중국은 ‘배후설’을 부인했지만, 미얀마 문제 해결에 ‘침묵’하며 의혹은 커졌다. 하지만 ‘국익’의 관점에서 보면 중국 ‘배후설’은 설득력이 낮다. 중국은 미얀마가 ‘현상 유지’를 하며 안정적으로 관리되는 것이 이득이기 때문이다. 중국에 미얀마는 여러 측면에서 중요하다. 우선 에너지 수송로서의 가치다. 중동, 아프리카에서 수출되는 원유는 벵골만에서 미얀마를 통과해 중국 윈난성으로 들어간다. 이 수송선이 끊기면 믈라카 해협에서 싱가포르, 베트남을 지나는 경로를 선택해야 한다. 수송 거리가 멀어질 뿐 아니라 이 항로는 미국 함대가 지키고 있다.

미얀마 내 자원도 중요하다. 특히 미얀마 서부 해안에서 나는 천연가스는 중국뿐만 아니라 태국 등의 동남아시아 국가로도 수출된다. 미얀마와 정치·경제적으로 엮인 태국은 이번 상황에 침묵하고 있는 국가 중 하나다. 미얀마는 미국과의 대결 국면에서도 가치가 있다. 중국 일대일로 정책의 해상 실크로드 거점 중 한 곳일 뿐만 아니라 인도와 중국 사이의 완충지대 역할도 한다. 장준영 한국외대 동남아연구소 교수는 “미얀마가 중요한 중국 입장에서는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 더 나은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국은 NLD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NLD는 2017년 로힝야족 학살 문제로 중국과 가까워졌다. 당시 미국을 포함한 서구세력은 군부뿐만 아니라 아웅산 수치에게도 비판을 쏟아냈다. 이는 경제제재로 이어졌는데 2011년 이래 연 7% 이상 고속성장하던 미얀마의 경제성장률이 2018년 6.2%로 하락했고, 2020년에는 1.8%로 급락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외국인직접투자(FDI) 비중 역시 2017년 6%에서 2018년 1.8%로 줄었다.

경제적 어려움에 몰린 미얀마 정부는 ‘동진정책’을 택했다. 중국, 태국, 싱가포르 등의 동아시아 국가들이 미얀마의 주요 교역국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홍문숙 부산외대 교수는 “중국이 아웅산 수치와 가까워지려고 한 것이 아닌 아웅산 수치가 중국과 손을 잡으려 한 것”이라며 “중국은 군부와 아웅산 수치 모두와 친밀한 상황에서 누가 이기는지 지켜보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얀마에 대한 경제 제재가 쉽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미얀마와 교역이 많은 국가가 제재에 동참해야 하지만 대부분이 침묵하고 있다. 군부와 시위대 모두 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상황에서 중립을 지키는 것이다. 이들의 국익은 이기는 쪽 편을 들며 현상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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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12일 미얀마를 방문해 민 아웅 흘라잉 미얀마 최고 군사령관을 만난 왕이 중국 외교부장 / 네피도 신화=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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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은 개입하지 않는가, 못 하는가
미얀마를 둘러싼 각국의 이해관계가 복잡함에 따라 주목받는 것은 유엔의 역할이다. 다자기구가 국가 간 이해를 조율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얀마 국민은 유엔에 ‘쿠데타를 비판할 것’, ‘연방의회대표위원회(CRPH)를 미얀마 공식 대표로 인정할 것’, ‘자국민 보호책임(R2P·Responsibility to Protect)을 시행할 것’ 등의 세 가지를 요구했다. 하지만 유엔은 이를 전부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엔이 미얀마 사태에 개입하기 어려운 것은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운영 방식 때문이다. 안보리는 주로 국제 안보 문제를 다루는데 미국, 중국, 러시아, 영 국, 프랑스 등의 상임이사국 5개국과 2년 임기의 비상임이사국 10개국으로 구성된다. 상임이사국은 안보리에 올라온 안건에 대한 ‘거부권’을 갖고 있다. 이양희 전 유엔 미얀마인권특별보고관은 “거부권을 가진 러시아, 중국이 성명을 내는 것조차 반대하고 있다”며 “유엔은 개입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못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무력 개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는 R2P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R2P는 국가가 집단학살, 전쟁범죄, 인종 청소, 반인륜 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지 못할 경우 유엔이 강제 조치에 나선다는 원칙이다. 국제 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고 회복하기 위해 필요할 경우 무력을 통해 제재할 수 있다는 유엔헌장 제7조가 근거다. 하지만 이 역시 안보리 결정 사항이다.

무력 개입이 분쟁의 장기화나 내전을 촉발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 전 보고관은 “실제로 2011년 리비아 내전 때 R2P 사례가 있었지만 대부분 실패한 개입으로 본다”며 “R2P로 사태가 금방 해결되거나 희생자를 줄인 것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내전으로 상황이 번지는 것이다. 장 교수는 “내전은 더 많은 국민을 희생시키고 사태를 장기화 시킨다”며 “설사 내전으로 가더라도 시민군이 승리할 확률은 희박하다”고 말했다. 홍 교수 역시 “한번 무기를 들면 내려놓기가 쉽지 않다”며 “3~4년을 더 싸우면서 많은 사람이 죽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엔 차원의 경제제재 역시 어렵긴 마찬가지다. 고려할 수 있는 방식은 ‘제3자 제재’(세컨더리 보이콧)지만 피해를 보는 국가가 양산된다는 문제가 있다. 한국 역시 미얀마에 봉제공장 등의 영세 기업들이 다수 진출해 있다.

결국 제재가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현실적 대안은 ‘협상’이다. 유엔이나 아세안이 나서 군부와 CRPH의 협상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다. 홍 교수는 “우선 유엔을 포함한 국제기구들이 CRPH를 인정하고 공식적인 대화채널에 이들을 참여시켜야 한다”며 “군부 역시 국민의 거센 저항을 보며 협상을 통한 탈출구를 찾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얀마 국민에게 비판받겠지만 유엔과 아세안은 이번 위기가 내전으로 확산되기 전에 양측의 이해관계를 조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전 보고관 역시 “유엔 사무총장이 직접 미얀마에 들어가는 것이 한 방법일 수 있다”며 “일단 양측을 진정시키고 각 진영 대표들과 대화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협상을 하더라도 결론이 이상적일 수는 없다. 시위대와 군부의 의견을 모두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가능성이 큰 결론은 NLD와 군부가 공존했던 쿠데타 직전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막대한 희생자를 감내하며 군부와 내전을 시작할 것이냐, 군부와 공존하며 후일을 도모할 것이냐. 미얀마의 다음 선택이 주목받고 있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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