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진욱 OK금융그룹 감독.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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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이)우리랑 똑같은 경기 하더라구요." 2일 밤, 석진욱 OK금융그룹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놓친 것 같았던 포스트시즌 티켓을 잡고 난 뒤였다.
OK금융그룹은 1일 열린 대한항공과 경기에서 세트 스코어 1-3으로 졌다. 정규시즌 1위를 차지한 대한항공이 외국인 선수 요스바니 에르난데스와 세터 한선수를 포함한 주전 선수 상당수를 빼는 등 전력을 아꼈지만 뜻밖의 일격을 당했다. 3-0 또는 3-1 승리를 거두면 3위로 준플레이오프(준PO)에 갈 수 있었지만, 승점 1점도 따지 못하면서 탈락 위기에 놓였다. 석진욱 감독은 평소보다 선수들에게 큰 목소리로 독려했지만 무기력한 경기력을 보이며 패했다.
경기를 마치고 돌아온 석진욱 감독은 사실상 봄배구를 포기했다. 석 감독은 "어렵다고 봤다. 오늘(2일) 만난 선수들이 푹 처져 있길래, 하고 싶은 걸 하라고 했다"며 "대신 처지지 말고 웃으라고 했다. 이런 상황을 원치 않았고, 전날 경기력이 아쉽지만 책임은 내가 진다. 기운을 내자"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 희망이 걸린 한국전력과 우리카드의 경기를 TV로 지켜봤다.
선수들에게 작전을 지시하는 석진욱 감독.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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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 밖의 결과가 일어났다. 한국전력이 정규리그 2위를 확정한 우리카드에 세트 스코어 0-3으로 졌다. 우리카드는 주전 선수들을 내보냈고, 한국전력은 1세트부터 힘을 쓰지 못하고 완패했다. 한국전력은 18승18패(승점55)로 정규시즌을 마쳤다. OK금융그룹(19승17패·승점55)과 승점은 같았지만, 승리 경기수에서 앞선 OK금융그룹이 4위로 봄 배구 막차를 탔다.
석진욱 감독은 "한국전력 선수들도 부담스러운 것 같더라구요. 우리는 젊은 선수들도 있고 경험도 부족해서 좋지 못한 경기력이 나왔는데, 한전도 그랬다"고 했다.
석 감독 부임 2년차인 OK금융그룹은 1라운드에서 6전 전승을 거두며 기분좋게 출발했다. 시즌 전 필립이 부상으로 이탈했으나 대체선수 펠리페가 잘 해줬다. FA로 영입한 진상헌도 활약했고, 선수층을 두껍게 하는데 힘을 기울인 게 통했다. 5세트 경기를 자주 이기며 고비를 넘기는 힘도 키웠다. KB손해보험, 대한항공과 중반까지 순위 경쟁을 벌였다.
하지만 악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부상자가 속출했고, 불미스러운 일로 주전 레프트 송명근과 심경섭이 이탈했다. 결국 5라운드에서 1승5패(승점6)에 그치면서 처음으로 5위까지 내려갔다. KB손해보험과 경기에서 상대팀 박진우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는 바람에 선수단 전원이 자가격리를 하기도 했다. 석진욱 감독은 "체력적으로 선수들이 지쳤고, 두 명이 빠졌다. 코로나로 자가격리도 했다. 모든 걸 겪었다"고 한숨을 쉬었다.
극적으로 포스트시즌에 가게 됐지만 웃을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석 감독은 시즌 중 고비를 묻자 "지금"이라고 답했다. 그는 "체력적으로 선수들이 힘들고, 지금 잘못되면 팀이 잘못 돌아갈 수도 있다"고 했다. 포스트시즌에 100% 전력을 기울이기도 힘들고, 올 시즌 뒤에도 선수단 개편이 필요한 상황에 대한 이야기였다.
OK금융그룹은 3위 KB손해보험(승점 58·19승 17패)과 4일 오후 7시 의정부체육관에서 맞붙는다. 두 팀은 정규시즌에서 3승3패로 팽팽히 맞섰다. 공교롭게도 주전 세터 이민규(OK금융그룹)과 황택의(KB손해보험)가 부상중이라 어떤 경기라 펼쳐질지 예측 불허다.
석진욱 감독은 "그래도 민규에게 기대를 한다. 능력이 있다. 다만 우리 팀 리시브가 많이 흔들리고 있다. 무릎이 안 좋은 이민규가 뛰어가면서 공을 올리기 힘들다. 곽명우와 함께 경기를 잘 풀어줘야 한다"고 했다. 이어 "선수들에게 부담을 안 주는 게 첫 번째다. 사실 감독의 주문이 많아지니, 선수들의 생각도 많아졌다. 최대한 기술적인 부분보다 심리적인 부분과 안정감을 심어주려고 한다. 우리끼리 웃으면 배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석진욱 감독이 꿈꾸는 포스트시즌 경기는 선수들과 함께 웃으며 하는 배구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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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K금융그룹은 김세진 감독이 이끈 2014~15, 15~16시즌 챔프전 2연패를 달성했다. 하지만 이후 7위-7위-5위-4위(코로나로 포스트시즌 무산)에 그쳤다. 코치로서 김 감독을 보좌했던 석진욱 감독이 사령탑으로서 처음 맞는 포스트시즌이자, 5년 만의 봄 배구다.
석진욱 감독의 목표는 승리보다는 멋진 경기다. 석 감독은 "팬들에게 좋은 경기 보여드리는 게 제일이다. 이기고 지고는 어쩔 수 없는 결과다. 설사 지더라도 박수받는 경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올 시즌 최악의 경기 이후 다시 한 번 기회를 잡은 석진욱 감독의 바람은 이뤄질까.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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