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군부는 국민을 보호하고 민주주의를 쟁취하겠습니다.” 쿠데타로 실권을 장악한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은 지난 27일 수도 네피도에서 성대하게 열린 ‘국군의 날’ 퍼레이드 행사에서 이 같이 외쳤다.
그 시각, 미얀마 국민들은 바로 그 군부에 의해 “새와 닭처럼” 무차별적으로 집단 살육을 당하고 있었다. 집 근처에서 놀던 1살 아기가 한쪽 눈에 고무탄을 맞았고, 13살 소녀가 집 안에서 총에 맞아 숨졌다. 군부가 시민을 산 채로 태웠다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집 근처서 놀다가 한쪽 눈에 고무탄을 맞은 1살짜리 아기. / SNS 캡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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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매체인 ‘미얀마 나우’는 이날 군경이 전국 40개 도시에서 시위대에 실탄을 발포하는 등 유혈진압에 나서 최소 114명의 시민이 살해 당했다고 보도했다. 쿠데타 이후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이날까지 합치면 누적 사망자는 최소 450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날 미얀마 군부는 ‘국군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군인 수천명을 동원한 열병식을 열었다. ‘국군의 날’은 지난 1945년 일본 점령군에 맞서 무장 항쟁을 시작한 것을 기념하고자 제정된 공휴일이다. 반면 이날을 ‘군부 쿠데타 항쟁의 날’로 정한 시민들은 “(국군의 날에) 시위를 벌일 경우 머리와 등에 발포하겠다”는 군부의 전날 경고에도 아랑곳 하지않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군부는 이날 새벽부터 실탄과 고무탄 등을 발사하며 유혈진압에 나섰다. 시위대를 찾기 위해 주택가에도 무차별 총격을 퍼부은 탓에 집 안으로 날아들어온 총탄에 맞아 13살 소녀가 사망했다. 집 근처에서 놀고 있던 1살짜리 아기도 한쪽 눈에 고무탄을 맞아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이들 외에도 11살 소년과 7살 무슬림 소녀 등이 총에 맞아 사망했다는 소식들이 올라오고 있어 어린이 희생자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이라와디 등 현지 매체 보도를 종합하면 쿠데타 이후 이날까지 사망자 중 17세 이하 청소년 또는 어린이는 최소 24명에 이른다. 유니세프는 공식 트위터를 통해 “어린이들을 향한 이 비극을 멈춰야 한다”고 촉구했다. 미얀마 주재 유럽연합(EU) 대표단도 “어린이들을 살해하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며 “이날은 테러와 불명예의 날로 영원히 새겨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군부가 불을 질러 50여채의 집이 불에 탄 흔적. /SNS 캡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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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가 시민을 산 채로 불태웠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현지 매체 ‘킷띳미디어’는 목격자의 말을 인용해 만달레이에서 군부가 네 아이의 아버지에게 총격을 가한 후 아직 살아있는 그를 불 속에 집어 넣어 태웠다고 보도했다. 28일 오전 마을 주민들은 불이 타고 난 잔해 속에서 그의 뼈를 발견했다. 군부가 새벽에 만달레이의 한 마을에 불을 질러, 50여가구의 집이 불에 타고 재만 남은 사진도 SNS에 올라오고 있다.
시위에 참가한 투야 자우는 “군부가 우리를 새나 닭처럼 죽이고 있다”면서 “우리는 그래도 군사정권이 무너질 때까지 계속 항의하고 싸울 것”이라고 로이터 통신에 말했다.
소수민족 무장반군의 반격도 거세지고 있다. 27일 카렌민족연합은 ‘국군의 날’ 행사가 열리는 동안 태국 국경지역에서 군 초소를 습격해 10여명을 사살하고 초소를 장악했다. 이후 군부가 전투기로 카렌족 마을에 폭격을 가하면서, 최소 2명 이상의 시민이 사망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톰 앤드루스 유엔 미얀마 인권특별 보고관은 “말로만 비난과 우려를 표시하는 것은 미얀마인들에게 공허하게 들릴 뿐”이라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내지는 국제 긴급 정상회담을 열어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과 미국, 독일, 호주 등 전 세계 12개국 국방장관도 “군은 시민을 위해 복무해야 한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미얀마 군부에게는 여전히 여러 우호세력이 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군부가 개최한 ‘국군의 날’ 행사에 러시아, 중국, 인도, 파키스탄, 태국 등 8개 국가가 사절단을 보냈으며, 특히 러시아는 차관급 인사가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유진 기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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