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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이슈 양승태와 '사법농단'

김명수 사법부, ‘양승태 대법 판사들’에 첫 유죄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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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행정권 남용’ 연루 이민걸·이규진, 1심서 집행유예

서울중앙지법 형사32부(재판장 윤종섭)는 23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에 연루된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 상임위원에겐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과 관련해 기소된 전·현직 법관 14명 중 이전까지 진행된 6차례의 1·2심 판결에선 모두 무죄가 나왔으나, 이날 재판에서 처음으로 유죄 선고가 나왔다.

이날 재판에서도 법원행정처 간부가 ‘재판에 개입했다'는 핵심 혐의는 무죄가 선고됐다. 그러나 일선 재판부에 사건 관련 의견을 전달하려 한 ‘재판 개입 시도’는 직권남용이라고 판단했다. 직권남용은 공무원이 자신의 직무 권한의 일과 관련해 하급자에게 부당한 업무를 시키는 경우에 해당한다. 이 사건에서 직권남용이 성립하려면 ‘재판 개입’이 행정처의 권한에 해당해야 한다. 이는 개별 판사는 누구나 독립적으로 재판한다는 판사의 독립성을 부정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이전 사법행정권 남용 재판에서 모두 무죄 판결이 난 것은 행정처의 그 직무 권한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년 초 임성근 당시 부장판사의 ‘재판 개입’ 혐의에 대해 법원(1심)이 무죄 선고를 내린 이유도 “법원행정처와 임 부장판사가 재판에 개입할 권한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날 재판부가 재판 개입 시도에 대해 직권 남용을 인정하면서 다른 잣대를 적용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사건 재판장은 김명수 대법원장이 전례 없이 6년간 서울중앙지법에 유임시킨 윤종섭 부장판사였다.

◇핵심인 재판 개입은 무죄

이날 선고는 오후 2시부터 5시 40분까지 3시간 40분간 진행됐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선고 시간보다 더 길었다.

이민걸 전 실장과 이규진 전 상임위원의 ‘공통 혐의’는 이들이 옛 통합진보당 소속 국회의원의 행정 소송에 개입했다는 것이었다. 헌법재판소가 2014년 통진당 해산 결정과 함께 이 당 소속 국회의원들의 직을 박탈하자, 이들은 이를 취소해 달라며 법원에 소송을 냈다. 이민걸 전 실장과 이규진 전 위원은 이 소송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해 특정한 방향으로 재판 결론을 유도했다는 혐의(직권남용)를 받았다.

재판부는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는 판사 인사 평정 등 인사 권한이 인정되기 때문에 (직무상 권한에 대한) 명문 규정이 없다 해도, 그(인사권)에 수반한 재판 핵심 영역도 대법원장과 행정처 (직권)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장과 행정처가 재판에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명문 규정은 없지만, 인사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의 권한’은 있다는 취지다. 한 법원장 출신 변호사는 “직권남용을 남용한 것”이라며 “법관은 법률과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는 헌법 조항도 스스로 무력화하는 모순적 판결”이라고 했다.

◇일선 판사들 “독립적 판단이었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양승태 대법원’이 옛 통진당 관련 소송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는 이 사건 핵심 혐의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했다. 이 사건 재판을 맡았던 판사들이 모두 법정 등에 나와 “외부 영향 없이 독립적 판단으로 선고했다”고 증언했기 때문이다. 행정처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았기 때문에 직권남용죄를 적용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지만 재판에 영향을 끼친 ‘결과'가 없었더라도, 재판에 ‘개입을 시도했다'는 것만으로 유죄라고 판단했다.

이와 함께 양승태 대법원이 2017년 초 진보 성향의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준비하던 ‘대법원장 권한 축소’ 학술 대회를 축소하라고 압박하는 등 이 연구회 와해를 시도했다는 혐의, 헌법재판소에 파견 나가 있는 판사를 통해 2015년부터 2년간 322건의 헌재 내부 자료를 정보 보고하라고 지시한 혐의도 유죄로 판단했다.

◇양승태·임종헌 재판에 영향

이날 선고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대법원 행정처 차장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민걸 전 실장과 이규진 전 상임위원의 재판 개입 시도는 양 전 대법원장과 임 전 차장의 지시로 이뤄졌다는 게 검찰 공소 내용이기 때문이다.

또 재판부는 이날 법원행정처가 헌재로부터 내부 동향 보고를 받았다는 혐의를 유죄 선고하면서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을 공범으로 적시하기도 했다. 한 변호사는 “다른 재판부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처장에 대해서까지 유죄 판단을 내린 건 지나쳤다”고 했다.

[조백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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