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4년 뒤가 더 끔찍하다. 선거인단 제도로 바뀐 뒤 두 번째로 치른 체육단체 선거가 소란스럽다. 4년 전, 첫 시행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이젠 좀 정리가 되고 후유증도 줄어들 것으로 기대했건만 사정은 악화일로다. 체육계 전체가 선거인단 제도에 넌더리를 치고 있고,대의원총회의 폐해를 덜어주기는커녕 갈등만 심화시켜 이런 제도를 지속해야할지 이만저만한 고민이 아니다. 소수의 대의원들이 체육단체 회장선거를 좌지우지하는 폐단을 없애기 위해 도입된 선거인단 제도는 한국 체육의 고질적 병폐인 ‘패거리 문화’를 없애줄 것으로 큰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두 번째 시행된 각 종목단체 회장 선거를 지켜보면 절망의 한숨만 절로 나온다. 오히려 종전 방식인 대의원 선거 방식이 훨씬 더 폐해와 잡음이 적다는 걸 피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제도의 변화에는 모두 나름의 이유가 있다. 대의원총회 선거 방식이 힘있는 소수의 대의원들에 의해 선거의 당락이 결정되기 때문에 선거 참여 숫자를 대폭 늘리는 선거인단 제도를 도입하게 됐다. 그렇다면 선거인단은 제대로 구성되고 있는가? 대의원들의 입김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선거인단 구성이 이 제도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그러나 3배수로 뽑는 선거인단이 철저하게 무작위방식으로 선발되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아직 대다수가 각 대의원들의 입맛에 맞는 선거인단을 뽑는 게 냉정한 현실이다. 공정한 선거인단 선발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선거인단 제도와 대의원 제도는 별 반 차이가 없다. 겉으로는 번드르르하지만 사실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속임수일 뿐이다. 오히려 많은 선거인단을 동원하기 때문에 돈만 많이 드는 비효율적 선거제도의 전형으로 물적토대가 무엇보다 중요한 우리 현실엔 득보다 실이 많은 제도인 셈이다.
선거정신을 해치는 담합행위도 횡행하고 있다. 공탁금 제도탓인지 마치 회장선거에 나설 듯 바람을 잡다가 특정 후보와 담합을 서슴지 않는다. 자리와 지분을 요구하는 물밑 거래는 물론이고 자칫 금품을 받고 후보를 사퇴하는 일도 벌어질 수 있다. 벌써 그런 의심의 눈초리를 받고 있는 단체도 있다는 후문이다. 해당 선거관리위원회가 조사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났기 때문에 달리 취할 방도가 없어 선거 당선증을 발부했지만 각종 민원이 쏟아지고 있어 난감하기 그지 없다.
선거인단 제도에서 수성(守城)의 입장에 있는 집행부가 욕심을 부리면 선거는 그야말로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될 공산이 짙다. 얼굴에 철판을 깔고 선거관리위원회만 장악하면 못할 게 없기 때문이다. 상대 후보 측 인사를 선관위에서 배제한 뒤 선거인 명부를 자기편에 유리하게 조작하는 꼼수를 쓰면 선거의 팔부능선을 점령할 수 있어서다. 그런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도 선거에서 지면 또다른 무리수가 기다리고 있다. 온갖 구실을 다 붙여 당선 무효를 선언하는 방식이다. 이번 선거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다. 그렇다고 합법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방법은 별로 없다. 상위단체인 대한체육회는 종목단체와의 연결고리가 있을 뿐이지 선거 당선자와는 접점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선관위에 의해 당선 무효를 통지받은 억울한(?) 당선자는 사법당국에 도움을 요청하는 게 유일한 해결책이다. 파벌싸움이 심한 종목에선 선거 후유증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두 차례의 선거인단 제도를 경험한 체육인들의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선거인단 제도가 종전의 대의원 제도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선 선거인단 선발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게 가장 시급하다. 그러기 위해선 선수 지도자 심판 등 체육생태계를 구성하는 체육인 데이터베이스(DB) 구축이 뒷받침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골깊은 파벌싸움이 계속되는 종목은 선거인단 제도와는 별로 맞지 않다.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불법선거가 자행될 가능성이 높으며 선거 불복 또한 잦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머릿속 생각과 발을 붙이고 있는 현실의 간극은 상존하기 마련이겠지만 그 간극이 해소되지 않고 점점 커진다면 결단을 내려야 할 게다. 한국 체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해 도입한 선거인단 제도는 원점에서부터 곰곰이 따져볼 사안으로 급부상했다. 한국 체육의 제도변화는 늘 정부가 주도해왔다. 선수층 등 각 종목의 뎁스(depth)가 제각각인 한국 체육에서 천편일률적인 제도의 강제는 더 큰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모든 걸 동일자의 척도로 몰아넣는 건 보이지 않는 폭력이요, 다양성을 추구하는 시대정신에도 맞지 않다. 이젠 제도의 선택도 체육계 자율에 맡길 필요가 있지 않을까. 체육을 관리와 통제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스스로 기능하는 주체로 여기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체육이 대상이 아닌 주체로 인식될 때 한국체육은 비로소 바로 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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