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우직한 소띠 해다. 걸음의 속도는 느릴지라도 방향성에선 거짓이 없고 틀림이 없다. 그게 바로 소가 지닌 이미지다. 신년 벽두에는 희망의 덕담을 건네는 게 맞겠지만 체육계의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세밑부터 뜨겁게 달아오른 제 41대 대한체육회장 선거 탓이다. 우직한 소의 이미자와 걸맞지 않게 거짓과 협잡이 난무해 눈살이 찌푸려진다. 누구 말마따나 4류 정치가 체육의 신성한 영토를 침범한 결과다. 퇴물 정치인들이 마지막 권력욕을 불태우며 체육회장 선거를 넘보다 보니 숱한 파열음과 함께 국민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막장 드라마까지 연출하고 있다.
한 체육인의 작심 발언은 뼈가 있고 날이 섰다.
“이게 도대체 뭐 하는 짓이냐? 썩어빠진 정치에 체육마저 오염되면 정말 큰 일이다. 이번 체육회장 선거를 통해 체육이 정치에 견줘 훨씬 선진적이라는 사실이 여실히 입증됐다. 선거에 직·간접적으로 간여된 다수의 정치인들이 보여준 행동은 하나같이 상식을 벗어났다. 체육을 우습게 보고 더 나아가 국민마저 우롱한 처사에 체육인들의 마음은 모두 돌아섰다.”
체육이 정치의 시녀로 전락한 지는 이미 오래됐지만 정치가 체육계에서 그 밑바닥까지 훤히 드러내 보이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닐까 싶다. 닳고 닳은 정치인들의 정치공학적 셈법에 따라 후보 단일화를 모색한 건 그나마 애교에 가깝다. 정관에 명시된 피선거권 결격사유를 교묘한 아전인수식 유추해석으로 정당화한 것도 모자라 음모론까지 제기한 건 천박한 한국 정치의 태생적 한계를 보여준 것 같아 씁쓸하기 그지없다. 어디 그 뿐이랴. 단일화를 명분으로 불출마를 선언했다가 하루도 안돼 약속을 어긴 5선의 전직 국회의원도 한국 정치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만 온몸으로 역설한 꼴이 됐다. 철학의 빈곤을 드러낸 정치인들을 꼭두각시처럼 막후에서 조종한 인물은 누가 뭐래도 체육을 정치판으로 만든 부끄러운 주역이다. 선택적 지각과 확증편향으로 사물과 현상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데 문제가 있는 이 사람은 문재인 정권에서 체육정책을 주도했다는 데 이견의 여지가 없다. 엘리트체육에 대한 과도한 폄훼로 스포츠의 균형잡힌 시각을 상실한 그는 전문성을 위장한 과잉신념으로 체육의 정치화를 이끌고 있다.
정치가 4류로 전락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부끄러움을 모르기 때문이다.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인 염치(廉恥)라는 감정은 자기모순에 빠졌을 때 물밀 듯 밀려오지만 정치인들은 다른 모양이다. 자기모순에 빠지는 일이 생겨도 도무지 부끄러움을 모르는 듯 더더욱 당당하게(?) 궤변을 늘어놓거나 논리적 비약을 서슴치 않는다. 정치인들의 꼬임에 빠져 단일화에 나섰다가 뒤통수를 맞은 모 후보의 지적은 귀담아 둘 만하다.
“반 이기흥 회장 단일화를 뒤에서 주도하고 있는 여당 체육실세가 지난 체육회장 선거에선 어떤 일을 했는가. 지금은 적폐라고 규정한 이 회장을 당시 가장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않았는가. 자기모순에 빠진 정치인들의 탐욕스런 체육의 정치화는 그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
이번 선거의 지형과 구도는 자명하다. 체육을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시킨 정치세력과 스포츠의 신성한 영토를 지켜야 하는 체육인의 자존심을 건 한판 대결이다. 묵묵히 발걸음을 내딛는 우직한 소가 자기모순에 빠진 교활한 여우를 엄벌하는 그런 싸움이다. 체육을 적과 아군이라는 날선 이분법으로 갈라놓은 혐오의 정치 바이러스는 이번 선거를 통해 쫓아내야할 우리 모두의 공적(公敵)이다.
편집국장 jhkoh@sportsseoul.com
[기사제보 news@sportsseoul.com]
Copyright ⓒ 스포츠서울&sportsseoul.com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