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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차례 열린 상벌위…또 결론 연기
크리스마스이브를 끝으로 2020년을 마무리하려던 KBO는 끝내 큰 숙제 하나를 마무리하지 못했습니다. 키움 구단의 '팬 사찰·갑질' 논란에 대한 징계 여부를 확정하지 못한 겁니다. 세 차례 상벌위를 열고도 결론을 내리지 못한 건 KBO 역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KBO가 갈팡질팡하는 가장 큰 이유는 '논란의 몸통'인 허민 키움 이사회 의장에 대한 징계를 놓고 의견차가 좁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KBO 내부에선 허민 의장에게 징계를 줘야 한다는 의견과 징계를 줄 수 없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징계 배제' 의견의 배경에는 소송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허 의장이 징계에 불복하고 KBO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경우 KBO가 불리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상벌위원인 법조인, 그리고 KBO 사내 법무팀이 이런 주장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래서 상벌위에선 허 의장을 제외한 나머지 키움 관계자에게 '엄중 경고'를 주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하자는 의견이 다수였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실제로 상벌위원회에는 키움 구단을 대리하는 국내 최고 로펌의 변호사 두 명이 참석해 키움 구단과 허민 의장에 대한 징계가 부당하다고 역설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KBO는 지난 3월, 이장석 전 대표의 옥중 경영과 허 의장의 방조 의혹에 대해서도 '리그의 품위'를 지키는 차원에서 벌금 2천만 원을 부과하고 일부 경영진에게 '엄중 경고' 조치를 했습니다. 그 조치로 리그의 품위가 지켜졌는지는 의문입니다.
● 총재의 '외로운 싸움'…클린베이스볼은 어디에?
지난 23일 오후 5시쯤, 2차 상벌위를 마친 KBO는 취재진에게 한 통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상벌위 결과를 보고 받은 정운찬 총재가 조금 더 숙고한 뒤 최종 결론을 내릴 것"이란 내용이었습니다. KBO의 공지에 총재의 이름이 등장한 건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KBO 안팎의 정보를 종합하면, 정운찬 총재는 상벌위의 '엄중 경고' 의견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허민 의장이 사태의 핵심인물인 만큼, 반드시 징계를 줘야 한다는 겁니다. 불만을 표시하기 위한 방법으로 상벌위가 올린 '엄중 경고' 권고에 결재를 거부하고 일찌감치 집무실을 나섰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연말이면 임기가 끝나는 총재로선 강력한 메시지를 던진 겁니다. 실제로 정 총재는 상벌위 전후로 허민 의장을 반드시 징계해야 한다는 의견을 여러 차례 내비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현재 총재와 상벌위가 맞서는 초유의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같은 대립의 배경에는 KBO 클린베이스볼센터의 석연치 않은 행보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리그의 공정성 강화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클린베이스볼센터는 줄곧 리그의 발목을 잡아온 키움 수뇌부 문제에 대해 유독 느리고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했습니다. 클린베이스볼센터는 올 시즌 막판 키움 손혁 감독 사퇴 이후 불거진 '허 의장의 경기 개입 논란'에 대해 사실상 손을 놓았습니다. 그마저 손 전 감독이 조사를 거부하자 이 부분을 물음표로 남겼습니다. 손 전 감독과 함께 했던 코치, 선수들에겐 어떠한 질문도 던지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 왔던 '팬 사찰·갑질' 논란이 언론 보도와 한 은퇴 선수의 증언으로 새 국면을 맞이하자 부랴부랴 조사에 착수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한 달 가까이 이뤄진 조사 과정에서도 강력한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는 게 야구계 안팎의 중론입니다. 실제로 논란의 핵심 당사자인 허 의장과 조사 직전 사퇴한 하송 전 대표와 만남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상벌위엔 '부실 보고서'를 제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KBO는 자체 조사를 진행한 뒤 22일 상벌위를 열었습니다. 상벌위엔 키움에서 뛰다 은퇴한 이택근 선수와 김치현 키움 단장이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키움 구단이 돌연 절차적 정당성에 문제가 있다고 이의를 제기하면서 최종 결정이 미뤄졌습니다. KBO는 상벌위 개최 최소 일주일 전 구단에 통보해야 하는 절차를 지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투명 경영관리인'은 '결자해지' 해야
KBO는 지난 4월, 키움 구단의 운영 상황을 감시할 '투명경영관리인'으로 정금조 KBO 운영본부장 겸 클린베이스볼 센터장을 선임했습니다. 심지어 고척 스카이돔에 있는 키움 구단 사무실에 자리를 마련해 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허 의장을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강남에 있는 위메프 사옥에서 1군 스타 선수들을 상대로 '야구 놀이'를 했단 보도가 나왔고, 정규리그 3위를 달리던 감독이 숱한 뒷말을 남기며 중도 하차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지난달엔 '팬 사찰'의 뚜렷한 정황까지 공개됐습니다. 하지만 문제 해결에 앞장서야 할 클린베이스볼센터는 가장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했습니다.
한 은퇴 선수의 내부 고발 이후 프로야구선수협회와 은퇴선수협회는 키움에 대한 강한 징계를 KBO에 요청했습니다. 대다수의 야구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며칠 안 남은 올해 마지막 기간은 온전히 KBO의 시간입니다. 초유의 '내부 의견 대립'을 딛고, KBO는 민심에 부합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요?
김정우 기자(fact8@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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