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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인민 호날두’ 안병준, MVP 먹었다 ”이동국처럼 오래 뛰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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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FC 승격 이끈 재일교포 3세 - 강력한 중거리 슈팅·마무리로 인민 호날두·레반동무스키 별명

태어난 곳은 일본, 국적은 북한, 활동 무대는 한국.

재일교포 3세 출신 안병준(30)의 가슴속엔 세 개의 나라가 있다. 그중 축구 선수로서 빛을 본 곳은 한국이었다.

안병준은 올해 K리그에서 깜짝 스타로 떠올랐다. 프로축구 2부 수원FC 공격수인 그는 올 시즌 26경기에서 21골(4도움)로 득점왕에 오르며 5년 만에 팀의 1부 승격을 이끌었다. 그는 지난달 30일 시상식에서 2부 리그 MVP(최우수선수) 영예를 안았고, 베스트 11 공격수 부문에도 이름을 올리며 3관왕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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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대표팀 출신의 재일교포 3세 안병준이 K리그 2부 MVP로 뽑힌 다음 날인 지난 1일 경기도 수원종합운동장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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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마음먹은 대로 일이 술술 풀려서 왠지 무섭더라고요. MVP 시상식 갈 때 에이전트에게 ‘이러다 차 사고로 죽지 않겠지?’라고 농담할 정도였어요. 초등학교 이후 처음 받는 MVP예요. 시상식 후 축하 겸 저녁에 가족들과 소고기 외식을 하고 나서야 현실 느낌이 들었어요.”

다음 날인 1일 수원종합운동장에서 만난 안병준에게 축하 인사를 전하자, 그는 ‘실감 나지 않는 한 해’라고 표현했다. 그에 앞서 량규사·김명휘·안영학·정대세 등 조총련(재일조선인총연합회)계 북한 출신 4명이 K리그를 거쳤지만, 북한 선수가 MVP가 된 것은 K리그 38년 역사상(1, 2부 포함) 안병준이 처음이다.

◇인민 호날두의 코리안 드림

안병준은 2018년 12월 수원FC 유니폼을 입을 때부터 실력보다는 북한 출신으로 주목받았다. 북한의 17세, 23세 이하 연령별 대표에 이어 2011년부터 2017년까지 북한 성인 대표팀 소속으로 A매치(국가대항전) 8경기를 뛰었다. 제주 출신인 안병준의 조부모는 일본으로 건너가 안병준 아버지를 낳았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일본에서 태어난 안병준은 아버지를 따라 일본에서 북한 국적을 취득했다. 그는 “어렸을 때 일본에서 ‘북한애’라고 가끔 놀림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2013년 일본 가와사키 프론탈레에서 프로에 데뷔한 이래 주로 2부(94경기 19골 10어시스트)에서 뛰었다. 2018년 말 로아소 구마모토가 3부로 강등되자, 수원FC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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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준은 “한국에서 생활한다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해 봐서 오래 고민했지만, 다시 없을 기회라고 생각했다. 초심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으로 수원 땅을 밟았다”고 했다. 한국 생활 첫 해는 녹록지 않았다. 시민구단인 수원FC의 한 해 예산은 기업 구단인 수원 삼성(2019년 약 180억원)의 절반 수준. 전용 경기장과 클럽하우스도 없었다. 경기장 관리인에게 “정해진 시간 외에 잔디를 함부로 밟지 말라”는 타박을 듣기도 했다.

지난 시즌 중반 무릎을 다쳐 잠시 슬럼프에 빠졌던 그는 올 시즌을 앞두고 몸 싸움 많은 K리그에서 살아남기 위해 체력 훈련에 집중했다. 그는 “근육량이 3~4㎏ 정도 늘자 슈팅에 힘이 붙고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팬들은 날카로운 마무리 능력과 강력한 중거리 슈팅을 갖춘 그에게 ‘인민 호날두’ ‘인민 레반도프스키’ ‘레반동무스키’ 등 애칭을 붙였다.

◇”이동국처럼 되고 싶다”

낯선 한국은 조금씩 친숙해졌다. 아직 억양에 일본인 느낌이 섞여 있지만, 제법 능숙하게 한국 말을 구사한다. 6세 아들에게 어깨너머로 한국어를 배웠다고 한다. K팝 팬이기도 하다. 일본에선 소녀시대, 카라 등 여자 아이돌 노래를 즐겨 들었는데, 요즘은 BTS를 좋아한다. 치킨 같은 배달 음식에 매료됐고, 아내와 함께 옷 쇼핑하는 것도 즐긴다.

한국 선수들 중에선 올 시즌 끝으로 은퇴한 이동국(41)이 롤모델이다. 안병준은 “K리그 최강팀인 전북 현대에서 오랫동안 스트라이커로 활약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처럼 꾸준하게 활약하면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싶다”고 했다.

올 시즌으로 수원FC와의 계약이 끝난 안병준은 일본 J리그 복귀, 수원FC와 재계약을 놓고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안병준은 “남들은 내게 코리안 드림을 이룬 것 아니냐고 말하지만, 아직 부족하다”며 “지금까지 길가에 있는 흔한 풀처럼 끈질기게 버텨온 만큼 어디서 뛰든 더 열심히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주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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