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24일, 코로나 사태로 인해 한국프로야구 사상 처음으로 함성이 사라진 한국시리즈가 끝났다. 기이한 체험이었다. 상투적이지만, NC 다이노스의 우승은 여러모로 과감한 투자의 결실이었다고 하겠으나, 상대 쪽인 두산 베어스로선 애초부터 분위기 싸움에서 밀렸다.
새삼 지난 일을 곱씹자는 게 아니다. 이제는 두산의 뒤 설거지가 까다롭게 됐다는 점을 말하자는 것이다. 결과로는 두산은 많은 주축 선수들의 FA 신분 변화가 독이 됐다. 긍정적으로 작용한 게 아니라 오히려 분위기를 해쳤다는 얘기다.
KBO는 한국시리즈 직후인 11월 25일 FA 대상 선수를 일괄 발표했다. 알려져 있다시피 두산은 9명이 대상자였고, 그 가운데 7명이 권리 선언을 했다.
두산의 현재 상황은 뭉뚱그려 ‘뒤숭숭, 어수선’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미 코치 4명이 다른 구단으로 떠나갔다. FA 선수들도 너도나도 계산기를 두드리기에 여념이 없고, 저마다 ‘탈출’을 꾀하고 있다.
두산 구단이 이들과 만난다고는 하지만, ‘직접 대면 접촉’과 설득이 아닌 에이전트와의 의례적인 회동에 그쳐 진정성에 의문을 다는 이들이 많다. 돈도 돈이지만 마음이 떠난 선수들의 발길을 돌리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올해 두산을 지탱시킨 3명의 외국인 선수와의 재계약 문제도 난제다.
아주 거칠게 표현하자면, 두산은 사상 초유의 ‘난파선’ 형국을 맞고 있다. 당연하겠지만, 애가 타고 속이 뭉그러지는 것은 감독이다. 정작 김태형(53) 감독은 태연하다. 굳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그저 구단의 처분에 맡길 뿐, 그로서도 이런 문제는 어떻게 손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김태형 감독은 최근 전화를 통해 “여러 가지로 아쉬움 많이 남는 시리즈였다”고 말을 건네자, “아쉬움은 뭐, 흔히 체력 때문이라고 하지만 오히려 멘탈 부분이 더 컸다”고 시리즈 도중에 주장했던 말을 되풀이했다. 그만큼 주변 여건이 선수들을 괜스레 들뜨게 만들어 역작용을 불러일으켰다는 얘기다.
그는 “우리 구단의 우승은 과거 일이다. 어떤 선수가 제아무리 예전에 잘 쳤다고 하더라도, 그 또한 과거의 일일 뿐이다. 지금 한게임을 못 치면 욕을 먹게 마련이다”며 현재 상황을 냉정하게 짚었다.
FA 사태가 마무리되면, 두산 구단은 코칭스태프 조각부터 선수단 구성까지, 그야말로 새 판을 짜야 한다. 지난 2015년에 두산 감독으로 부임, 6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과 3차례 우승을 일궈낸 구도는 김태형 감독의 머릿속에서 지울 수밖에 없다.
타의에 의한 구조조정과 그에 따른 혼란을 김태형 감독은 그저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난감한 처지에 놓였다. 과정과 결과가 어떻게 아퀴지어지든 팀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엄청난 부담을 떠안게 된 것이다.
김태형 감독은 그와 관련, 농담처럼 “내가 부담을 안 갖는다. 부담은 구단이 가져야 한다”며 애써 담담하게 말했다. 감독이야 구단이 차려준 밥상을 처리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어찌 보면 두산 구단의 감독은 불행하다. 근년 들어 모기업의 재정난으로 해마다 알짜 선수들이 빠져나가고 있지만, 속수무책이다.
그렇다고 천하의 김태형 감독이 그저 넋 놓고 있을 리는 만무하다. 그는 시리즈를 마친 뒤 “요즘 그냥 쉬고 있다”고 했지만, 역시 2021시즌에 대비, 나름대로 이런저런 그림을 그려보고 있다.
“내년 시즌 구상을 해야 하는데, (봄철 훈련에는) 젊은 선수들을 많이 참가시켜 전체적으로 봐야 한다. 신인급들은 봤던 선수들이 거의 없어 이제부터 살펴야 한다. 어쨌든 주전이고 뭐고 모든 기회를 똑같이 주어 써볼 생각이다.”
다시 일어서야 한다. 그 게 김태형 감독의 기본 태도이자 생각이다. “우승은 과거의 일이다. 새롭게 짜야 한다. 그게 제 할 일이고, 제가 해온 일이다. 그걸 떠나서는 존재의 의미가 없다”고 그는 힘주어 말했다.
김태형 감독은 “선수가 없다? 그게 아니라, 자존심을 최대한 끌어 올려서 이길 수 있는 팀을 만들어 이기도록 해야 한다. 사실 쉽지는 않겠지만, 자존심 문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존심’을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입에 올렸다. 거꾸로 이번 시리즈 패배가 그로서도 자존심에 적잖이 상처를 입혔을 것이다.
그는 음지에서 고생한 일부 투수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홍건희 이승진 김민규와 특히 최원준을 따로 거론하며 “그들 덕분에 위기에 처해 간당간당했던 팀이 막판에 치고 올라가 한국시리즈까지 갈 수 있었다”고 되돌아봤다.
“최원준이 선발에서 이용찬 대신 버텨준 게 컸다. 거기서 계산이 안 나왔으면 힘들었을 것이다. 아시다시피 선발이 다 무너졌는데.”
두산은 새로운 고민을 안고 팀을 다시 추슬러야 한다. 김태형 감독이 은근히 우려하는 것은 기존 선수들의 연봉 재계약과 다른 팀으로 안 가는 FA 선수들의 협상이 길어지는 사태다.
“구단이 알아서 협상하고 나머지는 내가 할 일이다. 주어진 여건에서 최대한 선수들을 활용해서 자존심을 되살리겠다”는 김태형 감독의 다짐이 어쩐지 처절하게 들리는 이즈음이다.
글/ 홍윤표 OSEN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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