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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8 (수)

이슈 축구 영웅 마라도나 별세

거친 축구가 난무하던 시대, 마라도나는 이를 이겨낸 진정한 축구영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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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25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디에고 마라도나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진이 걸려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스포츠서울 김경무전문기자] 거친 축구가 난무하던 1980년대. 옐로카드와 레드카드가 인색하던 그 시절. 디에고 마라도나는 상대 수비들에게 차이고 까이고 터지고 심한 태클까지 당하며 몸이 만신창이가 되는 게 부지기수였다.

그래도 그는 오뚝이처럼 그라운드에서 벌떡 일어났고 질주를 이어갔다. 그리고 1m67의 단신이지만 누구도 감히 따를 수 없는 강력한 카리스마와 투쟁력, 신비로운 드리블, 폭발적인 질주로 경기를 지배했다. 그런 의미에서 마라도나는 20세기가 낳은 최고의 축구영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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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무대에서 수비수들에 집중 견제를 당하는 디에고 마라도나. 출처=FIFA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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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멕시코월드컵 당시 한국 축구대표팀의 허정무가 디에고 마라도나에 일격을 가하고 있다.


25일(현지시간) 1980년대 초반 ‘축구신동’으로 혜성같이 나타나 세계 축구계를 지배한 마라도나가 만 60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것이 알려지면서, 지구촌이 애도의 물결을 이루고 있다.

마라도나의 뒤를 이은 아르헨티나의 축구영웅 리오넬 메시는 “아르헨티나와 축구를 위해 매우 슬픈 날이다. 그는 갔지만 우리를 떠나지는 않았다. 디에고는 영원하기 때문이다”는 마라도나와의 이별 메시지를 SNS에 띄웠다. 마라도나가 1982~1984년 활약한 FC바르셀로나 구단은, 팀 로고에 검은 색 리본을 단 프로필 사진을 SNS에 올리며 “디에고 당신은 영원하다”고 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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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바르셀로나 시절의 마라도나. 출처=FC바르셀로나 홈페이지


브라질 출신 축구스타 호나우지뉴 가우초도 SNS를 통해 “나의 친구, 나의 아이돌, 나의 숫자 10…. 내 아이돌 편히 잠들기를 사랑해... 마법사 중의 마법사!!! 영원하게”라며 마라도나와의 작별을 아쉬워했다.

왜 마라도나는 역대 최고의 축구선수로 꼽히는가? 같은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당대 최고의 축구스타 반열에 오른 메시와는 과연 무엇이 다르고, 누가 더 위대한 선수인가? 이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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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로고에 검은 리본을 단 FC바르셀로나. 출처=FC바르셀로나



1930년대 월드컵이 시작된 이후 불세출의 축구스타들이 명멸해갔다. 팬들에게 익숙한 이름만 열거해보면, 1960대 브라질의 펠레와 포르투갈의 에우제비우, 1970년대 네덜란드의 요한 크루이프, 독일의 프란츠 베켄바우어…. 이 선수들이 위대함은 나름대로 특색이 있다. 이 중 1986년 멕시코월드컵 아르헨티나 우승의 주역 마라도나는 강력한 카리스마로 그라운드를 쥐락펴락할 줄 아는 최고의 플레이메이커였다고 할 수 있다. 거기에다 놀라운 득점력(A매치 91차례 34골)까지 갖춘 악바리였다.

마라도나는 클럽축구 무대에서도 보카 주니어스를 시작으로 FC바르셀로나, 나폴리, 세비야 등에서 활약했으며, 나폴리 시절엔 이탈리아 세리에A 두차례 우승을 이끌었다. 테크니션으로 이탈리아의 거친 축구를 극복해내며 나폴리의 전성시대의 주역이 됐다.

지구촌 축구팬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던 축구계의 거성은 그렇게 떠났지만, 그가 그라운드에서 보여준 환상적 플레이는 팬들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편히 잠드소서!(Rest in peace) kkm100@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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