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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장 돌멩이 줍던게 9년전…우승까지 해낸 NC ‘강진의 공룡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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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10일, 전남 강진에서 제9구단 NC 다이노스의 첫 공식 훈련이 막을 올렸다. ‘대한민국 프로야구의 아홉 번째 심장이 뛰기 시작합니다’란 문구가 적힌 강진베이스볼파크에서 ‘공룡 군단’이 첫 발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부푼 포부를 안은 고졸 예정 유망주들이 눈빛을 반짝였고, 대학에서 4년을 더 갈고 닦고 프로 무대에 도전장을 던진 선수들도 구슬땀을 흘렸다. 다른 팀에서 쫓겨나 NC에서 재기를 노리는 이들도 있었다. 저마다 사연을 가진 선수들은 강진에서 새로운 꿈을 꾸고 있었다.

당시 수비 코치로 함께한 이동욱 NC 감독은 “열악한 환경이었다”며 “훈련에 앞서 모두 운동장에서 돌멩이부터 주웠다. 그런 상황에서도 몇 박스씩 펑고를 치고 수비 훈련을 했다”고 말했다.

그날로부터 3334일이 흐른 2020년 11월 24일, 강진에서 돌멩이를 줍던 ‘원년 멤버’들이 주축을 이룬 NC 다이노스는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랐다. 이날 6차전에서도 박민우와 나성범, 노진혁, 강진성, 권희동 등 ‘NC 맨’들이 선발 라인업의 대세를 이뤘다. 불펜에서도 ‘강진 멤버’인 김진성과 원종현이 나섰다. 그들은 우승 직후 부둥켜안으며 감격에 젖었다.

이렇게 많은 창단 멤버가 팀을 옮기지 않고 9년이 흘러 함께 우승을 일궈내는 경우는 흔치 않은 일이다. NC의 ‘살아 있는 역사’로 불리는 이들은 NC에서 어떻게 성장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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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시즌 드래프트 당시 인터뷰에 임하는 박민우. / MBC스포츠플러스 중계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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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우

<예전엔>

휘문고 박민우는 2012시즌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9번으로 NC의 지명을 받았다. 그해 1라운드 1번은 신일고의 하주석(한화), 2번은 경남고 한현희(키움). 5번이 광주 동성고 김원중(롯데), 8번은 고려대 문승원(SK)이었다.

신생팀 NC가 가장 먼저 선택한 박민우는 2011년 이명민 타격상을 받은 유망주였다. 그해 아시아청소년선수권에서 현재 팀 동료인 김성욱, 이민호와 함께 준우승을 일궜다.

이동욱 감독은 9년 전 박민우를 “공도 제대로 못 던지던 까까머리 학생”으로 기억한다. 박민우는 프로 첫해인 2012시즌엔 좌투수에 약해 스위치 히터로 변신을 모색하기도 했다.

<지금은>

NC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KBO리그를 대표하는 교타자로 성장했다. 3000타석 이상 기준으로 현역 타율 1위(0.330)다. 통산을 따져도 삼성의 레전드 장효조(0.331)에 이어 2위. 2019년엔 2루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올 시즌도 0.345를 치면서 NC의 리드오프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번 한국시리즈에선 6차전에서 활약이 돋보였다. 0-0으로 팽팽히 맞선 4회초 2사 2·3루 위기에서 허경민의 날카로운 타구를 미끄러지면서 잡아내는 호수비로 결정적인 실점 위기를 넘겼다. 6회말엔 2사 만루에서 4-0을 만드는 2타점 적시타로 우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사회생활’에도 능해 “우리 NC 하면 게임”이라며 ‘집행검 세리머니’ 아이디어를 내서 ‘대박’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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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에서 투수로 활약할 당시 나성범. / 연세대 스포츠매거진 시스붐바


나성범

<예전엔>

연세대 시절 지옥에서라도 데려온다는 왼손 파이어볼러로 이름을 떨쳤다. ‘연세대 노예’로 불리며 1학년 때부터 4학년 때까지 매년 연고전에 등판해 34.2이닝을 던지며 2승1패, 평균자책점 2.34로 맹활약했다. 나성범의 활약에 힘입어 연세대는 전력상 열세에도 대학 최강 고려대를 맞아 4년 동안 2승1무1패로 선전했다. 고려대 학생들은 나성범을 보고 “쟤 또 나왔냐”며 낙담하곤 했다.

하지만 나성범은 아킬레스건 부상 등으로 학년이 올라갈수록 구위가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NC는 2012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전체 10번으로 나성범을 지명했다. 그는 강진 캠프에서 김경문 감독의 권유로 타자로 전향한다.

<지금은>

그 선택이 그의 운명을 바꿨다. 나성범은 2014시즌 타율 0.329, 30홈런 101타점으로 리그 최정상급 타자로 올라섰다. 매 시즌 20홈런·90타점 이상을 기록한 그는 지난해 5월 슬라이딩을 하다가 오른쪽 무릎을 심하게 다쳐 시즌을 접었다.

부상에서 돌아온 올 시즌 나성범은 타율 0.324, 34홈런 112타점으로 완벽하게 부활했다. 한국시리즈에선 타율 0.458(24타수 11안타), 6타점으로 MVP급 활약을 펼쳤다.

우승 후엔 ‘고프로’를 손에서 놓지 않고 감격의 순간을 담아내는 프로페셔널한 모습도 보였다. 더 큰 꿈을 위해 메이저리그 진출에 도전장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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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대학야구 결승전 당시 노진혁. / 스포츠 K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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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진혁

<예전엔>

광주 동성고 시절 김선빈(화순고), 서건창(광주일고)과 함께 호남 3대 유격수로 불렸지만 프로 지명을 받진 못했다. 성균관대로 진학한 그는 대학 무대에서 꽃을 피웠다. 4번 타자로 연세대 좌완 나성범으로부터 홈런을 뽑아내기도 했다. “대학 땐 성범이가 나한텐 안 됐다”고 회상하는 노진혁은 “지금은 묻지 말아달라”고 말한다. 2012 드래프트에서 NC의 특별 지명(전체 20번)을 받았다.

<지금은>

초창기 마른 체형에 안경을 껴 ‘노검사’란 별명이 붙었다. 2013시즌 117경기에 나오며 주전을 꿰차는가 했지만 손시헌이 FA로 오며 벤치로 밀려났다. 2018시즌부터 풀타임 유격수로 활약, 올 시즌엔 처음으로 20홈런을 치며 김하성(키움·30개)에 이어 유격수 홈런 2위를 기록했다.

한국시리즈에선 타율 0.150으로 부진했다. 그래도 노진혁이 있어 NC는 향후 몇 년 간은 유격수 포지션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는 시즌 도중 인터뷰에서 리그 최고 유격수를 묻자 “김하성은 ‘넘사벽’”이라며 “하성이가 없으면...”이라며 말을 흐렸다. 김하성이 미국 진출을 선언한 상황에서 내년 노진혁이 넘버원 유격수를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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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고 1학년 당시 강진성. 오른쪽은 2년 선배인 이성곤(삼성)이다. / 광주일보


강진성

<예전엔>

강광회 KBO 심판위원의 아들로 일찍부터 시선을 끌었다. 경기고 시절 우타 거포로 1학년 때부터 주전으로 활약하며 신일고 하주석과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2학년 때 이례적으로 청소년 대표에도 이름을 올린 그는 3학년이던 2011년 주춤하면서 2012 드래프트에선 4라운드 전체 33번으로 NC의 지명을 받았다.

<지금은>

좀처럼 잠재력을 입증하지 못하다 올 시즌 ‘1일 1깡’ 신드롬으로 거듭났다. 올해 초반 4할대 타율로 타격 1위를 달리며 신바람을 냈다. 5~6월에만 홈런 9개와 더불어 36타점을 올렸다.

데뷔 이후 작년까지 한 시즌에 50경기 이상 나선 적이 없어서일까. 갈수록 페이스가 떨어졌다. 최종 성적은 타율 0.309, 12홈런 70타점.

하지만 큰 무대에서 다시 ‘1일 1깡’ 모드를 선보였다. 23타수 7안타(타율 0.304)에 3타점을 치면서 우승에 힘을 보탰다. 비록 소원했던 ‘오늘의 깡(결승타를 친 선수에게 수여되는 상)’을 수상하진 못했지만, 내년을 기대하게 하는 활약이었다.

아버지 강광회 심판은 아들이 한국시리즈에 출전하면서 그라운드에 설 수 없었다. 그는 “아버지가 ‘네 덕분에 스트레스 안 받고 편하게 TV로 본다’고 하셨다. 효도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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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대 재학 시절 권희동. / NC 다이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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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동

<예전엔>

원년 멤버는 아니다. 그래도 2013 드래프트(9라운드 전체 96번)로 NC에 입단한 ‘준 창단 멤버’다. 경주고를 졸업하고 경남대에 진학해 4년 동안 타율 0.292, 출루율 0.411, 장타율 0.624를 기록하며 슬러거로 활약했다.

NC가 2군 시절 경남대와 연습 경기를 하면서 점찍어 데려왔다. 연고 지역 대학 출신이란 상징성도 있었다. 외야 수비력에 물음표가 붙어 드래프트 지명 순번은 낮았다.

<지금은>

2013시즌부터 121경기에 나가 15홈런을 때리며 눈도장을 받았다. 타율에 비해 출루율이 높은 스타일. 2017시즌 타율 0.286, 19홈런 86타점으로 커리어 하이를 찍었고, 올 시즌에도 타율 0.260, 12홈런 50타점으로 쏠쏠한 활약을 했다.

권희동은 이번 한국시리즈에서 타율 0.417로 맹활약했다. 특히 우승을 결정한 6차전에서 2루타를 2개 때리는 등 3안타 경기를 펼쳤다.

이름이 희동이라 올해 큰 역할을 했다. 지난 5월 마스코트 중 FA 최대어로 꼽혔던 둘리를 영입한 NC는 입단식 때 권희동을 불러 함께 사진을 찍게 했다. 둘리의 NC행엔 희동이의 존재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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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NC 트라이아웃에 도전할 당시 김진성. / 스포츠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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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성

<예전엔>

성남서고를 졸업한 김진성은 2004 드래프트에서 SK에 2차 6순위(전체 42순위)로 지명됐지만 2005년 입단했다. 하지만 1군 기록 없이 이듬해 방출됐다.

그는 2009년 넥센에 신고 선수로 입단했다. 3년간 노력했지만, 결국 넥센에서도 1군 기회를 잡지 못하고 2011년 웨이버 공시되며 야구 인생 두 번째 방출의 아픔을 겪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NC 트라이아웃에 지원해 합격했다. 그때 당시 테스트를 통과해 지금까지 현역에서 뛰는 선수는 김진성과 최금강, 이상호가 전부다.

<지금은>

NC에서 통산 58홀드 33세이브로 든든히 허리를 책임졌다. 2014시즌 팀의 마무리로 25세이브를 올린 그는 2015시즌부터는 중간 계투로 주로 활약했다.

올해 초 수년간 연봉 협상 과정에 쌓였던 불만이 폭발해 스프링캠프 첫날 돌연 귀국한 그는 6월 들어 1군 무대에 다시 섰다. 9~10월 28.1이닝 3실점, 평균자책점 0.95의 눈부신 호투로 NC의 선두 수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리고 한국시리즈의 영웅이 됐다. 시리즈 1~6차전에 모두 등판해 6.2이닝 무실점으로 틀어막으며 3홀드를 올렸다. 새로운 야구 인생을 열어준 NC에 최고의 보답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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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대장암을 극복하고 그라운드로 돌아온 원종현. / 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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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현

<예전엔>

군산상고 시절 차우찬(LG)과 원투 펀치를 이루며 팀을 대통령배 4강에 올렸다. 그는 2006 드래프트에서 2차 전체 11번으로 LG 유니폼을 입었다. 하지만 팔꿈치 부상으로 1군 무대에 데뷔하지 못했다.

2008년 경찰 야구단에 입단해 양의지와 호흡을 맞췄다. 무명이었던 둘은 당시 ‘어떻게 하면 야구를 잘할 수 있을까’란 고민을 나눴다고 한다. 제구력 불안과 고질적인 부상으로 2010시즌이 끝나고 결국 LG에서 방출됐다. 입단 테스트를 거쳐 2011년 NC 유니폼을 입었다.

<지금은>

NC에서 통산 67홀드 67세이브를 기록하며 뒷문을 잠갔다. 입단 후에도 좀처럼 자리를 잡지 못하던 그는 2015년 대장암 수술을 받은 뒤 이듬해 복귀해 ‘인간 승리’의 주인공이 됐다. 2016시즌부터 팀의 핵심 불펜 투수로 활약했다.

2019시즌부터 본격적으로 마무리 투수로 나서며 작년 31세이브, 올해 30세이브를 올렸다. 이번 한국시리즈엔 4경기에 나와 3.2이닝 무실점으로 2세이브를 기록했다. 6차전 9회초 2사에서 두산 최주환을 삼진으로 잡아낸 뒤 경찰 야구단 시절 동고동락했던 포수 양의지와 뜨겁게 포옹하는 장면이 NC 팬들의 심금을 울렸다.

[장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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