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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2020 미국 대선

트럼프가 기름 붓는다, 미국 대선판에 음모론 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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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이나 민주당 바이든 후보의 정권교체 둘 중 하나를 결정지을 대선을 치른 미국이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선거과정에서 보인 극심한 분열과 갈등에다가 각종 음모론까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 같은 음모론 확산에 일조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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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5일 개표상황과 관련한 입장 발표를 위해 백악관 브리핑실에 들어서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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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찍은 투표용지가 불타는 영상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급속도로 퍼졌다. 5일(현지 시각)CNN과 NBC 등 미국 언론에 따르면 이 영상은 한 남성이 투표용지가 가득 담긴 비닐봉지에 가연성 액체를 적셔 태우는 내용이다.

영상의 남성은 80장의 투표용지 모두 트럼프 대통령에게 투표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남성은 자신의 얼굴을 공개하지 않았다. 영상에는 장소가 특정될 만한 것은 없지만, 투표용지가 버지니아주 버지니아 비치시의 것이었다고 CNN은 전했다. 이 영상은 트럼프 대통령의 차남 에릭 트럼프도 공유했다. 대통령의 직계가족이 공유한만큼 지지자들은 영상이 사실이라고 받아들일 여지가 충분했다.

그러나 이 영상은 조작으로 드러났다. 버지니아 비치시는 투표용지가 가짜라고 밝혔다. 버지니아 비치시는 성명을 통해 “(영상에 등장하는 투표용지에는) 모든 공식 투표용지에 표기된 바코드가 없다”고 했다.

가짜 영상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에릭 트럼프는 해당 영상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서 삭제했지만, 이미 120만건의 조회수를 기록한 다음이었다.

애리조나에서는 난데없는 ‘트럼프 펜 음모론’이 확산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애용하는 브랜드에서 제조한 펜으로 투표를 했더니 잉크가 번져 무효처리가 됐다는 주장이 일파만파 확산되면서 급기야 민주당까지 관여하는 법정 소송으로 번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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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일 워싱턴 DC 백악관 브리핑룸에서 선거개표상황과 관련해 입장을 밝힌뒤 돌아서고있다./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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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애리조나 주민 로리 아길레라가 마리코파 카운티 당국을 상대로 투표를 다시 할 수 있게 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는데, 민주당도 ‘확인되지 않은 주장으로 개표절차가 차질을 빚게 될 수 있다’며 이 소송에 관여하겠다고 나섰다.

아길레라는 “이번 대선 투표에서 카운티 당국에서 발급해준 샤피 사(社)의 펜으로 기표를 했는데, 잉크가 뒷면으로 번졌으며, 기표용지 교체를 요구했지만 거부당해 투표권을 침해당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마리코파 카운티 당국은 “샤피 펜으로 기표를 하더라도 정상 투표를 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고, 설령 번진다고 하더라도 엉뚱한 사람으로 기표되지 않는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펜이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 문서 등에 서명할 때 즐겨쓰는 회사의 제품이라는 점이 함께 알려지면서 ‘트럼프 펜 음모론’으로 부풀려지고 있다.

이 같은 각종 음모론의 불길에 기름을 부은 당사자는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지적이다. 그는 5일 저녁(현지시각) 백악관에서 개표상황과 관련된 입장을 밝히면서 “여론조사는 나를 지지할 유권자들을 압박해 집에 머물도록 고안된 엉터리 여론조사였다” “민주당 측이 공화당 선거 관계자들의 접근을 고의적으로 막고 있다” “합법적으로 투표하면 내가 이긴다” “민주당이 선거를 훔치지 않는한 이긴다” 같은 확인되지 않은 발언을 쏟아냈다.

이미 음모론은 기성 정치권까지 집어삼키는 모양새다. 음모론을 신봉하는 극우성향 정치인이 연방 하원에 입성한 것이다. 조지아주 14선거구 연방하원의원 선거에서 공화당 소속 여성 후보인 마조리 테일러 그린(46)후보가 개표가 84% 진행된 상황에서 74.7%의 압도적인 득표율로 민주당 케빈 밴 아우스다이 후보(25.2%)를 이기고 초선 의원이 됐다.

마조리 테일러 그린은 극우 음모론 단체 ‘큐어난’(QAnon)의 주장을 신봉해온 극우 성향 정치인이다.

큐어난은 미국 민주당 중심 세력이 산업과 언론을 장악해 미국을 멸망시키려 한다는 음모론을 지지하는 사람을 통칭하는 말이다.

이들은 “미국에 거대한 아동 성매매 지하 조직이 있다. 사탄을 숭배하는 그들은 회춘을 위해 아이들의 피도 뽑아 먹는다. 이 조직을 이끄는 건 민주당과 소위 글로벌 엘리트로, 힐러리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 조지 소로스가 핵심” 등의 황당무계한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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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일(현지시각) 미 펜실베이니아주 윌크스배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선거 유세 집회에 참석한 한 남성이 극우 음모론 사이트 ‘큐어넌(QAnon)’을 지지하는 사인을 들고 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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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범죄 조직을 깨부수러 나선 외로운 영웅이 바로 도널드 트럼프이다”라는 서사로 연결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극성 지지자들을 열광시켰다. 이런 주장에 동조해온 인물이 연방 하원에 입성한 것이다.

그린은 과거 반자동 소총을 들고 극좌 성향 단체 ‘안티파’(Antifa)에 경고 메시지를 보내는 동영상을 찍었고, 또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며 민주당을 후원해온 유대인 억만장자 조지 소로스에 대해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와 협력해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았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린 후보는 트위터에 글을 올려 “오늘 밤 큰 승리를 거뒀다”며 “워싱턴DC에서 그들(민주당)과 싸울 수 있도록 해준 유권자들의 선택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대선 이후 발생하는 각종 음모론은 트럼프 대통령 측이 선거 불복을 정당화하기 위해 대중들을 선동하는 불쏘시개로도 활용되는 양상이다.

페이스북은 5일(현지 시각) 미국 민주당이 대선 승리를 ‘훔쳤다’고 주장하는 친(親)트럼프 성향의 그룹 ‘도둑질을 멈춰라(Stop the Steal)’ 페이지를 전격 삭제했다. 해당 페이지는 대선 다음날인 4일 문을 열어 이틀 만에 3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가입하는 등 페이스북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성장 속도를 보였다.

이에 ‘도둑질을 멈춰라’ 그룹 측은 “페이스북이 좌파 그룹에도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지 묻고 싶다. 차별적인 조치”라 반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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