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체육현장을 취재하다보면 반인권적 폭행사건에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 주위의 학부모와 학생이 가해 지도자를 위해 거짓 증언을 일삼을 경우다. 더 충격적인 경우도 있다. 아예 피해자가 직접 나서 가해 지도자를 두둔하는 비극적인 현실도 심심찮게 나오곤 한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체육계에선 비일비재하다. 이 모두가 무소불위 지도자의 권력에서 비롯되는 일이다. 지도자의 권력에 대한 공포,도대체 그게 뭔지 진실과 거짓을 뒤바꿀 정도로 힘이 셀까. 선수와 학부모 등 체육주체들이 부조리한 체육현장을 당당하게 고발하지 못하게 하는 환경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더이상 방치해선 곤란하다. 어쩌면 사건을 은폐하는 체육주체들의 거짓 증언은 체육개혁의 성패를 좌우할 수도 있는 열쇠인지도 모른다. 체육개혁의 수혜자가 될 사람들이 개혁의 걸림돌이 되는 일에 나선다면 이건 이율배반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내 자식이 잘되기 위해선 남의 자식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이게 바로 선수나 학부모가 가해 기도자를 위해 거짓 증언에 나서는 이유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천박하기 그지 없다. 자기 자식이 피해를 당해봐야 이게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구타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 절대권력을 지닌 가해 지도자는 사건을 덮기 위해 자신의 휘하에 있는 선수와 학부모들을 끌어들이게 돼 있다. 자칫 증거가 없다면 진위가 뒤바뀌게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지도자의 회유나 협박은 집요하다.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쓰는 그들의 공작(?)에 대부분이 넘어간다. 진실에 눈 감고 정의에 귀를 닫은 일쯤은 내 자신과 자식의 이익을 위해선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고 자위할 뿐이다.
이번에 터진 성남 탄천빙상장 구타 사건의 진행도 똑같다. 아니다 다를까,폭행을 행사한 지도자를 비호하는 학부모와 학생들의 연판장이 뒤따랐다. 그들은 “○○○코치의 성실함과 진정성에 대해 신뢰를 보이고 대단히 만족하고 있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작성한 뒤 선수와 학부모의 이름을 쓰고 사인을 첨부하기까지 했다. 탄천빙상장 구타 사건은 명백한 증언과 녹취로 가해자의 구타행위가 입증된 사건이다. 그것도 국정감사에서 사건의 실체가 드러난 만큼 진위여부에 따른 논란은 더이상 무의미해졌다. 당초 성남시나 성남시체육회 등이 조직적으로 반발하고 사건 자체가 왜곡됐다며 목소리를 냈던 게 부끄러울 만큼 증거자료는 차고 넘쳤다. 본보의 최초 보도 이후 몇몇 매체의 후속 보도로 실체가 만천하게 드러난 이 사건은 국정감사를 통해 전국민에게 전해졌지만 체육계에 만연된 통곡의 악습에 대해선 여느때처럼 침묵이 이어지고 있다.
고(故) 최숙현 선수 사건 때 들끓었던 여론을 고려하면 동일한 반인권적 구타사건이 유독 잠잠한 건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이번 사건이 체육의 정치화에 따른 실업팀의 조직적인 선거 개입과 그에 따른 정치적 입김이 작용하고 있는 듯한 게 첫번째 이유다. 두번째는 사건의 축소 은폐 조작에 선수와 학부모가 적극적으로 간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체육이 정치바람에 오염된 것도 문제지만 이번 기회에 반인권적인 사건을 은폐하는 데 가담한 체육주체들의 허위 증언에 대한 날선 제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뜻있는 전문가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사건의 축소 은폐에 도움을 준 학부모와 선수는 또다른 범죄행위에 가담하는 범법자로 간주하고 이에 상응하는 강한 제재를 내리는 게 마땅하다. 고(故) 최숙현 사건에서도 사건을 은폐하려는 체육계의 조직적인 움직임이 문제점으로 떠올랐다.
이번 탄천빙상장 구타 사건은 지도자의 비위를 허위증언으로 감싸주는 게 얼마나 무서운 범죄인지를 알려줄 절호의 기회다. 체육계는 명분과 가치에 둔감하다. 반복된 교육과 계몽에도 구태와 악습이 쉬 고쳐지지 않는 이유다. 가치와 명분보다는 이익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 체육계의 특성이라면 답은 하나다. 가해자를 두둔하고 사건을 축소 은폐 조작하는 데 도움을 준 선수와 학부모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강한 제재를 내리는 게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 정의(正義)와 선(善)은 비슷하지만 확실히 구별되는 개념이다. 선은 악을 감싸야 하지만 정의는 그렇지 않다. 확실한 응징이 정의를 관통하는 핵심이라는 데 이견의 꼬리표를 다는 사람은 없다. 가해자를 두둔하는 체육계에 만연된 통곡의 악습은 선이 아닌 정의라는 날선 칼로 다스려야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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