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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4 (목)

이슈 본능적 투혼의 스포츠, 격투기

'로드FC 10년', 묵묵히 로드FC 이끌어 온 '언성히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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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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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우충원 기자] 화려한 무대 뒤에는 언제나 고생하는 스태프들이 있다. 그들이 있기에 모든 것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안전하게 행사가 마무리된다. 각자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그들이 있기에 스타도 탄생해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다. ROAD FC의 10주년도 화려함 뒤에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 가능했다. 그동안 10주년이 되도록 ROAD FC를 위해 노력한 숨은 주역들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져봤다.

▲ 선수들을 빛나게 하는 시스템 총괄, 강상모 감독

강상모 감독은 ROAD FC 무대, 시스템을 총괄하고 있다. 메인은 조명을 담당하는 감독으로 ROAD FC 선수들이 등장하는 순간부터 경기를 치르고, 퇴장해 백스테이지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그의 손을 거쳐 화려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그가 ROAD FC와 인연을 맺은 건 첫 대회부터다. ROAD FC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모든 순간을 함께 해온 것이다.

“2010년 10월 23일 첫 대회를 한 장소가 섬유센터라는 곳인데, 후배가 조명 감독으로 있었다. 후배의 부탁으로 처음 ROAD FC와 인연을 맺었고, 이전부터 알고 지냈던 TK 엔터테인먼트의 황영호 대표님과 ROAD FC 일을 함께 하게 됐다” 강상모 감독의 말이다.

ROAD FC와 함께하기 이전까지 강상모 감독은 수많은 행사들을 치러왔지만, ROAD FC 대회를 새롭게 만드는 건 쉽지 않았다.

강상모 감독은 “해보지 않았던 대회를 모여서 시작한 것이었으니까 어려움이 많았다. 솔직히 그때만 해도 ROAD FC가 오래갈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정문홍 대표님께서 밀어붙이는 모습을 보고 ‘우리나라 최고의 격투기 단체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함께하면서 ‘나도 옆에서 할 수 있는 걸 최대한 만들어보자’는 마음을 먹었다”고 말했다.

대회를 치러오며 ROAD FC는 조명을 비롯한 시스템 전체가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다. 해외 단체의 사례를 참고하고, 연구한 끝에 나온 결과물이다.

강상모 감독은 “정문홍 대표님이 해외에 나가서 보고 온 것을 설명해주면 황영호 대표님과 함께 그림을 만들면서 계속 구조물을 업그레이드 했다. 처음에는 4각에 원형으로 시작했다가 8각에 깍두기 모양을 만들어 나름대로 그림을 만들었는데, 밋밋하다고 해서 뿔도 만들었다. 장충체육관의 경우 대형 스크린을 쓸 수 있으니까 트러스 자체를 스크린용으로 만들었다. 그 밑에 조명을 달아 장충체육관 대회는 영상 4면을 쓰고 있다. 대회장마다 현장에 맞게 세팅을 바꿔가며 진행하고 있다”며 시스템 발전에 대해 이야기 했다.

강상모 감독은 ROAD FC 해외 대회도 함께해왔다. 그러면서 중국 대회에서의 고충을 들려줬다.

“중국에 가서 고생은 고생대로 했는데, 조명의 효과를 하나도 못 봤다”며 아쉬움을 털어놓은 강상모 감독은 “중국쪽과 커뮤니케이션이 어려웠다. 처음에 중국쪽에서 된다고 했다가 나중에 ‘이거 안돼, 저거 안돼’ 이러는 게 너무 많았다. 트러스가 블루 코너, 레드 코너 각자 빛나는 느낌도 있어야 하는데 그런 느낌도 못 내서 아쉬웠다. 사실 중국 대회는 몸이 힘든 것보다 정신적으로 힘든 게 더 많았다. 언어의 장벽이 있어서 커뮤니케이션이 힘들었다. 통역이 있어도 우리가 쓰는 전문 용어를 알기 힘들어서 설명을 해도 못 알아 듣는 경우도 많았다”며 중국 대회에서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그런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ROAD FC의 화려한 무대는 선수들을 빛내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강상모 감독은 “우리나라에 단체가 계속 생기고 있지만, ROAD FC가 정상을 지키고 있어 무대 감독으로서 뿌듯하다. 다른 단체는 우리가 했던 것을 모방하고, 우리가 했던 자리에 가서 그대로 하는데 그림이 다르다. 조명도 그렇고, 구조물의 디테일이 다르다. 그런 걸 보면 뿌듯하다. 새로운 걸 도전하는 과정에서 ‘모르겠다, 안 된다’ 하고 뒤로 뺐으면 무너질 수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고비가 있을 때마다 같이 움직이는 팀이 으쌰 으쌰 해서 잘 해왔다. 음향, 조명, 영상, 구조물, 발전차까지 같이 잘 따라와 주는 동료들에게 감사하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 선수들을 멋지게 소개하는 ‘와일드 보이스’ 신용문 아나운서

화려한 조명을 받은 선수가 케이지 위로 올라오면 케이지 아나운서의 멋진 소개가 이어진다. 경기 시작 전 선수들에 대한 소개를 들은 관중들은 아나운서의 목소리 덕분에 더욱 경기에 집중한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신용문 아나운서다. ROAD FC와 1회 대회부터 함께해온 그는 현재도 ROAD FC와 함께하고 있다. 그가 ROAD FC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미디어 관련 담당자로부터 섭외 요청이 왔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섭외가 아니라 새롭게 론칭이 되는 지방의 MMA 중소 단체이며, 초창기라 여건이 많이 어려우니 한 번 무대에 서줄 수 없냐는 요청이었다. 그래서 당시에는 페이나 이런 부분과 상관없이 재능기부(?) 차원에서의 합류로 함께 하게 되었다. 그것이 기나긴 인연의 첫 단추였다”

이렇게 시작된 ROAD FC와 신용문 아나운서의 인연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처음에 ROAD FC에 대해 들었을 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말을 들어보면 이해가 된다.

신용문 아나운서는 “초창기 정문홍 전 대표님에게 ROAD FC에 대한 대략적인 포부와 계획들에 관하여 얘기를 나누었을 때는 ‘현실감각이 떨어진다’는 생각을 했었다. 오히려 단발적으로 후원 협찬사를 모아 몰빵의 개념으로 한시적인 큰 이벤트를 여는 것은 몰라도, 선수 수급부터, 대회장 대관, 스태프, 시스템과 장비 등 고정비용과 인력이 들어가는 대회는 어느 정도의 고정적인 수익이 발생해야 하는데, 당시에는 그 또한 현실적으로 불가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초기에는 ROAD FC가 이런 지속성을 가질 수 있는 단체가 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오래가지 못할 거라 예상했지만 ROAD FC는 꾸준히 대회를 개최하며 어느덧 10주년을 맞이하게 됐다. 아시아 메이저 종합격투기 단체 최초의 기록이며, 대한민국에서 불가능해 보이는 걸 가능하게 만든 기적이다.

신용문 아나운서는 “10주년은 공공의 영역이 아닌 사기업과도 같은 ROAD FC가 국내 프로 격투 스포츠 역사상 유일무이한 정점을 찍은 사례라고 생각한다. 이 역사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미약하나마 나의 존재도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개인적으로도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10년간 함께해온 신용문 아나운서는 여전히 ROAD FC와 함께 미래를 그려나가고 있다.

신용문 아나운서는 “선수들에게 파이트머니를 주고, 의료 지원을 하고, 그 밖에도 대외적으로 노출되지 않았지만 어려운 상황에 처한 선수들에게 여러 가지 지원들과 도움을 준 사실들을 알고 있고 직접 봐오기도 했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미담들이 꽤 많이 있다. 너무나도 당연하고 상식적인 일들인데, 이런 일들이 그간 격투 시장에서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부분은 비일비재하고 공공연한 비밀이다. 난 ROAD FC가 처음의 그 모습 그대로 지금도 앞으로도 이 모습만큼은 변치 않고 상식과 정도의 격투 단체가 되었으면 좋겠다. ROAD FC는 이제 내가 가벼운 마음으로 어떤 훈수나 조언, 충고를 둘 수 있는 전략이 부족하거나 맨파워가 부족한 단체가 아니다. 선수나 지도자들이 늘 감사함을 느낄 수 있는 단체가 되어 주길 심정적으로 바랄 뿐”이라며 ROAD FC에 바라는 점을 이야기 했다.

이어 “10년의 기간 동안 ROAD FC와 힘들고 어려웠지만 즐겁고 좋았던 추억들도 많이 쌓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 격투 스포츠 현실에서 절대 이룰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지속성’의 업적을 남긴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 정문홍 전 대표님께 다시 한번 그간 정말 고생하셨다고 말씀드리고 싶고, 물심양면 늘 ROAD FC의 큰 형님으로 함께 해주신 박상민 부대표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새로운 대표로 취임하신 김대환 대표는 ROAD FC가 시작되기 그 이전 K-1 시절부터 오랜 기간 알아왔지만 인성이나 실력 그 어느 부분에서도 부족함이 없는 최고의 인재라고 생각한다. 동갑이지만 참 배울 것이 많고 그 앞에서 내가 늘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몇 안 되는 사람이다. 나는 최고가 아니지만, 최고의 사람들과 함께 이 길을 걸어왔고 20대 후반부터 시작한 격투 아나운서의 기간 중에 가장 보람 있었던 기간을 꼽으라고 한다면 10년 동안의 ROAD FC였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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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패의 현장을 누구보다 가까이 마주하는 임태욱, 신승열 심판

아나운서의 선수 소개가 끝난 후에는 심판들이 경기를 진행한다. 케이지 안에 있는 선수와 심판의 행동에 따라 철저히 승리와 패배의 희비가 엇갈려 단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다.

ROAD FC의 심판팀은 팀장인 임태욱 심판과 부팀장인 신승열 심판, 원투 펀치가 이끌어 간다. 이들은 심판들의 관리부터 경기 시작 전 선수 체크, 경기 중, 경기 후까지 심판이 관계된 모든 걸 책임진다.

임태욱 심판은 “20대 중반, 어린 나이에 스피릿MC라는 단체에서 우연히 심판 생활을 하게 되었다. 몇 년간 잘 이어오던 대회가 한순간에 무너져버렸고, 시기가 대학원 졸업과 맞물리며, 약 1년 반 정도의 필리핀과 호주를 오가는 해외연수를 하게 되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체육관을 오픈하게 되었고 그 시기 즈음 ROAD FC 심판팀에 합류하게 되었다”며 ROAD FC 심판 활동의 시작을 이야기했다.

초창기 임태욱 심판은 ROAD FC에 큰 기대를 가지지 않았다. 워낙 척박한 환경이라 당연했다.

그는 “스피릿MC의 붕괴 이후 한국에서는 ‘격투기 암흑기’라 불리던 시기가 있었다. 여러 새로운 이름들이 올라오기도 했지만, 이내 소리소문없이 없어지거나 한 번, 두 번의 경기를 끝으로 사라지기도 했었다. 처음 ROAD FC의 출범 소식 역시 반가울 수밖에 없는 소식이었지만, 과연 ROAD FC가 이 메말라버린 한국 격투기 시장에서 안정적인 산업으로 뿌리내릴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사실 큰 기대감을 가지기 힘들었다”며 당시의 솔직한 생각을 전했다.

그러나 ROAD FC 꾸준히 대회를 개최하며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종합격투기 단체가 됐다. 그동안 ROAD FC의 역사를 함께해온 임태욱 심판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일까.

임태욱 심판은 “매 대회의 순간순간 그 현장의 분위기와 느낌 함성소리 심지어는 냄새까지도 기억에 남는 것 같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개인적으로 100만 불 토너먼트의 준결승, 결승 경기는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 같다. 대한민국에서 전무후무한 규모와 그 규모만큼이나 어마어마했던 각종 미디어의 관심도, 그리고 샤밀, 만수르, 권아솔 선수가 뿜어내는 엄청나게 잔인하게 느껴졌던 기운들까지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나도 그 분위기에 압도당하지 않으려 토너먼트가 이어진 몇 달 동안 습관적으로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단단한 마음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었다”고 말했다.

임태욱 심판과 함께 심판팀을 이끌어가는 신승열 심판은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대회 개최가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라 지난 매 대회들이 모두 소중했다고 생각되지만,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를 꼽으라면 ROAD FC 024 일본 대회다. MMA 시장에 있어서 일본의 도쿄는 상징성을 지닌 장소였으며, 항상 한국 선수들이 원정 경기를 하러 가던 곳이었는데, 그곳에서 한국의 MMA 대회사가 한국의 MMA 대회를 개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던 대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임태욱 심판과 신승열 심판은 아마추어 대회에서도 활약, 대한민국 종합격투기 유망주들을 지켜보고 있다.

신승열 심판은 “나도 센트럴리그를 통해 성장했기 때문에 센트럴리그에서 아마추어를 거쳐 프로선수, 그리고 챔피언까지 발전한 선수들의 경기들을 그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애정과 응원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오랫동안 진행된 센트럴리그의 존재로 인해 아마추어 선수들의 저변 확대와 전체적인 수준 향상이 이뤄졌으며 현재는 프로 무대에서의 세대교체까지 큰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임태욱 심판 역시 “아마추어 선수들이야 말로 ROAD FC를 지탱해주는 가장 강력한 팬이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챔피언들, 그리고 프로 선수들이 이 아마추어시기를 겪었다. 경험치가 조금 모자랄 수 있지만, 그들의 열정만큼은 절대 프로선수들에게 뒤지지 않는다. 여러가지 실패의 경험치들이 쌓이면서 성공의 옵션이 남게 되듯이, 때로는 실패의 경험이 성공의 경험보다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한다. 이 아마추어 리그야 말로 마음껏 실패해도 괜찮은 경험의 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건강하고 탄탄한 아마추어 시기를 잘 겪어낸 선수들이야 말로 테크닉은 물론이고 마음마저도 튼튼하게 성장하는 것 같습니다. 탄탄한 아마추어의 인프라가 있기에 대한민국 격투기의 역사가 끊이지 않고 이어질 수 있고, 프로선수들의 업적과 기록들이 유의미하게 그 가치가 보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추어 대회의 중요성에 대해 말했다.

오늘도 임태욱 심판과 신승열 심판은 어떻게 하면 더 공정하고, 정확하게 심판으로서 케이지 위에 설 수 있을지 고민하고 노력하고 있다.

임태욱 심판은 “불편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세상이 썩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격투기는 참 솔직한 것 같다. 격투기에서는 이 사람이 누구인지는 의미 없고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하다. 더 간절하고 애쓴 사람이 인정받고 대접 받을 수 있는 아마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분야 중 하나일 거라 생각한다. 이 격투기의 순수함을 지키는 것이 심판위원회의 큰 임무와도 같다고 생각하며 반드시 지키겠다. ROAD FC의 10주년을 맞아 코로나라는 예기치 못한 복병을 만나게 되었지만 10년간의 무수한 경험치들이 모여 흔들리지 않는 강인함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힘든 시기이지만 잘 견디고 보완해서 정말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인정받을 수 있는 격투기를 만들겠다. 항상 격투기를 사랑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말했다.

신승열 심판은 “앞으로도 공정한 경기 운영에 최선을 다하는 심판팀이 되도록 노력도록 하겠다. ROAD FC 임직원분들과 선수분들, 그리고 관계자분들에게 모두 감사드린다”는 인사를 남겼다.

▲ 케이지부터 경기장 내·외부 각종 시설물 담당하는 ‘로드프렌즈’ 김용호 대표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가장 주목받는 곳은 케이지다. 선수들의 승패가 엇갈리는 잔혹한 곳이며, 선수들의 안전이 보장되어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ROAD FC는 손수 케이지를 만들어 대회를 운영해오고 있다. 정보가 전혀 없는 것으로 시작, 해외 단체의 경기를 참고하고, 수백, 수천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지금의 케이지를 만들어 선수들의 경기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ROAD FC 케이지는 김용호 대표가 1회 대회부터 지금까지 담당해오고 있다. 또한 각종 내·외부 시설물과 ROAD FC 공식 용품 스토어인 ‘로드프렌즈’의 대표로서 선수 및 지도자들에게 고퀄리티의 용품을 제공하고 있다.

김용호 대표는 “첫 대회에는 케이지에 대한 정보 자체가 없었다. 그땐 일본도 케이지가 엉망이었다. 보고 따라 할 수 있는 곳이 미국 밖에 없었다. 영상을 보면서 참고하는 정도였다. 새로 만드는 것이었기에 기본적인 정보도 없어 처음에 틀을 공장에 맡겨서 수천만 원을 들여 제작했다. 공장에서 제작을 해서 가져와도 부족한 게 많았다. 일단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서 완전 강철 덩어리로 기둥 하나를 혼자 들 수 없을 정도로 무겁고 튼튼하게 제작했다. 전봇대 두께라고 보면 된다. 정문홍 전 대표가 워낙 안전에 예민해서 바닥도 신경을 많이 썼다. 현장에서 세팅을 하고, 바닥을 직접 뛰면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곳에 용접을 해서 바닥을 거의 거미줄 형태로 튼튼하게 만들었다”며 첫 대회 케이지 제작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이어 “처음에 만든 케이지를 토대로 바닥 소재도 바꾸고, 천 커버도 바꾸면서 시행 착오를 많이 거쳤다. 전세계를 다 뒤지면서 여러 가지 소재를 다 테스트했다. 예전에는 무조건 크고, 무조건 두꺼웠다. 지금은 무게 1/4, 부피 1/4 정도로 줄였는데도 튼튼하다”고 덧붙였다.

대회를 운영하는 데 있어 케이지 외에 또 다른 어려움이 많았다. 지금은 매뉴얼이 있고, 노하우가 있어 순조롭게 진행되지만 첫 대회는 노하우가 부족해 팀포스 (현 로드짐)의 모든 선수들과 직원들이 대회를 위해 함께 노력했다.

김용호 대표는 “첫 대회는 팀포스 체육관 문을 닫고 (현 로드짐) 선수, 직원들이 모두 달라붙어 짐도 같이 옮겼다. 7~10일 정도 잠을 못 잤다. 한 달간 매일 밤새도록 회의를 하면서 대회를 준비했다. 새로운 대회를 만들다 보니까 실수하지 않도록 회의하면서 시뮬레이션을 했다. 무대 만드는 건 TK 엔터테인먼트 황영호 대표님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며 첫 대회를 회상했다.

많은 노력을 기울이며 첫 대회를 준비하는 와중에 ROAD FC를 힘들게 했던 건 방송국 섭외도 있었다. 스피릿MC, 김미파이브 등 국내에 있던 대회가 사라졌고, 격투기 대회에서 안타까운 사고도 터져 이미지가 안 좋아 스포츠로 인정받지 못해 방송국 섭외 자체가 힘들었다.

김용호 대표는 “처음에 방송국 섭외하는 게 쉽지 않았다. 돈을 주고 중계를 해달라고 해도 해주지 않으려고 했다. 그 당시에 몇 개 단체가 있다가 사라졌는데, 여론도 안 좋고 이미지도 안 좋아서 다시 단체를 세우려고 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안 좋은 시선들이 많았다. 그런 것 때문에 더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더 달려들어서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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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에 대해 이야기하며 김용호 대표는 첫 해외 대회인 일본 대회를 회상했다. 일본 대회는 2015년 7월 25일 열린 대회로 무더운 날씨가 고통스러운 대회였다.

김용호 대표는 “해외 대회에 직접 케이지를 가져가는데, 일본 대회는 여름에 했다. 컨테이너에 넣어서 옮기는데 안에 있으면 5분을 못 버틸 정도로 더웠다. 그때도 모든 직원에 심판들까지 동원해서 같이 케이지를 옮기면서 했다. ROAD FC를 거쳐간 모든 사람들의 노고가 담긴 10주년이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노력해 10주년을 맞이했다. 10년 동안 함께 해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고생했다는 말은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 10bird@osen.co.kr

[사진] 로드F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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