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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8 (월)

이슈 [연재] 스포츠서울 '고진현의 창(窓)과 창(槍)'

[고진현의 창(窓)과 창(槍)]적폐가 활개치는 한국 체육의 부끄러운 민낯…최순실 사건 핵심인물이 승마 대표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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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진정 정의로운가? 평등한 기회가 주어지고 과정이 공정했다면 당연히 정의로웠을 게다. 체육은 문재인 정부의 출범에 결정적인 트리거(trigger) 역할을 했다.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의 체육농단이 국정농단으로 비화되면서 ‘촛불 시민혁명’이 촉발됐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문재인 정부를 향한 체육계의 기대는 남달랐다. 최순실과 손을 잡고 권력의 칼을 휘둘렀던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제 2차관의 ‘관치체육’은 도를 넘었고 그에 따라 체육은 헝클어질대로 헝클어졌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의 체육정책은 어떤가? 원상태로 되돌려놓기만 해도 박수를 받을 수 있었건만…. 아쉽게도 체육만 놓고 본다면 이번 정부가 역대 최악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는 것은 물론 정치에 의해 훼손된 정보가 진실로 둔갑해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하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혼돈의 한국체육’,이 같은 자조섞인 비아냥이 체육계에 난무하는 이유는 지난 정권의 체육적폐가 제대로 청산되지 않은 탓이다. 최순실의 체육농단에 부역했던 자들이 오히려 활개를 치고 체육계를 휘젓고 다닌다는 건 부끄럽기 그지없는 일이다. 교묘하게 옷을 갈아입은 그들이 체육의 중심부에 그대로 남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야 많겠지만 아마도 힘 있는 정치권과의 결탁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진실이야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정치인이 개인적 야심이나 목적을 위해 지난 정권의 부역자들과 손을 잡으면서 상식밖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체육이 정치에 오염되면 큰 일이다. 진실과 정의에 반하는 우스꽝스런 일이 도처에서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체육은 다른 분야에 견줘 화급을 다투는 일이 아닌데다 사회적 영향력 또한 그리 크지 않다고 여겨져 훼손된 정보가 진실로 둔갑하면 이를 수정하기가 쉽지 않다. 진보를 표방하는 정부는 솔직히 체육에 대해 무지하거나 무시하는 경향이 짙다. 체육과 선택적 친화력이 있는 내셔널리즘이 아마도 그들이 사회발전의 동력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계급의식을 둔감시킬 수 있다고 믿어서인 것 같다. 좌우지간 진보정권에서 체육은 대체적으로 찬밥 신세다. 그 틈을 비집고 여권내 체육 전문가라고 자처하는 정치인이 전횡을 부리면 체육은 거꾸로 갈 수밖에 없다. 과잉신념에 확정편향까지 더해진다면 가짜가 진짜의 옷을 입고 활개치는 것쯤은 우습다. 지금의 체육이 꼭 그짝이다.

부조리한 체육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는 일이 지난 주 또 터졌다. 최순실의 체육농단의 진원지였던 승마에서다. 대한승마협회(회장 조한호)는 지난주 국가대표 지도자 임용에 관한 서면 결의서를 이사들에게 발송했는데 이게 사달이 났다.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공주 승마’를 주도했던 ‘승마 3인방’ 중 한명인 박재홍 전 KRA 감독이 대표팀 종합마술 감독으로 추천됐기 때문이다.몇 몇 이사들은 “협회가 아직도 정신을 못차렸다”면서 “정권을 농락했던 부적절한 인물을 국가대표 감독으로 추천하는 일이 체육개혁을 부르짖는 문재인 정부에서 어떻게 벌어질 수 있느냐”고 성난 목소리를 드높였다.

박재홍은 아시다시피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공주 승마’에 간여한 핵심 인물이다. KRA가 부끄러운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발간한 적폐청산 백서에도 그의 부역행위가 낱낱이 적시돼 있다. 최순실 사건의 부역자가 어떻게 국가대표 감독으로 버젓이 거론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게다. 박재홍은 지난 6월 이사회에서도 경기력향상위원회 위원으로 이름을 올려놓았다가 이사회의 반대로 선임이 무산된 바 있다.

필자는 2017년 6월 19일자 칼럼에서도 ‘염치없는 승마 3인방,두고만 볼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당시 박재홍을 비롯한 ‘승마 3인방’이 역사의 단죄를 받지 못하는 현실을 질타한 기억이 있다. 그로부터 3년이 훌쩍 지난 지금에도 체육 적폐는 여전하다. 적폐가 청산되기는커녕 체육 중심부에서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는 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최근 정부와 여당의 체육실세는 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고 체육계를 향한 고강도 드라이브에 여념이 없다. 명분이 없는 개혁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우연의 일치일까. 논란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체육 적폐를 국가대표 감독으로 앉히려는 대한승마협회장은 누구나가 다 알고 있는 여당의 체육실세를 뒷배로 두고 있다. 이러한 자기모순의 극치가 개혁을 외치고 있는 한국 체육의 생생한 민낯이라면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은 개혁에는 저항만 있을 뿐이다.

편집국장 jhkoh@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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