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타항공 노조가 지난 9일 오전 전북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스타항공의 ‘진짜 오너’ 이상직 의원이 정리해고 등의 사태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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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재산은) 직장생활을 하던 20여 년 전 마련해 지금까지 거주해 온 32평 아파트가 사실상 전부다”
7개월간의 임금 체불에 이어 최근 대규모 정리해고를 시작한 이스타항공의 창업주 이상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내놓은 입장문 일부다. 사측이 체납한 고용보험료 5억원 때문에 직원들은 정부의 고용유지지원금조차 못 받았다. 직원들은 “이스타항공은 이상직 일가와 측근들의 기업”이라며, ‘진짜 오너’인 이 의원이 사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요구해 왔다. 침묵을 지키던 이 의원이 내놓은 지난 11일 내놓은 답변은 ‘남은 재산은 아파트 한 채 뿐’이란 것이었다. 그리고 이 아파트마저도 “세금을 성실히 납부하기 위해 담보로 제공한 상태”라고 했다.
올해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항공업계는 전대미문의 위기를 맞았다. 이스타항공의 경우 ‘고통 분담’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소유주·경영진이 아닌 직원들이었다. 이들은 체불임금 일부를 포기했고, 무급순환 휴직 등을 먼저 제안했다. 그럼에도 지난주에 결국 605명에 대한 정리해고가 단행됐다. 직원들은 사측이 ‘해고 회피’ 노력은커녕 노동자만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고 말한다.
특히 ‘진짜 오너’로 지목된 이상직 의원에게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편법 승계·차명 주식 의혹 등이 불거진 지 수 개월이 지났지만 그는 정작 이런 의혹들엔 입을 다물고 있다. 이스타항공 노조는 “지금까지 확인된 사실들만 놓고 봐도 7년 전 경영에서 손을 뗐고, 남은 재산도 없다는 이상직 의원의 말은 거짓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이스타항공의 ‘이상직 일가’를 둘러싼 논란들을 짚어본다.
더불어민주당 이상직 의원 | 경향신문 자료사진 |
■10대 대주주? … 딸·아들 명의의 ‘이스타홀딩스’ 실체는
이스타홀딩스는 어떤 기업일까. 2018년 감사보고서 등을 보면 이곳의 매출액은 0원이다. 그저 이스타항공 지분에 의한 이익으로 48억5000만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그나마 다른 해엔 공개된 감사보고서도 없다. 등기부등본 등 다른 서류를 보면, 직원은 이수지 단 한 명이다. ‘페이퍼 컴퍼니’ 의혹이 짙은 이유다.
| | 이스타항공 사업보고서 공시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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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타항공 사업보고서 공시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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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상반기만 해도 업계에선 이스타항공이 제주항공에 매각될 가능성이 상당한 것으로 여겨졌다. 만약 인수합병이 성사됐다면 ‘이스타홀딩스’ 지분을 100% 소유한 남매는 매각 대금으로 400억원 가량의 이익을 실현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3000만원으로 시작해 400억원을 거머쥐게 될 남매의 ‘먹튀 재테크’가 논란의 대상이 됐다. 이미 그 당시에도 직원 체불임금 규모는 200억원대였다.
코로나19 사태로 항공업계가 휘청이는 가운데 이스타항공사 측은 자구노력보다 회사 매각에만 집중했다. 그러나 한줄기 희망으로 여겨지던 매각은 무산되고 말았다. 인수·합병이 과연 적절한 타개책이었는가 하는 문제와는 별개로, 이 협상마저 어그러진 과정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체불임금 등의 책임을 미루다가 ‘노딜’ 결과가 초래됐기 때문이다.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 경영권 인수를 위한 주식매매계약(SPA)을 해제했다고 공시한 지난 7월23일 오전 서울 강서구 이스타항공 본사에 적막감이 흐르고 있다. 권도현 기자lightroad@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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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 이스타항공은 지난해 말부터 제주항공으로의 회사 매각을 추진해 왔다. 매각은 순조로운 듯 보였다. 올 3월 양사 간에 주식매매계약이 체결됐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항공업계 사정이 심각해지자, 체불임금과 유류비 등 미지급금 1000억여원을 놓고 양측이 대립하기 시작했다. 제주항공은 체불임금 등은 이스타항공 경영진이 해결할 몫이라고 주장했지만, 이스타항공은 코로나19로 인해 발생한 손실이니 계약서에 따라 제주항공이 감당해야 한다고 맞섰다. 이스타항공은 제주항공과의 주식매매계약이 체결된 직후 ‘운항 중단’(셧다운)에 나섰다. 이때부터 임금 체불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결국 ‘노딜’ 분위기가 짙어지는 가운데 지난 6월29일, 이상직 의원은 경영진을 내세워 ‘대독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딸·아들 지분을 회사에 헌납하겠다고 했다. 사재 출연 압박이 거세지자, ‘지분 헌납’ 카드를 내민 것이다. 그러나 지분 헌납은 매각이 성사됐을 때에나 의미가 있다. 지분을 사들일 상대방이 없는데 자녀→사측으로 지분을 옮기는 것으로 체불임금 등 미지급금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당시에도 노조 등에선 “현금 한푼 안 내놓는 쇼” 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결국 지난 7월 제주항공은 이스타항공 인수를 포기했다. 약 반년간 임금을 받지 못한 직원들은 양측의 갈등을 무력감 속에서 지켜봐야 했다.
이상직 의원의 보좌관 출신인 김유상 경영기획본부장이 지난 6월 연 기자회견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이날 그는 이상직 의원의 지분 헌납 성명을 대독했다. |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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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측의 책임회피 속에서 국가의 정책기금마저 노동자의 우산이 돼 주지 못했다. 정부는 올 봄 코로나19로 경영난을 겪는 기업들을 지원하기 위해 기간산업안정기금을 만들었다. 그리고 고용유지지원금 제도를 통해 휴직·휴업 수당의 60%~75%는 정부가 내 주기로 했다. 그러나 고용유지지원금은 사측이 고용보험료 5억원을 체납해 받을 수 없었다. 기간산업안정기금의 경우엔 정부가 제주항공과의 합병이 성사되면 그때 지원하기로 한 터였다. 인수 계약이 무산되면서 결국 한푼도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됐다.
■체납 보험료 5억원만 내면 숨통 트이는데…
이스타항공이 당장 고용보험료 체납액만 납부해도 정부의 고용유지지원금으로 직원들의 숨통을 열어줄 수 있다. 다만 이 경우에도 휴직·휴업 수당의 25%~40%는 지급할 의지가 있어야,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급한 불을 끌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이스타항공을 소유·경영해 온 이상직 일가는 고통을 감내해 온 노동자들의 바람과는 반대로 움직였다. 이스타항공의 대주주이자, 상무로서 경영도 맡아 온 이수지는 지난 9월 등기이사에서 사임했다. 3년 전 ‘초고속’으로 꿰찬 상무 자리도 지난 7월 슬그머니 내려놓은 상태다. 이수지 전 상무는 그간 이스타항공에서 연봉 1억원씩을 타 갔다.
이상직 의원의 딸인 이수지 전 이스타항공 상무. |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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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이수지 전 상무를 제외해도, 업계에선 이스타항공의 경영진을 사실상 ‘이상직 사람들’로 본다. 최종구 대표는 이상직 의원의 최측근으로, 이 의원이 한때 경영했던 KIC그룹에서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영기획본부장인 김유상 전무는 이 의원의 보좌관 출신이다.
노조에서는 이상직 의원 본인 역시 최근까지 경영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본다. 2007년 이스타항공을 설립한 이 의원은 표면적으로는 2012년까지 회장을 지냈다. 그러나 이후엔 자신의 형을 회장으로 내세웠고 그 자리를 현 대표가 이어받았다.
이 의원은 19대 대선이 치러진 2017년엔 문재인 대통령의 선거캠프에서 직능본부 수석부본부장을 맡은 데 이어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사장으로 임명됐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이상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지난 6월 전북도의회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앞으로 의정 활동에 관해 설명하는 모습. |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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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직은 정말 재산 없나
노동자들로부터 ‘진짜 오너’로 지목된 이상직 의원은 자신의 말대로 정말 가처분 재산이 없을까. 노조는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딸과 아들이 세운 ‘이스타홀딩스’는 설립 2개월 만에 이스타항공 주식을 무더기로 사들여 최대주주가 됐는데, 노조는 이 과정에 최소 100억원이 소요됐을 것으로 본다. 자본금이 3000만원이었던 남매의 기업은 100억원을 어떻게 융통할 수 있었을까. 이와 관련한 논란이 불거지자 이스타항공은 “사모펀드로부터 80억원을 빌렸다”고 해명했다. 노조는 “차입 과정이 정상적이라고 볼 수 없다”면서 이 의원을 향해 “80억원은 빌릴 수 있으면서, 보험료 5억원은 낼 돈이 없느냐”고 묻고 있다.
| 이스타항공 사업보고서 공시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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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 이상직 의원은 차명주식 논란에도 휩싸인 상태다. 현재 이스타항공의 2대 주주는 ‘비디인터내셔널’이다. 비디인터내셔널의 대표는 이상직 의원의 형 이경일씨. 등기부등본상 주소는 강서구의 양서빌딩 4층이다. 이 건물은 이스타항공의 본사가 있는 곳이다.
지난 6월29일 JTBC는 이 건물 4층에 찾아가 봤지만 비디인터내셔널의 사무실은 없었다면서 이경일씨와의 전화 인터뷰 내용을 공개했다. 이경일씨는 비디인터내셔널 관련 질문에 “제가 지금 어떻게 돼 있는지 잘 모르겠다. (중략) 지금 뭐 관여를 않다 보니까 전혀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본인이 대표로 있는 회사에 대해서도, 2대 주주인 점에 대해서도 답변을 회피했다.
비디인터내셔널 지분은 이 의원이 약속한 ‘헌납’ 대상도 아니다. 만약 사측이 비공개로 추진 중인 재매각이 타결될 경우 어찌됐든 ‘이상직 일가’는 비디인터내셔널을 통해 수십억의 매각대금을 챙길 수 있다.
노조는 또 이상직 의원이 과거 형 이경일씨를 내세워 사익을 챙긴 전례도 함께 지적하고 있다. 이경일씨는 이상직 의원이 경영했던 KIC 계열사의 대표를 맡아 일하다가 횡령·배임죄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당시 판결문엔 재판부가 이렇게 밝힌 대목이 나온다. “피고인이 이 사건 횡령·배임 범행으로 인하여 직접적으로 얻은 이익은 거의 없고 대부분의 이익은 피고인의 동생인 이상직이 취득한 것으로 보이는 점….” 횡령을 통한 이익은 동생 이상직 의원이 누렸을 것으로 보이는 점을 이경일씨 선고 형량에 참작했다는 얘기다.
이상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1대 총선을 앞두고 출간한 책 <공정>의 표지. 그는 이 책에서 ‘공정경제’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 포털 ‘책’ 섹션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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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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