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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일제의 잔혹사… 징용 한국인 5600명 매장·화장 기록 첫 인수 [오래 전 ‘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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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일제의 잔혹사… 징용 한국인 5600명 매장·화장 기록 첫 인수 [오래 전 ‘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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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부터 2010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일본 나가사키 현 하시마 전경. | 연합뉴스

일본 나가사키 현 하시마 전경. | 연합뉴스


■2010년 8월27일 또 다른 일제의 잔혹사… 징용 한국인 5600명 매장·화장 기록 첫 인수

일제강점기 당시 한국인 강제 노역의 현장인 하시마(端島·일명 ‘군함도’) 탄광 등 메이지시대 산업유산 23곳이 2015년 7월 독일 본 월드컨퍼런스센터에서 개최된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의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최종 등재됐습니다. 당시 일본은 징용 피해자를 기억하는 전시시설을 마련하겠다고 국제사회에 약속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지난 6월 도쿄 신주쿠 소재 총무성 제2청사 별관에 전시시설인 ‘산업유산정보센터’의 문을 열었습니다.

1078㎡ 규모로 조성된 센터에는 하시마 탄광, 나가사키(長崎) 조선소 등 조선인 강제노역 시설 7곳을 포함한 메이지시대 산업유산 23곳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약속과는 달리 센터에는 메이지시대 산업화 성과를 미화하는 내용 위주로 전시했고, 조선인 코너는 강제 동원과 조선인에 대한 차별 대우를 부인하는 내용 위주로 꾸며져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일제 강점기 메이지 산업유산 중 군함도를 비롯해 야하타(八幡) 제철소, 나가사키(長崎) 조선소, 다카시마(高島)·미이케(三池) 탄광 등에는 조선인 3만3400명이 강제 동원됐습니다. 특히 하시마에서는 1943∼1945년 500∼800명의 한국인이 강제 노역을 했고, 122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0년 전 이날 경향신문은 ‘또 다른 일제의 잔혹사… 징용 한국인 5600명 매장·화장 기록 첫 인수’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습니다. 일본에 강제 동원돼 사망한 조선인들의 대규모 기록이 확인된 것입니다. 당시 기사를 통해 자세히 들여다봅니다.


2010년 8월27일 경향신문 2면 캡쳐.

2010년 8월27일 경향신문 2면 캡쳐.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강제동원돼 탄광·공장 등지에서 일하다 사망한 조선인들의 대규모 기록이 확인됐습니다. 지금까지 관련 기록이 일부 공개된 적은 있지만 일본 정부가 자국 전역의 일제 조사를 거쳐 공식적으로 전달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는 일본 정부로부터 강제동원 사망자 5600명의 ‘매화장인허가증’(매장·화장 신고서) 기록 사본을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매화장인허가증은 노무동원자 등이 사망할 경우 소속 탄광·공장 등의 관계자가 시신을 매장·화장했다고 해당 지방자치단체에 신고한 문서입니다. 이 문서에는 사망자의 이름·본적·생년월일과 소속 작업장, 사망 원인과 일시, 매·화장 일시 및 장소 등이 기록돼 있습니다.


연구자들은 강제징용 노무자가 70만~100만명이며 현지에서 사망한 이들의 유골도 1만기 내외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강제징용 사망자로 추정되는 2643구의 유골을 확인했다고 밝혀왔지만, 구체적 신상과 징용장소가 담긴 기록을 제공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본 기업들도 그동안 강제징용 실태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도쿄 신주쿠 소재 총무성 제2청사 별관에 마련된 ‘산업유산정보센터’의 내부 모습. | 연합뉴스

도쿄 신주쿠 소재 총무성 제2청사 별관에 마련된 ‘산업유산정보센터’의 내부 모습. | 연합뉴스


일본 정부의 이같은 조치는 나오토 총리가 한·일 강제병합 100년에 즈음해 담화를 발표하면서 강제징용자 유골 반환 등을 언급한 데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위원회는 2006년 한·일 협의 이후 지속적으로 자료 공개를 요구해 왔는데요.

일본 정부는 자료를 전달하면서 ‘모든 기록을 제공한다’고 선을 그어 더 이상의 조사는 없을 것이라는 태도를 보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위원회 측은 “자료보존연한인 20년을 넘어 폐기됐을 가능성이 크지만 일본 정부가 앞으로도 강제동원 피해 기록물 조사에 계속 나서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번 문서가 공개됨에 따라 사망자 가족 확인 및 위로금 지급, 유골 확인 등이 가능하게 됐지만 관련 인력·예산은 부족한 상황입니다.

당시 위원회 관계자는 “일본 정부의 담당자는 한 명도 없던 데서 몇 해 사이 4명 이상으로 늘어난 반면, 우리 대응팀은 5명에서 1명으로 줄었다”며 “유골조사 예산도 전액 삭감돼 이번 자료를 근거로 현지조사를 실시하거나 유족을 찾는 데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김동성 기자 esta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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