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 누구요.' 허옇게 변해버린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머리카락 색에 대한 온라인 댓글이었다. 지난달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이 지사의 대법원 상고심이 전국 생중계되면서 "왜 갑자기 늙었느냐"는 이들도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염색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던 이 지사의 말에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을 따라 하는 것이냐"는 반응도 있었다. 반면 "연륜 있어 보인다" "부드러운 학자풍이다"고 긍정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관심도 잠시. 이 지사의 백발은 자연스레 받아들여지는 모습이다.
같은 은발도 여성 정치인이었으면 어땠을까. 강경화 장관이 등장했을 때를 떠올려보자. 염색을 안 하는 이유가 온갖 매체를 장식했고, 머리카락 색을 두고 성희롱 논란까지 퍼질 정도였다. 국내에서만 유독 두드러진 일도 아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교수이자 고전학자인 메리 비어드는 지난 2013년 BBC 방송 출연 뒤 긴 백발 머리스타일과 관련해 각종 폭언을 감내해야 했다.
비어드 사건이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면서 영국 가디언과 캐나다 글로브앤드 메일 등은 "백발 머리 여성은 과거 '마녀'를 표현하거나 미친 여자, 혹은 가난하고 추한 노파를 표현할 때 주로 이용됐다"면서 "은발의 할리우드 남성 배우들이 '실버폭스(은여우·섹시한 느낌이라는 뜻)'라는 애칭을 가졌던 것과 상반된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은발 신사 VS 백발 마녀'로 압축된다.
/20세기폭스 |
연령차별주의(Ageism)가 사회 문제시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모토처럼 퍼지면서 이제 흰머리는 특히 여성에게 파워슈트 못지않은 '갑옷'이 되고 있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카리스마 리더 미란다(메릴 스트리프)의 백발을 보라〈사진〉.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 총재와 테리사 메이 전 영국 총리 등 은발의 여성 권력자가 세계무대를 주름잡았고, 20대 팝스타 빌리 아일리시는 탈색으로 흰 머리를 따라 하고 있다.
해외에선 흰 머리와 검은 머리가 섞인 반백 스타일을 '소금과 후추(salt and pepper) 헤어'라고 부른다. 식탁 위 마치 '한 쌍'처럼 자리하는 향신료이니, 제대로 된 '인생 맛'을 위해 빠질 수 없는 과정을 은유하는 듯하다. 그래도 '짠내'는 되도록 늦게 맛보면 좋을 듯하다.
[최보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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