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 출처|영화스틸 |
[스포츠서울 박효실기자] 할리우드 고전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57)’에서 멜라니 역을 통해 국내에서도 높은 인지도를 갖고 있는 배우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가 26일(현지시간) 하늘의 별이 됐다. 향년 104세.
미국 영화산업의 태동기였던 1930년대를 주름잡은 드 하빌랜드는 ‘할리우드 황금기’를 열었던 은막의 스타들 중 현존하는 최고령 배우였다.
드 하빌랜드의 홍보 담당자인 리사 골드버그는 드 하빌랜드가 프랑스 파리의 자택에서 평화롭게 자연사했다고 밝혔다. 드 하빌랜드는 영국과 미국, 프랑스 시민권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1950년대 초반 이후 파리에서 거주해왔다.
그는 1916년 일본 도쿄에서 영국인 부모 아래서 태어났다. 생후 3살 때 부모는 이혼했고, 드 하빌랜드는 전직 배우이기도 한 어머니 릴리안 폰테인과 함께 미국 캘리포니아주로 이주했다. 어머니의 성을 따른 동생 조앤 폰테인(2013년 작고)도 배우의 길을 걸었다.
드 하빌랜드는 1935년 막스 라인하르트의 눈에 띄어 그가 제작한 영화 ‘한여름 밤의 꿈’으로 영화계에 데뷔했다. 4년 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멜라니 해밀턴 윌크스 역으로 출연해 이름을 알렸다.
마거릿 미첼의 장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격동하던 시대 속의 주인공들을 파란만장하게 그려내며 큰 인기를 끌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거야” 등 수많은 명대사를 남겼다.
비비언 리가 연기한 스칼렛 오하라가 폭풍같은 성격을 지녔다면 멜라니는 지고지순한 여인상을 대표하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후 드 하빌랜드는 ‘캡틴 블러드’(1935), ‘로빈 후드의 모험’(1938) 등 숱한 영화에 출연했고, ‘그들에겐 각자의 몫이 있다’(To Each His Own)와 ‘사랑아 나는 통곡한다’(The Heiress)로 1946년과 1949년 각각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의 영예를 안았다.
2008년에는 미국 정부로부터 국가예술 훈장을, 2010년에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최고 영예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각각 받았다.
드 하빌랜드는 거대 할리우드 제작사를 상대로 반기를 들기도 했다. 1943년 워너 브라더스가 계약 기간이 종료된 이후에도 자신을 계속 묶어두려 하자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이 판결은 ‘드 하빌랜드의 법’으로 불리기도 했다.
드 하빌랜드는 서른 살이던 1946년 소설가 마커스 굿리치와 결혼했으나 7년만에 이혼했고, 이후 1955년 프랑스 기자와 재혼했지만 24년만인 1979년 이혼했다.
이후 그는 프랑스에서 생활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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