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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100년만 최악 대홍수 신음···지도자들 현장에도 안보인다

중앙일보 유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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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100년만 최악 대홍수 신음···지도자들 현장에도 안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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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여름, 100년 만의 대홍수 당시
주룽지 총리, 반소매차림 비 맞으며 “캉훙”
장쩌민 주석, “이름에 물 많아 홍수” 자책
올해 수재민 3873만 생겼지만,
수재 현장 찾은 지도자 없어
장강 물 불어나는 7월말~8월초 고비
중국이 20세기 이후 현대사 중 네 번째라는 대홍수에 신음하고 있다. 많은 중국인이 “경자년(庚子年)은 참으로 다재다난(多灾多難)하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연초 전대미문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터져 아직도 진행 중이다.

주룽지 중국 총리가 1998년 여름의 대홍수 때 장시성 지우장의 수재 현장을 찾아 홍수와 싸워 이기자는 ’캉훙(抗洪)“을 외치고 있다. 주 총리가 장강에 흩뿌린 눈물이 국난 극복의 원동력이 됐다는 평가다. [중국 바이두 캡처]

주룽지 중국 총리가 1998년 여름의 대홍수 때 장시성 지우장의 수재 현장을 찾아 홍수와 싸워 이기자는 ’캉훙(抗洪)“을 외치고 있다. 주 총리가 장강에 흩뿌린 눈물이 국난 극복의 원동력이 됐다는 평가다. [중국 바이두 캡처]



한데 6월 들어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장강(長江) 중심의 중국 중남부 지역을 특대형 홍수가 강타하고 있다. 이제까지 폭우 경보를 발동한 날만 40일이 넘는다. 지난달 이후 장강 유역엔 평균 403mm의 비가 쏟아져 1961년 이래 최다 강우량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433개의 하천이 범람하며 27개 성에 걸쳐 3873만 명의 수재민을 냈다. 사망자는 141명, 가옥 붕괴 2만 9000채, 직접 피해액은 861억 6000만 위안(약 14조 8315억원)에 달한다.

중국 현대사의 첫 번째 홍수는 1931년 2500만 수재민에 2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중국 안후이성을 강타하고 있는 폭우로 가옥이 침수되자 시민들이 집에서 쓸만한 물건을 골라 옮기는 등 고달픈 삶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중국 중신망 캡처]

중국 안후이성을 강타하고 있는 폭우로 가옥이 침수되자 시민들이 집에서 쓸만한 물건을 골라 옮기는 등 고달픈 삶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중국 중신망 캡처]



두 번째는 1954년에 발생해 수재민 1800만 명과 사망자 3만 명을 냈다. 세 번째는 1998년으로, 1500만 수재민에 3000여 사망자가 발생했다. 올해 수재민은 역대 가장 많다. 그러나 사망자는 적은 편이다.

그래서인가. 올해 대홍수를 맞아선 1998년 중국 장강 유역에 메아리쳤던 중국 지도자의 “캉훙(抗洪, 홍수를 이기자)”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22년 전 중국엔 100년 만의 대홍수가 닥쳤다. 제방이 무너지는 등 장강의 범람이 중국을 집어삼킬 기세였다.


주룽지 중국 총리가 1998년 여름의 대홍수 때 사람의 몸으로 제방 역할을 하는 인간사슬을 구축해 홍수를 막은 중국 인민해방군과 감격의 포옹을 하고 있다. [중국 바이두 캡처]

주룽지 중국 총리가 1998년 여름의 대홍수 때 사람의 몸으로 제방 역할을 하는 인간사슬을 구축해 홍수를 막은 중국 인민해방군과 감격의 포옹을 하고 있다. [중국 바이두 캡처]



그해 여름 중순 주룽지(朱鎔基) 총리는 수해 현장으로 달려갔다. 물마루가 넘실대는 장시(江西)성 지우장(九江)의 제방에 선 그는 비를 맞아 후줄근한 반소매 차림으로 “캉훙”을 외쳤다. 홍수와 싸워 이기자는 절규였다.

이에 인간사슬을 만들어 홍수를 막는 제방 역할을 하던 중국 장병과 인민이 따라서 “캉훙”을 합창하기 시작했다. 지도자와 국민이 하나가 된 것이다. 주룽지 총리가 캉훙을 외치며 장강에 흩뿌린 눈물은 국난 극복의 원동력이 됐다.

1998년 여름 대홍수가 닥치자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이 후베이성 우한의 수재 현장을 찾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넘실대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다. [중국 바이두 캡처]

1998년 여름 대홍수가 닥치자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이 후베이성 우한의 수재 현장을 찾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넘실대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다. [중국 바이두 캡처]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은 강(江)과 못(澤) 등 내 이름에 물(水)이 많아 홍수가 난 게 아니냐며 자신을 탓했다. 그런 걱정 어린 눈으로 홍수 상황을 살피는 모습과 마이크를 들고 “캉훙”을 외치는 모습에 중국 인민은 새로이 용기를 얻어 홍수와 싸워 이겼다.


한데 이번 대홍수는 사망자가 적어서인지, 아니면 코로나라는 엄청난 재앙을 겪은 뒤라 그런지 중국 지도부로부터 그다지 큰 주목을 받지 못하는 모양새다. 코로나 사태가 불거진 1월 말부터 5월 중순까지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무려 14차례나 열렸다.

1998년 여름의 중국 대홍수 당시 장쩌민 국가주석이 마이크를 들고 홍수와 싸워 이기자는 ’캉훙(抗洪)“을 외치고 있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사람의 몸으로 제방 역할을 하는 인간사슬을 구축해 홍수와 싸우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중국 바이두 캡처]

1998년 여름의 중국 대홍수 당시 장쩌민 국가주석이 마이크를 들고 홍수와 싸워 이기자는 ’캉훙(抗洪)“을 외치고 있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사람의 몸으로 제방 역할을 하는 인간사슬을 구축해 홍수와 싸우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중국 바이두 캡처]



그러나 올해 대홍수와 관련해선 단 한 차례만 열렸다. 중국 언론은 중국의 국력이 신장해 이 정도 홍수는 별문제가 아니라는 투의 보도에 열을 올린다. 그러나 민간에선 세계 최대 댐인 싼샤(三峽)댐의 변형과 붕괴 등 루머가 나돈다.

중국 당국은 “싼샤댐은 만년에 한 번 찾아올 특대형 홍수를 겨냥해 건설한 것으로 끄떡없다”고 자신한다. 그러나 초당 6만1000㎡가 유입되며 최고 수위까지 11m만 남겨 놓자 민간의 불안은 계속 커진다.


중국 광시장족자치구의 류저우에 위치한 한 가옥이 지난 6월 10일 불과 3초만에 불어난 홍수에 밀려 폭삭 주저앉고 있다. [중국 BTV 캡처]

중국 광시장족자치구의 류저우에 위치한 한 가옥이 지난 6월 10일 불과 3초만에 불어난 홍수에 밀려 폭삭 주저앉고 있다. [중국 BTV 캡처]



전문가들은 ‘치샤빠상(七下八上)’이 관건이라고 말한다. 장강의 물이 계속 불어나는 7월 하순과 8월 상순까지는 안심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일각에선 “올해가 경자년 아니냐”고 말한다. ‘재해의 해’인 경자년이 이제 겨우 절반 정도 지났으니 앞으로 또 무슨 일이 닥칠 줄 어떻게 알겠느냐는 거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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