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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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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에 불고 있는 `BLM의 바람` [김재호의 페이오프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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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닷컴 MK스포츠(美 세인트루이스) 김재호 특파원

지난 5월말 미네소타주에서 벌어진 흑인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 사건은 미국 사회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공포속에서도 주요 도시에서 항의 시위가 일어났다. 잊을만하면 다시 벌어지는 경찰 진압에 의한 흑인 사망사건은 다시 한 번 미국 사회의 '아픈 구석'을 건드렸다.

인종 차별에 항의하는 목소리는 스포츠로도 이어졌다. 지난 2016년 8월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쿼터백으로 뛰며 '국가 저항 운동'을 처음 시작했던 콜린 캐퍼닉이 재평가받기 시작했다.

NBA는 7월말 시즌이 재개됐을 때 선수들의 유니폼에 '블랙 라이브스 매러(Black Lives Matter, 흑인의 목숨은 소중하다)' 등의 문구를 새길 예정이다. 지난 9일(한국시간) 시즌을 재개한 MLS도 올랜도시티SC와 인터 마이애미CF의 개막전을 앞두고 흑인 MLS 선수들이 모여 인종 차별에 항의하는 퍼포먼스를 가졌다.

메이저리그는 어떨까? 그동안 메이저리그는 인종 차별 문제에 대한 '무풍지대'에 가까웠다. 선수구성에서 흑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다른 종목에 비해 낮은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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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랜드 포수 브루스 맥스웰은 메이저리거중 유일하게 국가 연주 시간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그는 혼자였다. 사진=ⓒAFPBBNews = News1


노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7년 9월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신인 선수 브루스 맥스웰이 경기전 국가 연주 시간에 무릎을 꿇으며 이같은 움직임에 동참했다. 그러나 큰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찻잔 속의 돌풍'에 끝났다.

"그때 누구도 브루스를 지지하지 않았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우완 선발 잭 플레어티는 9일 훈련이 끝난 뒤 취재진과 화상 인터뷰를 가진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가 특별한 일을 해냈고, 얼마나 불운했는지가 드러났다. 우리는 그를 지지해야했다. 지금은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의 말대로 이번에는 분위기가 다르다. 신시내티 레즈의 조이 보토를 비롯한 영향력 있는 선수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지역 언론에 기고한 글을 통해 "인종 차별에 침묵하지 않겠다"고 밝혔던 그는 '블랙 라이브스 매러'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타격 훈련을 하기도 했다.

콜로라도 로키스의 외야수 이안 데스몬드는 2020시즌 참가 포기를 밝히면서 "지금 야구계는 노사 분규를 겪고 있고 필드에는 개인주의가 만연하다. 클럽하우스에는 인종차별, 성차별, 동성애 혐오적인 농담이 나오고 있다. 흑인 단장은 한 명, 흑인 감독은 단 두 명, 흑인 선수는 8% 미만이다. 구단주 중에는 흑인이 한 명도 없다"며 리그의 현실을 꼬집었다.

배리 라킨, 마이크 슈미트 등 MVP 출신 은퇴 선수들은 한목소리로 인종차별 이력이 있었던 케네소우 마운틴 랜디스 전 커미셔너의 이름과 얼굴을 MVP 상패에서 지워야한다고 주장했다. 인디언 부족 비하 논란에 휘말렸던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는 구단 명칭 변경을 검토중이다.

그동안 소셜 미디어를 통해 사회 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드러냈던 플레어티도 이같은 행렬에 동참했다. 플로이드가 죽어가는 장면을 담은 비디오를 충격속에 지켜봤다고 밝힌 그는 "우리에게는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자리가 있고,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만들고 싶은 변화를 위해 뭐든 시도할 수 있다. 모두가 함께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보기 좋았다"며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그는 이번 시즌 동안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국가 연주 시간에 무릎을 꿇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를 묻는 질문에 "당연하다"고 말했다. "스포츠가 돌아오는 것이 사회 문제에 대한 방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스포츠를 대화가 이어가는데 이용할 수 있다고 본다"고 힘주어 말했다.

메이저리거들의 이같은 관심은 미국에서 야구가 인종 차별 문제에 대한 '무관심지역'으로 전락한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고 있다.

야구가 흑인들에게 외면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종목 자체의 특성과 프로 시스템의 문제를 들수가 있다. 야구를 하기 위해서는 다른 종목에 비해 상대적으로 돈이 많이 든다. 준비해야 할 장비가 많기 때문이다.

반면에 큰돈을 벌기 어렵다. 풋볼이나 농구는 대학 무대에서 활약하면 드래프트에 선발돼 바로 프로 무대를 누비고 큰 돈을 벌 수 있다. 야구는 다르다. 대학교에서 무보수로 뛰며 3~4학년까지 기다려야 프로 지명을 받을 수 있고, 프로에 가서도 최소 2~3년은 마이너리그 생활을 해야 메이저리그 무대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드래프트에서 상위 라운드에 지명돼 수백만 달러의 계약금을 받지 않는 이상 바로 큰 돈을 만지기 힘들다. 마이너리그에 대한 경제적 지원도 너무 취약하다.

이런 이유로 대체로 집안 형편이 좋지 못한 흑인 운동선수들은 자신의 진로로 풋볼이나 농구를 택한다. MLB와 NFL 드래프트에서 모두 1라운드 지명을 받고도 NFL을 택한 카일러 머리가 대표적인 사례다.

야구를 택하는 흑인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의보다는 주변 상황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결정하기도 한다. 2017년 NC다이노스에서 뛰었던 재비어 스크럭스는 "고등학교 시절 농구와 풋볼을 같이했는데 풋볼에서는 남들이 나보다 덩치가 컸고, 농구에서는 나보다 다들 키가 컸다"며 야구를 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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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루이스 선발 플레어티는 2020시즌 국가 연주 시간에 무릎을 꿇는 메이저리거가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사진=ⓒAFPBBNews = News1


자연스럽게 선수들의 목소리는 야구를 더 '접근하기 쉬운 스포츠'로 만들어야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데스몬드는 "야구가 형편이 괜찮은 집안 아이들의 전유물이 아닌 모든 아이들이 접할 수 있는 운동으로 바꾸는 것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플레어티도 "어린이들이 보다 접근하기 좋은 스포츠가 돼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미국 학교 야구 시스템에서 프로 진출을 노리는 선수들이 참가하는 트래블팀 시스템에 대해 언급했다. "야구를 하기 위해요구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팀에서 운영비용으로 요구하는 돈도 말이 안 된다"며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목소리들이 어떤 행동, 어떤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전과는 뭔가 분위기가 다르다는 것이다. 메이저리그는 미국 프로스포츠에서 가장 먼저 인종차별의 벽을 무너뜨린 종목이다. 최소한 그 사실이 부끄럽지 않은 리그가 되어야 할 것이다.

페이오프피치(payoff pitch)는 투수가 3볼 2스트라이크 풀카운트에서 던지는 공을 말한다. 번역하자면 ’결정구’ 정도 되겠다. 이 공은 묵직한 직구가 될 수도 있고, 때로는 예리한 변화구가 될 수도 있다. 이 칼럼은 그런 글이다. greatnemo@mae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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