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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문특파원의 차이나페이지] <55> ‘六保’로 고용 등 민생안정에, ‘兩新一重’로 5G 등 신인프라에 각 방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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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놀이’로 본 中 올해 사업계획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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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이 사망한 후 사인방 및 마오 후계세력을 척결하고 이른바 ‘개혁개방’을 시작한 덩샤오핑은 여전히 두 개의 전선에서 적과 상대해야 했다. 한편에서는 개혁개방은 절대로 안된다는 공산당내 보수파들이 있었고 다른 쪽에서는 개혁개방 속도가 느리다는 자유진영이 부각됐다. 덩샤오핑이 이에 대해 내놓은 구호가 ‘일개중심, 양개기본점(一個中心, 兩個基本点·1개의 중심과 2개의 기본점)’ 이론이다. 1987년 중국 공산당 13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공식적으로 채택됐으며 지금까지 중공의 중국지배에 대한 핵심 방침이다.

중국인이 아닌 외국인에게 의미적으로 ‘중심’과 ‘기본점’이 어떻게 다른지를 이해하기 쉽지 않다. 덩의 정의에 따르면 여기서 1개의 중심은 ‘경제 건설’이고 2개의 기본점은 ‘개혁개방’과 ‘4항 기본원칙’이다. 자꾸 반복되는 숫자가 새로운 인형이 계속해서 나오는 러시아 ‘마트료시카’를 연상시키기도 하다. 추가해서 4항 기본원칙은 ‘사회주의의 길’ ‘프롤레타리아 독재’ ‘공산당 영도’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마오쩌둥 사상’이다. 중국 측 주장에 따르면 경제건설을 목적으로 하고 이를 위해 개혁개방과 4항 기본원칙이라는 원칙을 지킨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중심·기본점 이론의 핵심은 결국 ‘공산당 영도’라고 본다. 경제분야에서는 이른바 ‘개혁개방’을 일부 단행하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공산당 독재를 유지하겠다는 것으로 당내·외의 반대파의 불만을 틀어막는데 성공한다. 시장경제를 도입했지만 공산당 영도가 있으니 사회주의라는 논법도 주장됐다.

이런 식으로 숫자가 들어간 단어는 중국 역사에서 부지기수로 많다. 이는 중국어라는 언어의 특징 때문이다. 한자로 표현하기 어려운 어떤 상황을 숫자에 대입하면서 이를 상징화한 것이다. 중국어에 사자성어가 많은 것과도 유사한 방식이다. 이런 ‘숫자놀이’는 특히 중국이 공산화되고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20세기 후반에 급격히 증가했다. 중국어가 대중화되고 쉬워지는 대신 압축된 표현은 오히려 늘어난 것이다.

중국 공산당에서 처음 나온 숫자 단어는 마오쩌둥의 ‘유격전십육자결(游擊戰十六字訣·16자 전법)’이라고도 할 수 있다. 국공내전과 중일전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16개의 한자로 만든 전쟁 방식이다. 대략 내용은 ‘적이 공격하면 물러나고(敵進我退·적진아퇴), 적이 주둔하면 교란하고(敵駐我擾·적주아요), 적이 피곤하면 공격하고(敵疲我打·적피아타), 적이 달아나면 쫓는다(敵退我追·적퇴아추)’로 댓구 4자씩 묶어서 16자를 만든 말이다. 당시 대부분 문맹이었던 공산군(홍군) 장병에게 아주 쉬운 말로 전술을 소개한 것이다. 내용은 당연한 사실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물론 이것을 현대 국가간 정규전에 그대로 사용하기는 어렵다. 이는 전형적인 게릴라 전술이기 때문이다. 당시 국민당군과 내전에서 정면으로 맞부딛히기 어려운 상황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던 것이 16자 전법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역대로 중국 공산당 지도자들은 한두 개씩의 주의주장을 내놓았는데 장쩌민 전 국가주석에게는 ‘삼개대표론(三個代表論)’이 있다. 즉 중국 공산당이 앞으로 ‘선진 생산력과 선진문화 발전, 광대한 인민의 근본이익 등 3개를 대표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2002년 공산당 당장에 삽입되면서 공산당원의 공식 이념이 됐다.

말 자체는 거창하지만 결론은 분명하다. 여기서 선진 생산력은 자본가를, 선진문화 발전은 지식인을 의미한다는 것이 통설이다. 광대한 인민은 기존 공산당의 지지기반인 농민과 노동자다. 즉 공산당이 앞으로는 노동자·농민 정당 일뿐만 아니라 자본가와 지식인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시장경제가 급속히 발전하면서 자본가들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이를 당 차원에서 흡수한 것이 3개대표론이다.

물론 공산당의 공식 해석에서는 당이 자본가 당이 됐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여전히 공산당은 노동자 정당이다. 즉 아닌 것처럼 하면서도 할 것은 해야 하는 고단함이 이런 복잡한 숫자표현 방식을 이용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과학분야에서는 ‘양탄일성(兩彈一星)’이라고 있다. ‘양탄’은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을, ‘일성’은 인공위성을 쏘아 올린 것을 각각 의미한다. 중국은 1964년 원자폭탄 개발에 성공했고 1967년에는 수소폭탄도 개발했다. 1970년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하면서 양탄일성을 완성했다. 인공위성을 싣고 우주로 날아간 ‘창정’ 로켓은 곧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둥펑’에서 나왔으니 양탄일성은 군사력 강화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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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확정 발표된 중국의 올해 ‘정부업무보고’를 보면 이런 식으로 숫자가 들어간 단어로 가득하다. 그 의미를 해석하지 못하면 보고서 자체를 읽지 못할 정도다. 올해 정부업무보고에 나온 숫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6대 안정(六穩), 6대 보장(六保)’와 ‘양신일중(兩新一重)’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은 미중 무역전쟁 와중에 내놓은 작년 ‘정부업무보고’에서 ‘6대 안정’만 있었다. 즉 고용 안정, 금융 안정, 무역 안정, 외자유치 안정, 투자 안정, 예측프로세스 안정 등을 6대 안정으로 보고 이를 통해 경기부양 방향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더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까지 덮친 올해는 ‘안정’을 넘어서 향후 반드시 지켜내야 하는 ‘보장’ 목표가 새로 등장했다. ‘6대 보장’에는 고용 보장, 기본민생 보장, 시장주체(기업) 보장, 식량·에너지 보장, 산업망·공급망 보장, 일선 행정기관의 정부 정책이행 보장 등이 포함됐다.

이로써 올해는 경제성장 보다는 경제파탄을 막는 방어적인 경제운용에 주력할 것임을 시사한 셈이다. 6대 안정에 이어 6대 보장에서도 ‘고용’이 제일 앞에 등장한 것에서 중국 당국이 느끼는 일자리 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난다. ‘6대 보장’이 공식적으로 처음 공개된 것은 지난 4월 중순 개최된 중공 정치국 회의에서다. 당시 회의에서는 ‘경제 펀더멘털’을 지켜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이 표현을 사용했다. 당시부터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가 제시되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는데 지난달 정부업무보고에서 실제로 그렇게 됐다.

‘양신일중’은 이른바 중국판 뉴딜로, 2개의 신경제와 1개의 중대 프로젝트로 이뤄졌다. 2개의 신경제는 이른바 신 인프라와 신형 도시화다. 중국은 기존 도로·철도 등 ‘구인프라’에 대비해 5세대(5G) 이동통신망·빅데이터·인공지능(AI)·신에너지 등을 신인프라로 내세우고 있다. 신형도시화 개념은 중국의 도시화 속도를 높여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겠다는 것이다. 이번 정부업무보고에서 신형 도시화에는 3만9,000개의 중소형 단지 리모델링이 포함돼 있다. 중국은 올해 지방정부 특수목적채권 3조7,500억위안(작년대비 1조6,000억원 증가)과 특별국채 1조위안을 발행할 계획인데 이들이 모두 인프라 건설에 투입될 예정이다. 중대 프로젝트는 철도·도로 등 교통망과 수리시설 등 기존 인프라 확충 계획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양신일중 가운데서도 올해는 양신, 특히 신인프라에 집중함을 정부업무보고는 분명히 했다. 예를 들면 올해 철도투자 목표액은 올해 1,000억위안으로 제시됐을 뿐 도로투자에 대한 목표액은 아예 없다. 반면에 작년 업무보고에서는 철도에 8,000억위안, 도로·수상운수에 1조8,000억위안을 투입할 것이라고 적시한 것과 크게 달라졌다.

이외에 올해 정부업무보고에 나온 숫자가 포함된 단어를 보면 삼대공견전(三大攻堅戰), 사풍(四風), 사조(四早), 사개의식(四個意識), 사개자신(四個自信), 양개유호(兩個維護), 일국양제(一國兩制), 일대일로(一帶一路) 등이 있다.

사개의식과 사개자신, 양개유호는 모두 시진핑 사상을 옹호해야 한다는 데서 나온 단어다. 즉 4개 의식은 이른바 시진핑 사상의 핵심이라는 정치· 대국(大局)·핵심·일치(看齊) 의식을 말한다. 4개 자신감은 공산당원으로서의 중국 특색 사회주의 노선·이론·제도·문화에 대한 자신감이다. 양개유호는 ‘2개의 옹호’라는 말로 당의 중심인 시진핑을 확고히 지키고, 공산당 중앙의 권위와 집중적이고 통일된 영도를 확고하게 옹호한다는 내용이다.

이어 삼대공견전은 3가지 전투에서 이겨야 한다는 말로 여기서 3가지는 금융리스크 방지, 빈곤퇴치, 환경오염 제거다. 사풍은 중국에서 척결해야할 대상으로 형식주의, 관료주의, 향락주의, 사치풍조다. 사조는 코로나19 방역에서 조기 발견, 조기 보고, 조기 격리, 조기 치료를 의미한다. 모두 시진핑식 개혁을 표현한 단어들이다.

이외에 대외적으로는 일국양제와 일대일로가 있다. 일국양제는 최근 홍콩 국가보안법 논란에서도 불거졌듯이 1개의 국가를 이루지만 2개의 체제를 보장하겠다는 것으로 처음에 대만을 대상으로 한 통일전선 전술이었는데 홍콩·마카오에 먼저 적용됐다. 일대일로는 중국식 경제블록 추진으로 ‘일대’는 육상 실크로드 지대, ‘일로’는 해상 실크로드 노선을 의미한다.

‘중국’이라는 것은 단어로 표현된다는 말이 있다. KOTRA 베이징 무역관 관계자는 “중국 당국의 신성장동력 육성 정책에 따른 새로운 기회를 발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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