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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40대 아재 셋, 3대 3 농구코트 장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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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 선두 전태풍·이승준·이동준

은퇴 전태풍 영입해 최강팀 구성

체력 달려도 즐기며 하는게 매력

국가대표로 도쿄올림픽 출전 꿈

중앙일보

미국 혼혈 귀화 1세대로 프로농구를 누볐던 이승준, 전태풍, 이동준(왼쪽부터)이 은퇴 후엔 3대3 농구를 접수했다. 셋은 40대다. 우상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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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빼고 다 20~30대야. 엄청 빠르고 체력 좋아. 우리는 셋이 합치면 120살 넘지만, 그래도 이겨. 경험이 많거든, ‘아재농구’라서 여유있어.”(전태풍)

40대 아저씨들이 3대3 농구 코트 점령에 나선다. 전태풍(40), 이승준(42)·동준(40) 형제가 속한 한솔레미콘 팀은 2020 코리아 3X3 프리미어리그 대회 5라운드가 끝난 현재 공동 선두(390점)다. 6개 팀이 참가한 이번 대회는 플레이오프까지 총 8라운드로 우승팀을 가린다. 총상금은 1억원이다.

1일 경기 용인시 마북동의 한 농구 코트에서 만난 세 사람은 좋은 성적에 걸맞지 않게 좀 지친 표정이었다. 이동준은 “태풍이가 식중독으로 지난 주말 시합에 못 뛰었다. 형과 내가 공백을 메우느라 혼났다. 덕분에 아직도 녹초”라고 말했다. 전태풍은 특유의 어설픈 반말 투로 “지금부터 제대로 우승 모드다. 우리 셋이 뛰었는데 우승 못하면 창피하다. 우리같은 고수들은 원래 후반에 강하다”며 눈치를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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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곽슛과 드리블이 좋은 전태풍(왼쪽)과, 골밑 장악력이 좋은 이승준(가운데)·동준 형제가 만나 3대3 농구 최강팀을 이뤘다. 40대인 이들의 승리 비결은 즐기는 ‘아재농구’다. 우상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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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은 한국프로농구(KBL)에서 활약하며 스타로 성장한 미국 출신 혼혈 귀화선수 1세대다. 농구 본토 미국 대학리그 출신으로 2000년대 후반 나란히 한국 무대를 밟았다. 이승준(2m5㎝)은 KBL 올스타전 덩크슛 대회에서 역대 최다인 네 차례 우승하며 ‘덩크왕’으로 이름을 날렸다. 이동준(2m)은 올스타전 최우수선수 출신이다. 형제는 2016년 SK에서 함께 은퇴했다. 전태풍(1m80㎝)은 이름처럼 화려한 드리블과 슛을 앞세워 2011년 전주 KCC에서 챔피언 반지를 꼈다. 코로나19 사태로 중단된 2019~20시즌까지 SK에서 뛰었다.

먼저 은퇴해 3대3 선수로 뛰던 이승준(국내 3대3 농구 선수 랭킹 2위)·동준(1위) 형제가 러브콜을 보내면서 세 사람이 뭉쳤다. 전태풍이 3월 은퇴를 발표하자, 이동준이 곧바로 전화를 걸어 영입했다. 이승준은 “셋이 평소에도 잘 어울리며 친하다. KBL에선 한 번도 같은 팀에서 못 뛰어, 3대3이라도 함께 하고 싶었다. 사실 2년 전부터 꼬셨는데, 태풍이가 우리를 배신하고 한 시즌 더 뛰었다”고 핀잔을 줬다. 전태풍은 “작년에 은퇴했으면 30대라서 아재농구 콘셉트에 안 맞았다. 마흔을 채우기 위해 1년 더 했다”고 재치있게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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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준(왼쪽)은 "전태풍이 현역 은퇴 후 팀에 합류하면서 최고의 조합을 꾸렸다"고 자신했다. 우상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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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초 급조한 데다, 참가 팀 중 유일하게 40대 팀이라서 고전이 예상됐다. 2020 도쿄올림픽에서 정식 정목이 된 3대3은 일반 농구보다 템포가 극단적으로 빠르다. 두 팀(각 3명)이 농구 코트 절반 크기 코트에서 골대 하나를 놓고 공격과 수비를 번갈아 한다. 체력 소모가 심해 경기 시간은 딱 10분(5대5 40분)이다. 공격 제한시간도 절반인 12초. 거친 몸싸움에도 관대해 좀처럼 파울을 불지 않는다. 먼저 21득점 하는 팀이 이긴다.

전태풍의 신고식은 혹독했다. 그는 “원래 슛 쏘고 손끝을 바라보면서 멋진 폼에 취하는 걸 좋아한다. 3대3 데뷔전에서 그랬다가, 1초 만에 공격으로 전환한 상대한테 실점했다. 그땐 ‘와, 정말 이게 뭐지’라고 생각했다. 처음엔 정말 힘들었다”고 말했다. 전태풍의 진화는 빨랐다. 이동준은 “연습한 적도 없는데, 눈빛만 보고 알아서 척척 자리를 찾아간다. 내가 스크린을 걸면 태풍이가 쏜다. 그리고 형(승준)은 리바운드 한다. 태풍이는 라인 밖 2점슛(일반 득점 1점)이 좋아 큰 도움이다. 태풍이가 말한 아재농구가 이런 게 아닐까”라고 자신만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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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가운데)은 "20~30대 경쟁자를 상대로 40대의 연륜을 앞세운 아재농구로 3대3 농구를 접수하겠다"고 했다. 우상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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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3의 묘미를 묻자 셋은 동시에 “프리스타일”이라고 합창했다. 전태풍은 “감독 잔소리 없이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 그동안 너무 (한국식) 전술 틀에 갇혀서 꾸중 들으며 운동했다. 뭐라고 하는 사람없이 100% 즐기는 농구”라고 설명했다. 국내 3대3 농구는 감독이 없다. 국제대회엔 감독이 참가하지만, 경기 중 지시를 할 경우 테크니컬 파울이 주어진다.

은퇴 후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 중인 전태풍은 “방송도 농구처럼 잘하면 좋겠다. 허재 형님이나 (하)승진이처럼 화려한 입담을 갖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승준은 “우리 형제는 3대3 국가대표 경력이 있다. 태풍이까지 잘 해서 함께 대표팀에 뽑혀 도쿄올림픽에 출전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조금 전까지 예능 얘기에 열을 올렸던 전태풍도 “올림픽에서도 아재농구 한 번 해보자”며 금세 뜻을 모았다.

용인=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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